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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박혜진·김민경 편집자 인터뷰
“독자가 원한다면 두루마리 모양 책도 만들 수 있어”
박혜진(왼쪽) 민음사 편집자와 김민경 편집자가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밀리의 서재 이용자는 지난해 800만명을 넘어섰다. 윌라, 리디북스 등 다른 전자책 구독 서비스도 모두 호황이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없는 독서를 가능케 한 전자책은 언뜻 종이책의 경쟁자로 보인다. 그러나 종이책을 만드는 이들은 전자책을 적으로 보지 않았다.

민음사의 김민경 편집자는 “전자책 때문에 종이책이 안 팔리는 게 아니에요. 저희의 적은 넷플릭스, 유튜브, 닌텐도 그리고 너무 긴 대한민국의 노동 시간이죠. 솔직히 말하면 1년에 책을 1권도 안 읽는 분보다는 전자책만 사는 분들이 저희 출판계에는 진짜 빛과 소금이에요. 구독 서비스도 상관없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전자책·도서관 모두 상관없다…일단 '읽기'만 한다면
출판업계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신규 독자를 늘리는 일이다. 전자책이나 구독 서비스 또한 종이책으로 향하는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민경 편집자의 생각이다. 전자책으로 책을 접한 경험이 있다면 자연스레 종이책에도 관심을 갖게 될 확률이 높고, 그렇다면 전자책을 적대적으로 대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전자책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건 책의 모양은 바뀔 수 있다고 민경 편집자는 말했다. “요즘은 ‘키링(열쇠고리) 책’이라는 게 있어요. 전자책은 싫고 종이책은 무거워서 부담스러운 이들, 하지만 힙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키링 책을 제안할 수 있는 거죠. 어떤 형태여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두루마리가 유행한다면 두루마리 책도 만들겠어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을 통해 세계문학전집을 소개하는 박혜진 편집자와 김민경 편집자.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캡처

박혜진 편집자의 생각도 비슷하다. 꼭 민음사의 책이 흥행하지 않더라도 종이책의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는 이벤트라면 결국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이후 민음사에서 출간한 한강 작가님 책이 없어서 서운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독자님들이 한강 작가님 책을 사기 위해 온라인 서점에 한 번이라도 접속하거나 오프라인 서점에 한 번이라도 간다면 저희 책이 눈에 띌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무조건 이득이에요.” 혜진 편집자는 자신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때가 많다며 책을 꼭 구매해서 읽지 않아도 일단 읽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강 노벨상 수상에 '텍스트힙' 열풍…'취향 독서'가 흐름
연일 ‘텍스트힙(Text Hip, 책 읽는 게 멋지다)’이 열풍이라지만 정작 두 편집자는 이를 느끼지 못한다. 텍스트힙의 영향으로 신규 독자가 늘어나는 걸 체감하기 어려워서다. 다만 이전에 책을 읽던 독자들이 잠시 책과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출판사가 특정 서적을 주력으로 홍보하거나 평론가, 저자 등이 나서 책의 판매고를 올리던 시대도 지났다. 독자 개개인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취향 독서’가 흐름이다. 혜진 편집자는 “(텍스트힙은) 약해져 가는 불을 다시 지피는 의미인 것 같아요. 텍스트힙 때문에 정말 텍스트를 아예 읽지 않던 사람들이 읽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개인의 취향 독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열풍이기 때문에 저희도 분석이 쉽지 않더라구요”라고 말했다.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왼쪽)와 김민경 편집자가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텍스트힙 열풍이 언제까지 갈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독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민경 편집자의 생각이다. 마치 ‘하루에 1.5ℓ의 물을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며 모두가 물을 챙겨 마시기 시작한 것처럼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예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진짜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회사에서도 다들 궁금해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그걸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혜진 편집자는 독서라는 행위 자체보다 독자 간의 ‘유대감’이 텍스트힙의 특징이라고 봤다. 단순히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책을 읽은 독자끼리 교류하며 자신과 유사한 부분을 가진 독자를 만났을 때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독자라고 인식하면서 다른 독자들도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비슷한 것에 슬퍼하고 비슷한 것에 화내는 사람이야 라는 일종의 유대 의식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독자’라는 게 마치 현대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된 거죠”

원고 선정부터 마케팅까지…책의 곳곳에 닿는 편집자의 손길
책이 출간되는데 걸리는 기간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과정은 비슷하다. 우선 해외 작가 에이전시에서 최근 출간되거나 출간 예정인 작품에 대한 소개문을 보내면 편집자는 그중 추가로 검토하고 싶은 작품의 원고를 신청해 읽는다. 만약 한 작품의 출간을 원하는 출판사가 여러 곳이라면 경쟁이 시작된다. 작품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출간할 계획인지, 선인세는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지 등을 어필하는 식이다.

