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넘어 현실정치로까지 확장된 팬덤
청년 여성들 사이에서 헌법 필사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대한민국헌법 전문’ 필사 사진. 엑스 갈무리.
손으로 쓰며 곱씹는다. 한 줄 한 줄 완성된 문장들을 벅찬 마음으로 바라본다. 2025년 1월 ‘필사’는 애정의 행위가 됐다. 애정의 대상은 헌법. 엑스(X, 옛 트위터)에는 헌법 필사를 간증하는 게시물이 줄줄이 올라온다. 펜 쥘 일 없는 시대, 아마도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을 만년필을 꺼내어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적어 내려간 인증샷, “헌법을 따라 쓰다 보니 단순히 읽기만 했을 때와는 다른 먹먹함을 느꼈다”는 ‘간증 후기’에 ‘♡’가 여러 번 눌린다.
‘헌법 필사’(더휴먼) 책의 1월 셋째 주 판매량은 전월 동기 대비 1036% 증가했다. 헌법 조문을 제시하고 필사 공간까지 따로 마련한 책이다. 지난해 10월30일 출간된 이 책은 이렇다 할 판매량 변화가 없다가 계엄 선포 직후부터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한겨레가 온라인서점 예스24에 의뢰해 뽑은 데이터를 보면, 이 책 구매자의 77.7%가 20∼40대 여성이다.(출간 직후부터 1월7일까지 집계) 필사로 애정을 고양하는 집단은 또 있다. 밴드 데이식스(DAY6)의 팬덤이다. 1월20일 출간된 ‘데이식스 가사 필사집’(삼호ETM) 책 역시 한 주 만에 예술 분야 판매량 1위로 올라섰다.
헌법과 데이식스. 청년 여성이 손으로 따라 쓰면서 더 깊이 알아가고자 했던 두 상이한 대상을 보노라면 한 단어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애정’. 이 단어는 12·3 내란사태에서 두드러진 청년 여성의 저항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읽어 낼 여지를 준다. 그동안 청년 여성의 적극적 시위 참여가 여성혐오를 동력 삼아 탄생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보기는 어딘가 부족하다. 겨울밤 남태령에 달려가 무박 2일 동안 농민들 곁을 지켜준 마음(‘남태령 대첩’), 시위에 참여하는 영유아와 그 부모가 따뜻한 공간에서 잠시 쉬었다 가길 바라며 자녀의 500일 기념 여행 경비를 헐어 ‘키즈 버스’를 대절한 마음, 파업했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470억원 넘는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노동자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마음들은 ‘분노’라는 키워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부결되자 여성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애정. 청년 여성이 헌법,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동료 시민에 대해 가진 이 감정을 지우고는 ‘다정한 저항’을 설명하기 어렵다. 12·3 내란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된 터라 청년 여성이 공동체에 갖는 감정이 청년 남성과 어떻게 다른지 등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텍스트는 아직 없다. 하지만 팬덤·기술 등의 프레임으로 행동주의(activism)를 분석했던 기존 텍스트를 통해 저항의 심층부에 자리 잡은 애정의 존재를 엿볼 수는 있다.
청년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이번 시위에서는 응원봉, 푸드트럭, 선결제 등 케이팝 팬덤 문화가 재현됐다.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이 한목소리로 “케이팝 콘서트장 같았다”고 묘사했을 정도다. 팬덤과 저항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니, 팬덤은 그동안 문화의 울타리를 넘어 정치 영역까지 비판적 참여를 꾸준히 넓혀왔다. ‘케이팝 행동주의와 젠더화된 정동’은 이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젠더스피어의 정동지리’(산지니)에 수록된 이 텍스트는 케이팝 팬덤이 정치적 저항에 나섰던 앞선 사례를 소개하고, 젠더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사유한다. 글을 쓴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대중문화의 소비와 생산에 대한 참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팬덤 실천이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상”을 ‘정치적 팬 행동주의’라고 명명한다. 초기 팬 행동주의는 문화의 반경 안에 머물렀다. 2018년 비티에스(BTS) 팬덤이 극우 성향 일본 작곡가의 앨범 참여를 반대해 끝내 신곡 발표를 무산시킨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팬덤이 기존의 팬 네트워킹과 참여문화적 리터러시를 통해 쌓은 문화적 기술을 이용해 현실 정치에 대한 시민 참여에서 행동주의 주체로서 역량을 드러내는 사례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팬덤 공동체 안에서 쌓은 경험, 역량, 자신감이 시민 공동체 참여를 주저하게 했던 진입장벽을 가뿐히 뛰어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다.
