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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③일터에 남은 사람들
2020년 1월31일 오전 폭발 사고가 벌어진 경기도 양주시 ㄱ가죽공장 모습. 타파 로히트 제공

“여기 와서 일해야 할 거 아니야. 내일 가서 현장 치워.”

2020년 2월1일 토요일. 네팔 사람 타파 로히트(가명·33)는 일하고 있던 가죽공장 사장한테서 소름 끼치는 전화를 받았다. 주말에도 ‘일하라’는 채근이야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곧장 돌아가서 치워야 할 현장’인 공장에선 전날 대형 폭발 사고가 벌어졌다. 노동자 2명이 숨졌다. 1명은 그와 같은 이주노동자였다. “폭발 소리에 놀라서 도망치는데 옆에 뭔가 떨어졌어. 사람이었어. 옷도 없고 다 없었어.” 참상을 목격한 그에게 주어진 휴일은 단 하루였다.

동료의 죽음에도 변한 건 없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공장은 멈추지 않고 돌았다. 위험한 노동 환경도, 비인격적인 대우도 여전했다. 죽어도 안 변하는 현실 앞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잔상을 떠올리며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다시 기록되지 못한 죽음, ‘암장’에 이른 이들도 있다.

기록 안 된 이주노동자 죽음의 규모를 추정하고, 애도조차 포기해야 하는 부조리한 장례 과정을 짚었던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3회는 죽음 이후 일터에 남은 이들의 이야기다.

동료의 죽음 이틀 뒤

쾅. 2020년 1월31일 오전 11시24분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ㄱ가죽공장에서 굉음과 함께 로켓처럼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관련 판결문 등을 보면, 폭발은 보일러실에서 발생했다. 산업용 보일러가 1671배 팽창해 터져버렸다. 그날 보일러실 업무를 배정받은 나이지리아 사람 오카포르(가명·당시 45살)와 한국인 관리자(당시 68살) 2명이 폭발과 함께 날아가 2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나마 노동 강도가 약한 보일러실 업무는 그때그때 몸이 가장 아픈 노동자가 맡았고, 오카포르는 당시 손을 다친 상태였다. 보일러는 1994년에 제작된 노후 상태였고, 법이 규정한 대로 이를 운용해야 하는 국가 자격 보일러 관리자는 이름만 등록한 상태였다. 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외면한 안전의 구멍들을 이주노동자들은 몰랐다.

공장에선 사람이 자주 번갈아 아팠다. 로히트도 일주일 전까지 몸이 아파 보일러실에서 일했다. “내가 나이지리아 사람 일하는 자리에 있었어. 일주일 전에 자리가 바뀌었어. 아니었으면 난 죽었어야 돼.” 당시 공장에서 함께 일한 미얀마 사람 루안(가명·40)도 오카포르를 떠올렸다. “아침마다 9시쯤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날도 오카포르랑 같이 마셨어요. 마음이 진짜 안 좋아.”

사고의 잔상, 오카포르에 대한 기억, 희생자가 나일 수 있었다는 두려움이 뒤엉킨 충격은 컸다.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금요일 사고가 발생하고, 사장은 일요일부터 출근을 종용했다. 로히트는 공장에 나가 소가죽과 털, 기름 따위를 치웠다. 고용노동부에서 공장 출입문에 ‘작업 중지’ 딱지를 붙였지만 무용했다. 사장은 “거기(노동부) 사람이 오면 기숙사 방으로 갔다가, 그 사람 가면 다시 일하러 나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히트와 루안 모두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거나, 잠들어도 폭발이 일어났을 때처럼 깜짝 놀라 깨는 일이 반복됐다. 트라우마였다. 둘은 한달 동안 정신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잔상과 두려움은 5년이 지난 현재도 남아 있다.

지옥으로부터의 탈출

ㄱ가죽공장은 피혁 제조업체다. 죽은 소에서 벗겨낸 가죽을 물에 담가 세탁하고, 화학약품 섞인 물로 털을 제거해 가죽 원단(원피)으로 가공했다.

폭발 사고 이후에도 공장은 위험했다. 폭발 사고 뒤인 2020년 2월17일 관할 노동지청 조사에서도 공장에선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발견됐다. 공장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난간이 없었다. 몸이 끼일 위험이 큰 폐수처리장 컨베이어나 회전축 체인 등에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덮개나 건널 다리도 없었다. 죽음조차 공장의 위험을 줄이지 못한 것이다. 왜였을까.

지난해 11월 한겨레와 만난 루안(가명)이 가죽공장에서 일하며 손톱이 빠진 동료 이주노동자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임재희 기자

이 모든 위험과 공포 앞에도 ‘떠날 수 없는 존재’, 이주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 허락 없이는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했다. 로히트와 루안은 “사업장을 바꿔달라고 하면 사장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2021년 4월부터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에선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가능해졌다. 다만 여전히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등록 이주노동자에 한정된 얘기다. 폭발로 죽은 오카포르도 임시체류자격(G-1) 비자로 일한, 미등록 노동자였다.

당시 공장 상황을 살피고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한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69) 목사는 “폭발이 일어난 지 1~2주 만에 고용지원센터에서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ㄱ가죽공장에 고용 알선해줬다”며 “미리 신청해놨겠지만, 이런 사고가 난 사업장에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계속 보낸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루안이 말했다. “가죽공장에서 일한 건 지옥 같았어요. 진짜 지옥.” 지옥에서, 두 사람은 탈출해야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탈출은 쉽지 않았다. 폭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정도로는 사업장을 바꿀 수 없었다. 독한 화학약품으로 아픈 몸도, 공장 곳곳 도사린 위험도 역부족이었다. 로히트는 목에 혹이 생겼고, ‘화학약품 탓이라 더는 가죽공장에서 일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의사 소견서까지 받았다. 소견서를 본 사장의 즉각적인 반응은 역시, “그럼 그만두고 너희 집으로 돌아가”였다.

다른 방법을 찾았다. 루안의 경우 폭발 사고 사흘 뒤부터 사장이 법을 어겨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다른 가죽공장(그곳의 정체를 루안은 여전히 모른다)에서 일을 시켰던 게 문제가 됐다. 이주민센터 도움을 받아 이를 노동부에 신고했다. 그제야 2020년 4월 사장은 사업장 변경을 허락했다. 로히트는 목에 혹이 생겨 실제 가죽공장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9월에야 공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둘은 공장을 탈출했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김달성 목사는 “고용 연장 권한, 사업장 이동 권한이 100% 고용주한테 있어 ‘주종관계’를 만드는 현재 고용허가제에서는 어느 사업장이나 ㄱ가죽공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ㄱ가죽공장에는 2025년 현재도 이주노동자가 배정되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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