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은 있니?”
“슬슬 결혼해야지”
“애 가질 때 되지 않았니?”
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 단란한 분위기를 한번에 망칠 수 있는 잔소리 목록입니다. “잔소리를 하려면 세뱃돈을 주고 하라”며 잔소리 가격표가 등장할 정도예요. 미혼율은 올라가고 출산율은 떨어지는 시대, 자식의 연애·결혼·출산을 궁금해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는 됩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자식 간에 상처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까요?
26년간 성상담·성교육 전문가로 일하며 다양한 세대를 만나 온 세종대 배정원(53) 교수에게 해답을 구했습니다. 배 교수는 ‘성과 문화’라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짝을 지어 데이트해 보는 과제를 내줘 화제를 모았는데요. 수강 신청이 3초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라고 합니다. 책『배정원의 사랑학 수업』(행성B)에선 만남부터 관계 맺기, 섹스, 이별까지 실용적인 사랑의 조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배 교수는 일단 “젊은 세대가 연애와 결혼에 대해 느끼는 무게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무게감을 덜어 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죠. 배 교수는 “결혼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 대신에 ‘이 방법’을 써 보라고 조언하는데요.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녀가 명절에 예비 배우자를 데려왔는데, 부모 성에 차지 않는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6년 베테랑 상담 전문가는 자녀들과 연애와 결혼에 대해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자세히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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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이 연애 안 하는 진짜 이유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우리나라가 조금 더 급격하게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왜 연애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연애에 무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사랑과 연애를 ‘뺄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과 돈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연애가 힘들어집니다. 지금 당장 이뤄야 할 목표가 많은데, 연애로 인해 소모되고 싶지 않은 것이죠. 뭔가 이룬 다음에 연애하겠다는 청년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개인화되고 있잖아요. 반면에 결혼은 배우자나 자녀를 책임지는 것이고, 계속 서로를 봐주는 일이에요. 이게 쉽지 않습니다. 희생이 필요해요. 이것을 ‘뺄셈’으로 생각하면 결혼이 어려워집니다. 결혼이 인생을 불안하게 하고, 구속한다고 느껴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뀐 이유도 있습니다. ‘내가 나로 잘 살고 싶기 때문’에 결혼과 연애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죠.
돈이 없으면 결혼을 못하는 시대가 됐어요. 결혼식 행사 비용만 대략 40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하면, 월 100만원씩 저금해도 3년 이상 걸립니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집이 없는 게 당연했어요. 단칸방이나 반지하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해도 ‘우리는 이제 시작이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 시대고, 그런 자신감을 갖기 어렵죠.
‘겉으로 보이는 삶’의 기준치가 높아졌어요. 조건을 비교하게 되고, 간을 보고 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자본 중심의 사회로 가면서, 결혼이 ‘신뢰 공동체’가 아니라 ‘경제 공동체’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적으로 오고 가는 것들에 민감해지면서, 결혼을 놓고 덧셈과 뺄셈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결혼정보회사(결정사)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사는 배우자의 조건에 따라 등급과 계급을 매기잖아요. 결정사의 기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눈이 끝없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혼의 무게감이 더 커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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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 하니?” 대신 이렇게 질문해라
자녀에게 “너 결혼은 안 하니”라고 물어보면 아마 정색할 겁니다. 잔소리로 느껴지니까요. 부모가 먼저 자녀의 연애나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순간, 자녀는 부담을 느껴요.
저는 오히려 부모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려주라고 권하고 싶어요. ‘성과 문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결혼 탐색 인터뷰’ 과제를 내줍니다. 부모님을 인터뷰하는 건데요. 어떻게 연애를 시작했는지,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지, 결혼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떻게 결혼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물어보는 겁니다.
맞습니다. 이 과제에 대한 부모와 자녀의 만족도가 모두 높았는데요.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안 좋은 줄 알았던 한 학생은, 인터뷰를 하고 나서 부모님 사이에 끈끈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요. 어떤 학생은 결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게 됐고요. 부모의 결혼 이야기는 자녀의 결혼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를 낳는 건 본인들이 결정하는 겁니다. 다 각자의 삶이 있어요.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간섭으로 느껴지는 얘기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아이를 안 낳는 건, 사회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일단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고요. 출산과 육아를 도맡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도 있습니다. 스웨덴처럼 회사마다 어린이집이 있고, 아이가 아플 때 아빠든, 엄마든 눈치 보지 않고 조퇴할 수 있다면 왜 아기를 안 낳겠어요.
네. 그래서 저는 (프랑스처럼) 동거를 제도화하면 좋겠습니다. 동거인에게 결혼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거죠. 동거를 통해 낳은 아이도 국가에서 똑같이 지원해 준다면 출산율도 올라갈 겁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그렇게 무겁고 어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계속)
자녀가 예비 배우자를 데려왔는데, 마음에 안 든다면?
“건달 같은 남자를 데려와도 반대하지 말라”
스무 살 딸이 건달 같은 남자와 결혼 후 암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비난하지 않고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 남자가 도박과 외도로 딸의 속을 썩였는데도요. 이 부모는 왜 그랬을까요.
배정원 교수가 부모들에게 전하는 조언, 더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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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결혼해야지”
“애 가질 때 되지 않았니?”
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 단란한 분위기를 한번에 망칠 수 있는 잔소리 목록입니다. “잔소리를 하려면 세뱃돈을 주고 하라”며 잔소리 가격표가 등장할 정도예요. 미혼율은 올라가고 출산율은 떨어지는 시대, 자식의 연애·결혼·출산을 궁금해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는 됩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자식 간에 상처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까요?
