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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 컷 / 사진=넷플릭스


폭탄이 곳곳에서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이곳에서 한 남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한다.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라도 되는 듯 폭탄과 총알을 능숙하게 피하더니 환자에게 수혈할 피를 병원으로 운반하는 데 성공한다.

지난 1월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오프닝 장면이다. 의학 드라마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독특한 설정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천재 외과의사 백강혁(주지훈 분)이다. 백강혁은 그야말로 ‘만렙’(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캐릭터)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헬기에서 거침없이 뛰어내리기도 하고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절체절명의 환자 머리에 구멍을 뚫기도 한다.

이 작품은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글로벌 TV쇼 비영어권 부문 1위에 올랐다. 시청 시간은 8270만 시간에 달한다. 히어로물을 결합한 참신한 설정, 개성 강한 캐릭터, 멜로를 제거해 더욱 높아진 몰입도, 이국종 교수와 한국 의료 환경을 연상케 하는 실화적 요소를 골고루 갖춰 호평을 받고 있다.

‘중증외상센터’로 한국 의학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동안 한국 의학 드라마는 국내에선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화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굿 닥터’와 같은 일부 성공 사례도 있지만 ‘그레이 아나토미’와 같은 막강한 파급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나 ‘중증외상센터’는 그 보이지 않는 벽을 깨부수고 크나큰 도약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장르에서 새롭게 깃발을 꽂은 만큼 향후 K드라마 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 본연의 공감 이끌어내는 ‘생로병사’의 힘


의학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는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단순한 편이다. 아픈 환자가 나타나고 이들을 살리고 치료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고군분투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와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의학 드라마가 꾸준히 나오고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의학 드라마는 태생적인 장점을 갖추고 있다. 인간의 처음이자 끝이며 그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생로병사’(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를 소재로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에피소드별로 사랑, 고통, 슬픔, 감동 등 다채로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일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증폭시키는 구심력과 응집력이 강하다. 어떤 에피소드를 보든 어떤 상황에 놓인 캐릭터를 보게 되든 ‘살았으면 좋겠다’, ‘살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응원하게 된다. 현실에서 본인 또는 가족이나 지인이 처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감정도 깊게 투영한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도 의학 드라마는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왔다. 1980년 방영된 ‘소망’은 한국 최초의 의학 드라마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3년간 116회에 걸쳐 방영됐을 만큼 오랫동안 인기를 얻었다. 1994년에 나온 ‘종합병원’은 큰 사랑을 받아 오늘날까지도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로써 한국 의학 드라마는 국내 시청자에게 명실상부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게 됐다. 1999~2000년에 방영된 ‘허준’은 사극으로 해당 장르를 소화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2010년은 한국 의학 드라마의 본격적인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장르적 세분화가 이뤄졌다. 특히 휴머니즘, 사랑 이야기 등을 결합한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천재 외과 의사 이야기를 다룬 ‘하얀 거탑’(2007), 흉부외과 의사들의 열정과 성장을 그린 ‘뉴하트’(2007~2008), 신경외과 의사들의 야망과 성장을 다룬 ‘브레인’(2011~2012),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굿 닥터’(2013) 등이 잇달아 흥행했다. 특히 ‘굿 닥터’는 미국에 포맷이 판매되어 현지에서 리메이크되는 큰 성과를 거뒀다. 리메이크 작품은 2017년 미국 ABC에서 처음 방영됐으며 지난해 시즌7을 끝으로 종영했다. 한국 의학 드라마가 ‘그레이 아나토미’ 등 세계적인 의학 드라마를 만든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20년대 들어선 보다 대중적이고 친근한 설정을 내세운 의학 드라마가 나왔다. 덕분에 한국 의학 드라마 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즌제’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2016년에 처음 나온 ‘낭만닥터 김사부’는 많은 호평을 받으며 2020년 시즌2, 2023년 시즌3로 이어졌다. 소규모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더욱 매료됐다. 2020년 첫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중장년 중심이었던 의학 드라마 시청자층을 MZ세대로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병원 내 다섯 명의 의대 동기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 작품엔 의학과 멜로, 우정 등 다양한 소재가 결합됐다. 다양한 세대에 걸쳐 큰 사랑을 받은 덕분에 2021년엔 시즌2가 방영됐다. 이 작품의 스핀오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도 오는 4월 첫 공개된다.

개성 강한 캐릭터로 글로벌 시장 섭렵

국내 시장에서의 다양한 성과에도 한국 의학 드라마엔 마지막으로 맞춰지지 않은 한 조각의 퍼즐이 있었다. 그 퍼즐은 미국 의학 드라마와 비교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20년대 들어 한국 의학 드라마가 시즌제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미국 작품들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선 의학 드라마 ‘ER’이 1994~2009년에 걸쳐 방영됐다. 시즌 수만 15개에 달한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서사는 더욱 장대하다. 2005년에 시작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시즌21이 방영되고 있다. 그 밖에도 ‘하우스’(2004~2012), ‘스크럽스’(2001~2010), ‘닥터 하트’(2018~2023) 등 다양한 작품이 여러 시즌을 거듭하며 방영됐다.

미국 의학 드라마가 이토록 오랜 기간 시즌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캐릭터의 개성이 강한 덕분이다. 그 예로 ‘하우스’의 주인공 하우스 박사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 하우스 박사는 의사이자 탐정에 가깝다. 독특한 괴짜인 데다가 환자의 병명을 파악하기 위해 사소한 습관을 집요하게 파고드는가 하면 주변인 탐문까지 한다. 이에 비해 한국 작품은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병원이라는 큰 조직과 시스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 작품엔 멜로 서사가 많이 들어가는 등 감성적인 이야기의 비중이 높다. 반면 미국 작품은 감성적인 부분보다 의료 현장의 현실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중증외상센터’는 이런 점에서 한국 의학 드라마의 대대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캐릭터의 개성이 강하다. 백강혁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완벽하게 수술을 해낸다. 이에 따라 자아도취적인 성향도 보이지만 환자의 목숨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옆에서 묵묵히 배우고 성장해 가는 제자 양재원(추영우 분)은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며 캐릭터 간의 적절한 균형을 맞춘다. 게다가 이 작품은 리얼리즘까지 절묘하게 결합했다. 외상외과 의사 부족, 지원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한국 사회에 다양하고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게도 인정을 받으면서 한국 의학 드라마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다.

원래 항문외과 펠로였던 양재원은 백강혁이 자신을 힘들고 어려운 외상외과로 데려가자 이런 질문을 한다. “왜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저였습니까?” 그러자 백강혁은 이렇게 답한다. “그냥 잘 달리길래. 내가 볼 때마다 네가 달리고 있었어. 환자 살리겠다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환자가 있는 곳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질주하는 의사, 그런 의사를 만나 꼭 살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대사이다. 이 같은 감사함과 소망 사이, 판타지와 현실 사이를 오가며 한국 의학 드라마는 계속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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