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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를 ‘반국가세력’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내란 조작의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실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달 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무장 군인을 국회에 투입하고,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를 지시했던 사실을 없던 걸로 하자는 것인가.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된 그는 민주당을 나치에 비유하면서 의회독재를 비판했다.

히틀러도 1923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를 전복하려던 뮌헨폭동 실패 이후 교도소 독방에 감금됐다. 망상 속에서 세계 정복과 인종 청소를 구상한 자서전 『나의 투쟁』을 구술했다. 광기의 극우 지도자는 1925년 출간된 이 책에서 “획득해야 할 대중의 수효가 많을수록 (선전의) 지적 수준을 더욱 낮추어야 한다”고 적었다. 상식 있는 국민의 판단을 우습게 여기는 윤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는 위험천만한 금서(禁書)의 선전술과 통하고 있다. 법원 난입도 모자라 헌법재판소 폭동을 선동하는 광신도의 함성에 고무돼 100년 전 나치 교주처럼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것인가.

이재명 심판으로 정권 재창출?
여권, ‘상왕’윤과 결별 쉽지 않아
어느 쪽이 집권해도 불복할 것
망국 막는 개헌…이 대표 동참해야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하야하기 전 부상당한 대학생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고 했다. 자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당사자들에게 생애 최악의 순간에 화해와 존경을 담은 헌사를 남긴 것이다. 이로써 내전을 막고 백척간두에 선 민주주의를 지켰다. 탄핵 법정에서 책임을 회피하면서 부하들과 구차하게 언쟁하는 윤 대통령과는 다른 지도자의 품격을 보였다.

이렇게 초현실적인 ‘윤석열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그는 오만가지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고 단숨에 대권을 삼키기 위해 비주류를 절멸시키고 일극체제를 완성했다. 줄탄핵과 필수 예산 삭감으로 윤 정부를 기능부전 상태에 빠뜨렸다.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포용과 자제, 타협의 미덕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적대적 공생관계였던 윤석열이 몰락했으니 이재명도 퇴장해야 한다는 여론은 자업자득의 결과다.

여권은 이 대표를 미워하지만 그가 대선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모순적 심리 상태에 빠져 있다. 이재명은 계엄 심판론을 덮을 정도로 흠결이 넘치는 비호감의 인물이고, 범야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취약한 적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도 본격적인 고민의 시간이 시작됐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려면 호남에서 90%의 몰표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카멜레온처럼 표변하는 이 대표에 대한 불신이 만만치 않다. 광주 시민 열 사람에게 이 대표 지지 여부를 물어보면 네 사람은 아예 침묵한다고 한다. 중도층도 그의 원칙 없는 실용주의와 우클릭에 환호하지 않는다. 이재명 심판론이 먹히면 계엄 심판을 받아야 할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

2025년의 혼란은 2016년에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국민과 국회의원 80%가 탄핵에 찬성했다. 여권도 탄핵심판 분위기에 압도됐고, 박 전 대통령은 고립됐다. 그러나 지금은 여권 인사들이 극렬 지지층의 아이콘이 된 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박근혜 탄핵에 가담한 뒤 문재인 정권의 적폐 수사에 시달렸던 악몽 때문이다. 실제로 탄핵 결정이 나오면 윤석열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가 광장을 덮을 것이다. 여권 주자가 대통령이 되려면 윤석열과 결별하기를 원하는 중도 민심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후보가 되려면 거꾸로 옥중 상왕(上王)의 축복을 받아야 할 판이다. 이 원칙 없는 뒤죽박죽의 혼란은 헌정질서 회복을 방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다.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는 주력인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호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출과 내수가 모두 흔들리고 민생경제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컨트롤타워가 없어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심”이라고 했다. 비현실적인 착각이다. “최상목 대행이 중심”이라고 했어야 맞다. 이 대표의 최대 실책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유능하고 노련한 한덕수 대행을 무리하게 탄핵한 것이다. 최 대행에게는 탄핵 협박을 중단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이 나라는 사실상 두 동강 난 상태다. 어느 쪽이 집권해도 불복하는 심리적 내전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벌써부터 네 번째 탄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유통기간이 한참 지나 악취를 풍기는 승자 독식 제왕적 대통령제의 숙명이다. 파국을 막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고 협치를 제도화하는 개헌이 필수다. 여야 합의로 개헌특위를 가동해 제7공화국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망해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시도다. 홀로 반대하는 이재명 대표도 동참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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