세종대에서 '성과 문화'를 가르치는 배정원(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교수.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젊은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26년간 성상담·성교육 전문가로 일하며 다양한 세대를 만나 온 세종대 배정원(53) 교수에게 해답을 구했습니다. 배 교수는 ‘성과 문화’라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짝을 지어 데이트해 보는 과제를 내줘 화제를 모았는데요. 수강 신청이 3초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라고 합니다. 책『배정원의 사랑학 수업』(행성B)에선 만남부터 관계 맺기, 섹스, 이별까지 실용적인 사랑의 조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배 교수는 일단 “젊은 세대가 연애와 결혼에 대해 느끼는 무게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무게감을 덜어 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죠. 배 교수는 “결혼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 대신에 ‘이 방법’을 써 보라고 조언하는데요.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녀가 명절에 예비 배우자를 데려왔는데, 부모 성에 차지 않는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6년 베테랑 상담 전문가는 자녀들과 연애와 결혼에 대해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자세히 물었습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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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이 연애 안 하는 진짜 이유
Q : 청년들이 연애를 안 합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2022년)에 따르면, 19~34세 중 65.5%가 연애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우리나라가 조금 더 급격하게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왜 연애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연애에 무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사랑과 연애를 ‘뺄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과 돈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연애가 힘들어집니다. 지금 당장 이뤄야 할 목표가 많은데, 연애로 인해 소모되고 싶지 않은 것이죠. 뭔가 이룬 다음에 연애하겠다는 청년이 많습니다.
Q : 결혼을 안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개인화되고 있잖아요. 반면에 결혼은 배우자나 자녀를 책임지는 것이고, 계속 서로를 봐주는 일이에요. 이게 쉽지 않습니다. 희생이 필요해요. 이것을 ‘뺄셈’으로 생각하면 결혼이 어려워집니다. 결혼이 인생을 불안하게 하고, 구속한다고 느껴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뀐 이유도 있습니다. ‘내가 나로 잘 살고 싶기 때문’에 결혼과 연애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죠.
Q :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는 이유 1위가 ‘결혼자금이 부족해서’였습니다.
돈이 없으면 결혼을 못하는 시대가 됐어요. 결혼식 행사 비용만 대략 40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하면, 월 100만원씩 저금해도 3년 이상 걸립니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집이 없는 게 당연했어요. 단칸방이나 반지하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해도 ‘우리는 이제 시작이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 시대고, 그런 자신감을 갖기 어렵죠.
Q : 그래서 결혼의 조건이 더 까다로워졌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삶’의 기준치가 높아졌어요. 조건을 비교하게 되고, 간을 보고 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자본 중심의 사회로 가면서, 결혼이 ‘신뢰 공동체’가 아니라 ‘경제 공동체’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적으로 오고 가는 것들에 민감해지면서, 결혼을 놓고 덧셈과 뺄셈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결혼정보회사(결정사)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사는 배우자의 조건에 따라 등급과 계급을 매기잖아요. 결정사의 기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눈이 끝없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혼의 무게감이 더 커지겠죠.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결혼한 신혼부부는 결혼 비용으로 약 2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예정자는 2억3000만원을 예상해 비용은 매해 약 1000만원씩 증가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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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 하니?” 대신 이렇게 질문해라
Q : 부모 입장에서는 연애와 결혼을 안 하는 자녀가 걱정될 수 있어요.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요?
자녀에게 “너 결혼은 안 하니”라고 물어보면 아마 정색할 겁니다. 잔소리로 느껴지니까요. 부모가 먼저 자녀의 연애나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순간, 자녀는 부담을 느껴요.
저는 오히려 부모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려주라고 권하고 싶어요. ‘성과 문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결혼 탐색 인터뷰’ 과제를 내줍니다. 부모님을 인터뷰하는 건데요. 어떻게 연애를 시작했는지,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지, 결혼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떻게 결혼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물어보는 겁니다.
Q : 연애와 결혼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 과제에 대한 부모와 자녀의 만족도가 모두 높았는데요.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안 좋은 줄 알았던 한 학생은, 인터뷰를 하고 나서 부모님 사이에 끈끈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요. 어떤 학생은 결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게 됐고요. 부모의 결혼 이야기는 자녀의 결혼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Q :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도 명절 단골 질문입니다.
아이를 낳는 건 본인들이 결정하는 겁니다. 다 각자의 삶이 있어요.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간섭으로 느껴지는 얘기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아이를 안 낳는 건, 사회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일단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고요. 출산과 육아를 도맡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도 있습니다. 스웨덴처럼 회사마다 어린이집이 있고, 아이가 아플 때 아빠든, 엄마든 눈치 보지 않고 조퇴할 수 있다면 왜 아기를 안 낳겠어요.
Q : 결혼과 육아에 대한 무게감을 국가와 사회가 덜어줘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래서 저는 (프랑스처럼) 동거를 제도화하면 좋겠습니다. 동거인에게 결혼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거죠. 동거를 통해 낳은 아이도 국가에서 똑같이 지원해 준다면 출산율도 올라갈 겁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그렇게 무겁고 어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배정원 교수는 "부모의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녀의 결혼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계속)
자녀가 예비 배우자를 데려왔는데, 마음에 안 든다면?
“건달 같은 남자를 데려와도 반대하지 말라”
스무 살 딸이 건달 같은 남자와 결혼 후 암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비난하지 않고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 남자가 도박과 외도로 딸의 속을 썩였는데도요. 이 부모는 왜 그랬을까요.
배정원 교수가 부모들에게 전하는 조언, 더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686
〈더,마음〉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한강, 달변 아닌데 신기했다” 스피치 전문가도 놀란 연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6345
부부관계 좋은데 정신과 갔다…50대 주부 말 못할 속사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2017
중년男은 왜 아내에 분노하나…‘욱’하기 직전, 세련된 해소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6810
“불륜은 과학입니다” 그 길로 빠지는 대화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4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