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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출신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
‘반도체 R&D 주 52시간 예외’ 논의 쓴소리
“능력있는 인재 나가고, 남은 사람만 다쳐
창의성 중요한 시기···효율적으로 일해야”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출신 인류학자인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 6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반도체 연구개발(R&D) 직군을 ‘주 52시간’ 연장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시켜 집중적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반도체특별법’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민의힘과 경영계는 법안 통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한 이재명 대표가 법안 찬성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당사자인 R&D 노동자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최근 R&D 직군 조합원 9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814명)가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에 반대했다. 최근 약 2년간 삼성전자가 22건의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하는 동안, 신청을 한 건도 하지 않은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추월한 것을 두고도 ‘노동시간과 반도체 경쟁력은 크게 관련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의 위기보다는 ‘삼성전자의 경영 실패’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는 반도체 업계에 득일까, 실일까.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출신인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며 “능력 있는 인재는 나가고, 남아서 열심히 하려는 이들은 과로로 다치거나 태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노동시간을 늘리기보다는 제대로 된 업무조정과 효율적 시간 활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소장을 지난 6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과 인사과장으로 일했다. 퇴직 후 연세대 문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산업과 인류학을 융합한 ‘산업인류학’ 분야에서 강연·저술·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1988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해 온 익명의 부장을 인터뷰한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를 썼다.

- 반도체 R&D 직군을 주 52시간 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시키자는 ‘반도체특별법’ 논의를 어떻게 보고 있나.

“어처구니가 없다.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 것이다. 신입사원 지원이 줄고 능력있는 이들은 다 나갈 것이다. 남아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번아웃이 오거나 다치거나 태업하게 될 것이다. 반도체는 R&D부터 생산까지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면서 만들어진다. 하나만 빠져도 제품이 나올 수 없다. R&D라는 한 단계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 경영계에서는 ‘오랫동안 집중해서 R&D를 할 수 있어야 성과가 나온다’고 주장한다. 새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별도로 실제 ‘테스트’를 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도 하고, TSMC가 주 70~80시간 일하며 24시간 가동된다고도 말한다.

“창의성은 숙련에서 나올 수도 있고, 몸이 여유로운 상황에서 성찰할 수 있을 때 나온다. 업무를 제대로 어사인(assign·배정)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도록 해야지, 시간만 늘리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 여러 논문은 가장 효율적인 하루 노동시간을 6~7시간으로 본다. 예전에 나도 R&D를 하루 14시간씩 했는데, 쭉 집중해서 일할 것 같은가. 어차피 야근할 거 알면 그렇게 안 한다.

테스트를 계속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한사람이 16시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같은 부서에서 3교대로 넘겨받는다. 한국 업체들도, TSMC도 이미 그렇게 24시간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TSMC가 장시간 노동으로 제품(물량)을 따냈다는 건 1년 동안 일부 인원에게 연봉의 2~3배를 주면서 ‘결사대’처럼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TSMC에서도 일·생활 균형 이야기가 나왔고, 지금은 과로가 줄고 처우가 나아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제 특례 도입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3개월 바짝 일하고 3개월 쉰다’거나 ‘노동자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겠다’는 등 보완책도 제기된다.

“1년 단위로 이뤄지는 내부 평가에서, 3개월 일하고 3개월 쉬면 평가가 잘 나올까? 대기업을 퇴직하면 먹고살 수 없어서 조직 내 성장이 중요한데 3개월 일하고 3개월 쉰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 ‘노동자 동의’는 어떻게 될까. 인사팀에서 임원들이 직원들의 동의를 얼마나 받았는지를 기준으로 실적관리를 시작하고, 부서끼리 비교할 것이다. 임원이 ‘너 동의 안해? 고과 안 준다’ 이렇게 할 것이다. 이 대표가 국회 토론회에서 기업들에게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건 아니죠?’라고 묻던데, 기업들은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게 맞다. 노동계와 협의하는 대신 정치권의 승인을 받아 법을 바꿔 노동자들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지금은 R&D가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다. 창의성이라는 게 한 사람이 오래 일한다고 되는 것인가. 과량의 노동과 회사에 대한 충성으로 ‘불가피한 정신 승리’가 필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한국의 반도체 업계는 ‘퍼스트 무버’
10년 전 ‘워크 스마트’ 시행한 삼성
리더 바뀌고 다시 ‘워크 하드’ 역행
‘52시간’ 풀면 전 산업으로 번질 것

- 반도체 R&D에서 ‘창의성’은 왜 더 중요해졌나.

“반도체 제품은 크기를 줄이면서 생산성과 성능이 좋아진다. 지금은 (같은 방식으로) 크기를 더 줄이는 게 어려워졌다. 금맥을 캐는데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퍼스트 무버’다. 퍼스트 무버는 방향이 중요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게 필요한 건 ‘팔로워’들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출신 인류학자인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 6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삼성전자 R&D 노동자들의 반발이 특히 거세게 튀어나왔다. 설문 참여자 90%가 반도체특별법에 반대하고 “연구 업무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가 가장 잘나가던 시기는 <초격차>의 저자인 권오현 부회장이 있던 2010~2017년이다. 그때 가장 큰 기조는 ‘워크 하드(Work Hard) 하지 마라, 워크 스마트(Work Smart) 하라’였다. 회의를 간소화하고, 임원들이 오후 6시에 퇴근하도록 했다. ‘지속가능해야 창의성이 나온다,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근무시간이 줄었고 삼성전자는 업계 1등을 했다. 쓸모없는 것을 줄이고 조직간 벽을 없애며 업무 효율화를 한 거다. 지금 삼성전자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기억한다.

2018년 리더가 바뀌고 다시 ‘워크 하드’가 돌아왔다. 회의 문화가 다시 바뀌고, 주간보고처럼 진짜 업무를 밀리게 하는 쓸데없는 문화가 생겼다. 창의적 도전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됐다. 무엇보다 기술을 기술 자체의 가능성과 창의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단기적인 재무적 성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 지금의 반도체 위기론이 ‘삼성전자의 위기’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그렇게 봐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 정책토론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반도체 업계에 노동시간 규제 예외를 허용하면 다른 업종으로까지 과로가 확대될 수 있나.

“다 풀릴 수 있다. 소재를 만드는 화학회사도, 기계장치를 만드는 제조업체도 반도체 업계일 수 있다. 삼성전자에 납품만 하는 회사 연구원의 노동시간 규제까지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성이 주 52시간 규제를 풀면, 팹(Fab·제조시설)에 같이 있는 상주 협력업체들도 당연히 노동시간이 늘 것이다.”

-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건 무엇인가.

“지금 반도체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협업 구조가 깨져 있다. 자국 내 반도체 역량을 높여야 한다.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이라 불리는 공급망을 강화하려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의 노동환경이 나아지고, 대기업만이 아니라 업계 전체를 두텁게 해야 한다.

인재·기술유출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대기업만 처우가 좋은 산업구조에서는 대기업을 퇴직하면 갈 곳이 없다. 삼성전자를 나가면 치킨집을 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고액을 약속하면 안 갈 수 있겠나. 이들이 중견기업에 가서도 노하우를 전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큰 회사만 잘 나가는 게 아니라 생태계가 건강해져야 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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