작품을 따내는 데서 편집자의 업무는 끝나지 않는다. 번역을 마친 원고의 교열과 교정을 보고 책의 크기, 표지의 질감 등 책의 물성을 정한다. 어떤 타이밍에 어느 가격에 판매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겨울 여행에 관한 내용을 여름에 출간해서는 안 된다. 표지 글, 안내문, 보도자료 등 책을 독자들에 소개하는 글을 쓰고 마케팅 방향에 의견을 내는 것까지가 편집자의 일이다.

박혜진(왼쪽) 민음사 편집자와 김민경 편집자가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이 과정에서 해외 문학 편집자에게 특히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작품을 보는 안목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알아보기 전에 유망한 작가, 팔리는 작품을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민경 편집자는 “땅을 보러 다니거나 미술 작품을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편집자 개인의 경험도 이 과정에 모두 녹아든다. 대학에서 중어중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를 복수전공한 혜진 편집자는 “문화권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 독자한테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면 될까, 허들은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기가 더 유리해요. 언어 자체보다도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문화적인 배경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죠”라고 설명했다.

라디오 패널로 독자를 만나거나 문화센터 강의에서 독자를 접하는 경험도 마찬가지다. 편집자가 책에 관한 독자의 구체적 피드백을 받기는 쉽지 않다. 서평을 남기는 사람이 소수인 데다가 대부분 부정적 피드백은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혜진 편집자는 “문화센터에 북 토크나 강의를 가면서 ‘시니어 독자’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게 됐어요. 이분들이 책을 읽고자 하는 열정이 있고 심지어 구매력도 있고 시간도 있으신데 이분들이 자꾸 저한테 글씨가 작아서 책을 못 읽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이분들을 만난 후에 회사에 ‘책을 읽고 싶은데 못 읽는 분들이 있다’고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제가 그 독자층을 인식하게 된 계기도 문화센터 강의를 나가면서죠. 그런 살아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게 정말 소중한 기회인 것 같아요.”

유튜브에서 '종이책'을 알리는 편집자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글자’로만 존재하던 두 편집자는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 출연하며 독자와의 소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특히 민음사의 대표 시리즈 ‘세계문학전집’을 소개하는 ‘세문전 월드컵’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2019년 개설된 민음사TV의 구독자는 약 27만7000명. 혜진 편집자와 민경 편집자가 문학 작품 속 최악의 애인을 꼽은 세문전 월드컵의 조회 수는 19만회에 달한다. 명문장을 소개한 세문전 월드컵의 조회 수도 18만회다.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을 통해 세계문학전집을 소개하는 박혜진 편집자와 김민경 편집자.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캡처

지금까지 세문전 월드컵에서 소개된 세계문학전집은 120권 남짓. 450권이 넘는 세계문학전집 중 약 30%가 세문전 월드컵에서 언급됐다. 경쟁자로 꼽는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 또한 결국 종이책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민경 편집자는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도 ‘이 책 재밌으니까 이 책을 사세요’라는 게 아니라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책이나 잡아보세요. 이 중에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하는 것에 가까워요”라고 설명했다.

다음 과제는 설명이 어려운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서사가 뚜렷하지 않거나 읽지 않고서는 책 추천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책들이다. 서사는 간단한데 문장이 아름다운 책들도 소개가 쉽지 않다. 혜진 편집자는 “저희가 계속 낭독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는 저희가 좀 더 풀을 넓히려면 소개하기 힘든 책들을 어떻게 소개할지를 좀 더 연구해봐야겠죠”라고 말했다.

유튜브 시대를 사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두고 “마이너가 갖는 비상한 자부심과 열패감”이라고 혜진 편집자는 표현했다. “이전에 ‘쥬씨’라는 생과일주스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길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쥬씨 시대’에 되게 좁은 골목 한쪽에서 쑥, 케일, 당근을 팔아서 건강 주스를 파는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골목 밖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마음과 ‘근데 우리끼리 아는 게 더 멋있어’라는 두 가지 마음이 같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항상 경계의 확장을 꿈꿔요. 생각보다 소득이 없을 때도 있지만 항상 기대감을 앞에 놓는 편이에요”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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