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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무료급식소 노숙인
급식 봉사 온 8살 아이에게 세뱃돈
‘더 많은 아침 식사’ 위해 다시 기부한 아이
“나누러 왔다 더 많이 받고 간다”
지난 설 연휴 서울역 무료 급식소인 ‘아침애만나’에 봉사 간 박세연양이 노숙인 등 급식소 이용자 여러 명이 준 세뱃돈을 다시 기부함에 넣는 장면. 오른쪽 사진은 박양이 받은 세뱃돈이다. 가족 제공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자가 주로 아침을 먹으러 오는 서울역 인근 무료 급식소에 8살 아이가 봉사를 갔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엄마 아빠 할머니 손을 잡고 일손을 보태러 온 아이 봉사자를 손녀처럼 생각한 어르신들이 주신 꼬깃꼬깃한 세뱃돈이었습니다. ‘나눔의 기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더 많은 할아버지가 아침을 드실 수 있다’는 엄마 아빠의 조언에 따라 그 세뱃돈을 기부함에 넣었거든요.

이런 훈훈한 광경은 이랜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역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에서 펼쳐졌습니다. 급식소 자원봉사자인 박정규(41)씨 부부와 그의 딸 세연양, 박씨의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등 5명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7시부터 봉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어머님의 생신을 조금 더 뜻깊게 기념하기 위해 온 가족 봉사를 간 것인데요. 미국 뉴욕에서 한인교회 목사님의 사모님인 어머님의 친구도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설날 등 연휴엔 급식소 봉사 인원이 적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봉사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지난 설 연휴 서울역 무료 급식소인 ‘아침애만나’에 봉사 간 박세연양이 동행한 친할머니(왼쪽), 할머니 친구와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가족 제공


뜨거운 음식도 있기에 급식소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봉사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세연양은 식사 전과 후에 어르신들이 마실 물을 날랐다고 합니다. 고사리손으로 물을 가져다드리며 “맛있게 드세요”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으면서요.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을 웃으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흐뭇하게 쳐다보시며 손주 보듯 예뻐하셨다고 하네요.

그러다 한 어르신이 아이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건넸습니다. 부모는 어르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기에 한사코 사양했다는데요. 그 어르신은 “예뻐서 그런다” “꼭 주고 싶다”며 물러서지 않고 아이 손에 쥐여주고 가셨습니다. 이후 다른 분들도 지폐나 동전을 아이 손에 얼른 쥐여주고 자리를 떴다네요.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 4000원을 전부 아이에게 세뱃돈이라며 준 어르신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인 2만4100원을 봉사를 마치고 기부함에 전부 넣었습니다. 세연양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피곤했지만 또 봉사하러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박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 생신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온 가족이 봉사하러 갔다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인 그는 아이를 포함해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요. 박씨는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왔는데 그런 것을 저만 누리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300명 이상의 노숙인, 쪽방촌 어르신들에게 아침 식사를 나누는 이 급식소는 박씨와 같은 따뜻한 마음이 모여 지난해 7월부터 지금껏 운영될 수 있습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30분까지 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에게 밥을 나누고, 점심과 저녁 도시락 배달을 통해 인근에 사는 수백명의 노숙인과 주민의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급식소의 구재영 센터장은 “지금까지 2200명의 자원봉사자와 후원 등에 힘입어 최근까지 10만끼의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 센터장은 인근 쪽방촌에서 교회를 개척해 8년째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을 돌보고 있는 목사이기도 합니다. 10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한 날에도 구 센터장은 노숙인 어르신을 병원에 모셔다드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와 협력하는 인천과 경기 일산 등 교회 5곳의 성도와 교역자는 급식소에 고정적으로 봉사하러 오면서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하고요. 구 센터장은 “이랜드 기업과 수많은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손길 덕분에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이 따뜻한 한 끼를 드시고 있다”고 감사해 했습니다.

꼬마 봉사자가 노숙인에게 전한 사랑이 세뱃돈이 되어 돌아오고 그 귀한 용돈을 세상에 다시 흘려보내는 모습, 오랜 기간 묵묵히 어르신들의 밥 한 끼를 위해 애쓰는 수많은 손길과 협력하는 기업과 교회를 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눔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세연양을 통해 어른인 제가 많이 배웁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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