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하루 한 곳씩 中 기업 국내 진출
중국 FDI 기업 신청 4년새 3배 가까이 급증
지난해 투자금액도 전년비 2.5배 불어나
미국 압박에 국내 진출 中 기업 더 늘어날 듯
양국 갈등에 휘말릴라···中 투자 실태 파악해야
중국 FDI 기업 신청 4년새 3배 가까이 급증
지난해 투자금액도 전년비 2.5배 불어나
미국 압박에 국내 진출 中 기업 더 늘어날 듯
양국 갈등에 휘말릴라···中 투자 실태 파악해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 공장의 굴뚝에서 수증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트럼프발 통상 환경 변화가 본격화되면서 중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소비 시장을 직접 노리는 중국 기업들도 있지만 이 중 상당수는 미국 수출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을 일종의 도피처로 택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신고한 중국계 기업은 40곳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새해 들어 하루 한 건꼴로 중국 기업의 투자가 성사된 셈이다. 이 기간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연휴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체감 투자 속도는 더 빠르다. 실제 중국계 기업의 FDI 기업 신청 건수는 2020년 181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521건으로 4년 만에 2.9배 확대됐다.
투자 금액으로 봐도 지난해 중국의 대(對)한국 FDI는 67억 9400만 달러(약 9조 9000억 원)로 1년 만에 2.5배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자본 투자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런 투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미리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제재를 피해 ‘신분 세탁’하는 외국인 투자 기업이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라며 “한국에 투자하더라도 우회 수출이 어렵도록 제도를 촘촘히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레드 머니’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침투하면서 우리나라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인접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직접 타격해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기지 이전)’까지 제한한 것처럼 향후 중국의 투자 자체를 공격 근거로 삼아 압박의 강도를 높일 수 있어서다.
중국 자본의 침투는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다. 7일 찾은 대전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업체인 A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하 10도에 달하는 혹한의 추위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지만 이 기업은 지난해 중국 기업이 지분 90% 이상을 인수해 주인이 바뀐 곳이다. 공장 인근 소상공인들도 “중국 기업이 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신분 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 태그가 달려 해외로 수출된다.
앞으로 중국 기업의 국내 진출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세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한 석유화학 기업은 중국 화학 기업과 합작회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측 주문을 받아 떨어진 장비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중국 기업은 관세 장벽을 피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인 셈이다. 전기차 업계에서도 중국 업체들이 미국 진출을 목적으로 한국에 조립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한국이 미중 무역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 기지라고 판단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의 교역에도 깐깐한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우회 수출을 걸러내기 위해 미국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거나 중국계 자본이 투자한 법인의 수출을 가로막을 수 있다”며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단을 사용하려 하는지 사전에 파악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지명자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제3국이 ‘무임승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그 방법으로 원산지 규정을 면밀하게 따져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천에서 열린 중국 BYD 브랜드 런칭 미디어 쇼케이스. 연합뉴스
문제는 중국이 한국 시장을 악용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현재로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 투자가 기술 유출이나 안보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직권조사할 수 있는 조항이 외국인투자촉진법 시행령에 마련돼 있지만 지분 투자 방식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중국 기업이 그린필드(해외 기업이 투자국에 생산 시설이나 법인을 직접 설립) 투자 방식으로 생산 시설을 확충할 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관련 규정이 도입된 것은 2008년이지만 실제로 이를 활용해 외국인 투자를 제한한 것은 단 3건에 불과하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이미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에 사전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고 외국 정부의 정보 수집에 협력할 우려가 있는 기업을 ‘특정 외국 투자자’로 분류해 제재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국인 투자를 최대한 유치하자는 것이 정책 방향이어서 별도의 사전 점검 제도를 갖추지 않았다”며 “통상 환경 변화를 감안해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