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캐나다·멕시코 등에 대한 관세와 함께 10%포인트의 보편관세까지 도입할 경우 한국의 수출액이 130억 달러(약 13조9500억 원) 넘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상대국과 동일한 관세율을 부과하는 상호관세도 예고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9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조치에 따른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예상되는 미국의 관세 시나리오는 ①중국 10%포인트 추가 관세(시나리오1) ②시나리오1+캐나다·멕시코 25%포인트 추가 관세(시나리오2) ③시나리오2+보편관세 10%포인트 등 3가지다.
만일 현 상황처럼 중국에 대한 10%포인트 관세만 부과되는 시나리오1 상황이라면 한국의 총수출은 지난해보다 4억1000만 달러(0.1%) 줄어든다. 대중(對中) 중간재 수출이 8억1000만 달러 감소하지만, 이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대미 수출이 4억 달러 늘 것으로 추정된 결과다.
오는 3월로 유예된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25%포인트 관세 부과가 추가 시행되면 수출 감소폭은 시나리오1보단 작은 2억2000만 달러(-0.03%)로 분석된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이 더욱 커지면서 중국·캐나다·멕시코로의 수출 감소분이 상쇄되기 때문이다.
신재민 기자
가장 큰 문제는 특정국 타깃 관세에 더해 한국을 포함한 보편관세까지 현실화되는 시나리오3이다. 이때 한국의 총수출은 무려 132억 달러(-1.9%) 감소할 전망이다. 중국·캐나다·멕시코와 경합도가 높은 수송기기(자동차·조선·철도 및 기자재)나 전기·전자제품에선 반사이익이 발생하지만, 결국 보편관세에 따른 직접적인 수출 감소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대미 수출만 100억3000만 달러(-7.9%)가 줄어들고, 대멕시코 수출도 15억7000만 달러(-11.5%) 감소한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양지원 무협 수석연구원은 “보편관세가 도입되는 시점이 수출 감소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만큼 민관이 선제적으로 대미 아웃리치(대외협력) 활동을 확대하고, 관세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체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상호관세’도 추가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원칙이다. 원론적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대부분 폐지된 한국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무역적자국 9위(2024년 기준 660억 달러, 약 96조21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반도체 등 특정 품목별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통상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문자 그대로의 상호관세라면 한국에 문제가 없겠지만, 트럼프가 계속해서 무역 적자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 변수”라며 “만일 규제나 법규 등 비관세 장벽까지 상호관세 범위에 포함한다면 영향권에 들어오는 만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도 “상호관세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한국이 받는 영향이 달라질 것”이라며 “반도체·의약품·철강 등 특정 품목에 대한 타깃 관세를 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안심하긴 이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쉴 틈 없는 관세 폭풍에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보편관세 공약을 내세우며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따라 삼성전자·LG전자 세탁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을 성공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에 따르면 관세 부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세탁기 가격이 오르면서 오히려 소비자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 실린 연구논문에 따르면 세탁기 관세로 미국 사우스캐롤나이나주에 18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지만, 세탁기 가격은 2018년 한 해 약 12%(86∼92달러) 올랐다. WSJ는 일자리 1개에 80만 달러(약 11억66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WSJ는 앞서 사설을 통해서도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가장 멍청한 무역 전쟁”이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