‘정치적 팬 행동주의’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2021년 칠레의 케이팝 팬덤은 ‘보리치를 지지하는 케이팝 팬들’(Kpopers por Boric) 캠페인을 펼치며 1986년생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의 가브리엘 보리치를 적극 지지했다. 상대 후보는 이민, 임신 중단,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이었다. 팬덤은 트위터에 케이팝과 보리치를 엮은 수천개 게시물을 올리고, 컵홀더 등 보리치 굿즈를 제작해 나눠주며 지지운동을 폈고, 결국 보리치가 당선됐다. 이듬해 필리핀 대선에서도 케이팝 팬들은 유일한 여성 후보였던 레니 로브레도를 향한 흑색선전과 성차별적 인식에 저항하는 집단적 캠페인을 벌였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로 잘 알려진 인종차별 철폐 운동 당시, 비티에스 팬덤이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반동적 운동에 맞서 해시태그 ‘납치’ 운동을 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저자는 팬덤 공동체에서 관찰되는 ‘상호 돌봄’의 문화도 짚는다. 2022년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 비티에스 콘서트 장소로 선정된 부지는 10만명 수용 공간에 출입구가 1개뿐이어서 사고 위험이 상당했다. 팬들은 집단으로 항의하는 한편, 외국 팬들의 안전한 콘서트 관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대형 로커 위치, 와이파이 무료 이용 장소, 휠체어 이동 동선, 코로나 방역 규정, 응급상황 대응 요령을 담은 가이드북을 제작해 배포했다. 지은이는 이 일화를 “가부장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과 팬덤 공동체에 대한 애착의 정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행동주의적 팬 실천”이라고 썼다. 애정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인 셈이다. 이러한 공동체 내 돌봄은 남태령 대첩에서도 관찰됐다. 엑스에는 “응원봉 하나 달랑 들고 갔는데, 갑자기 옆에서 툭툭 치더니 장갑 없다고 장갑 줌, 또 툭툭 치더니 양말 짧다고 양말 줌” 등 동료 시민으로부터 돌봄을 받았던 일화가 넘쳐난다.
그동안 팬 행동주의는 슬랙티비즘(slacktivism·클릭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나 유희 혹은 놀이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이와 거리를 둔다. 그러면서 “빠순이”라는 멸칭이 보여주는, 여성 집단에 대한 관습적 멸시를 짚는다. 글 말미 저자는 “팬덤의 지향이 사회적 대의와 조우할 때 그들 내부에서 어떤 주체성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고 썼다. 이번 내란사태는 이 “주체성의 변화”를 들여다볼 기회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 기반한 “조직 없는 조직”(‘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셔키 지음, 갤리온, 2008)으로 저항을 이어나가는 양상은 이미 2016년 촛불 시위에서 포착된 바 있다. 이번 국면에서는 그 정도가 강화되고, 엑스가 명실상부한 저항의 제1 기지이자 싱크탱크가 됐다는 점이 약간 다를 뿐이다.
왜 엑스일까. ‘트위터와 최루가스’(Twitter and tear gas, 예일대 출판부, 2017, 국내 미출간)는 이에 대한 답을 포함하고 있는 책이다. 디지털 기술이 시민의 저항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기술사회학자 제이넵 투펙치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세계 각국의 시위 참여자 인터뷰 등을 통해 ‘네트워크화된 시위’(디지털 기술의 연결성을 통해 구성된 운동)의 강점과 약점을 규명한다.
책 제목에 페이스북이 아니라 트위터가 들어간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저자는 페이스북과 차별화된 트위터의 일부 특성이 대중 시위를 조직하는 데 유리한 지점을 짚어낸다. ①익명성과 ②최신순 정렬 기능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이 이집트 혁명(2011)을 엎어버릴 뻔했던 일화와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질식시켜버릴 뻔한” 사례를 소개한다. 이집트, 튀르키예, 홍콩의 사례처럼 권위주의 혹은 독재에 대항하는 시위를 조직하는 데 있어 실명 정책은 불리한 토양이다.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은 알고리즘 역시 특정 이야기를 아예 묻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나에게 ‘흑인의…’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 트위터의 최신순 정렬 기능이 없었다면 이 뉴스는 국가 의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한 최신순으로 피드를 구성하는 기능은 현재 일부만 엑스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역시 엑스가 저항의 기지가 된 것은 한국에서 온라인 공간이 성별로 구획되어 여성 다수가 엑스에 운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진행되던 2010년대 중반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자행되는 혐오 발언, 성차별 폭력에 지쳐 트위터로 떠나거나 밀려났다. “페이스북, 에브리타임(대학별 커뮤니티)의 말들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 트위터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페이스북은 지인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까지 집요하게 찾아내 친구를 맺게 하는 플랫폼”이었지만 트위터는 “철저한 익명의 공간”이었고, “자신의 타임라인을 완전히 자신의 선택에 따라” 꾸밀 수 있어 “안전한 성”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판을 까는 여자들’, 신민주·노서영·로라, 한겨레출판, 2022)
그렇게 밀려나 둥지 튼 곳에서 청년 여성은 저항의 전술,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험해왔다. “개인의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을 통해 우연히 길어낸 관계들을 구성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사적인 경험을 공적 이슈화·담론화하고 관심을 끌어내는 역량을 (청년 여성들은) 가지고 있다.”(김수아 서울대 교수의 ‘온라인 공간을 횡단하는 여성들’,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에 수록, 손희정 외 17명 지음, 한겨레출판, 2024) 강남역·혜화역 시위, 미투로 대표되는 각종 해시태그 운동은 이 역량을 증명한다.
다만 이번 광장이 종전과 다른 것은 청년 여성의 물리적, 상징적 위치다. 2016년 촛불 시위에서 광장 한켠 ‘페미존’(박근혜 퇴진을 외치면서 동시에 여성혐오 담론과도 맞섰던 일군의 페미니스트 집단)에 머물렀던 이들은 이제 광장의 중앙을 메웠다. 그동안 ‘촛불소녀’ ‘유모차 부대’라는 “가부장제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성의 이름”(‘여성은 광장에서 시민일 수 있을까’, 김영선, 문학3, 2017)으로만 호명됐던 여성들에게 더는 ‘시민’ 외에 다른 수식어는 필요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