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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육아에 커피는 절대적 지원군

‘커피냅’ 통해 쪽잠 후 밤시간 버텨


헬카페부터 커피 리브레까지

서울만 해도 멋진 카페 수두룩


아들과 커피 한잔할 수 있을 때

이 모든 카페를 다시 찾으리라


담배는 애당초 끊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무려 80%나 올렸을 때. 빨아들일 때의 몽롱함과 내쉴 때의 이완. 왼손에는 커피 한 잔,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한 대를 피워 들고 보내던 식후의 달콤함. 삼삼오오 모여 피울 때의 동질감과 낭만도 좋았지만 4500원은 너무 비쌌다. 하지만 왼손에 들었던 커피만은 아직 쥐고 있다. 정서적으로나 체력적으로도, 그때보다 훨씬 깊고 향긋하게 즐기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의 위로는 육아였다. 아들은 잠이 얕았다. ‘100일의 기적’과 ‘100일의 기절’ 사이, 아들은 후자였다. 100일 즈음 인간 세상에 조금이나마 적응해 낮밤을 가리고 통잠을 자는 아기들을 100일의 기적이라고 한다. 기절은 여전히 잠이 얕아서 부모가 고생하는 경우. 그때부터 돌 즈음까지 우리 집은 길게 잠든 적이 없었다. 커피는 거의 절대적 지원군이었다.

하룻밤에 3~4번씩, 2~3시간에 한 번씩 깨는 아이를 매번 달래고 재우다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한 번 깨면 20분씩 달래곤 했다. 눈 밑은 검어지고 입술에 핏기가 가셨다. 해가 떠도 좀비처럼 몽롱했지만 일은 일이었다. 틈틈이 회복해야 했다. 그때 가장 애용했던 방법이 바로 ‘에스프레소 냅’(espresso nap). 에스프레소 더블샷 한 잔을 내려 얼른 마시고 바로 잠을 청한 후 20분 정도 쉬는 묘수였다. 꼭 에스프레소일 필요는 없어서 ‘커피냅’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피로를 느끼는 건 아데노신이 뇌에 쌓이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활동을 방해한다. 짧은 잠은 아데노신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카페인과 낮잠의 협업을 통해 피로로부터 빠르게 벗어나는 방법인 셈이다. 영국 러프버러대학 수면연구센터 연구팀이 24명의 젊은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연구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어딘가에서도 연구했다지만 보시다시피 매우 소규모의 연구이기 때문에 철석같이 믿을 필요는 없겠지만….

커피의 매력을 일깨워준 헬카페의 커피.


그땐 효과가 있었다. 주로 저녁 식사 이후에 내려 마셨다. 마침내 집중할 수 있는 밤시간에 최대한 맑아지기 위해서였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누웠다가 내내 잠들었던 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때 마신 에스프레소 덕에 참 많은 일을 각성한 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삶의 질이니 수면의 질이니 따질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커피가 각성시킨 에너지는 내일의 우리를 위한 힘이라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바로 그때 커피가 곁에 있었다.

애초에 커피가 발견된 것도 비슷한 경우였다. 일종의 전설 혹은 설화라고 해야 할까. 몇 가지 전설 중 하나는 서기 850년 즈음 에티오피아에서 염소들을 돌보던 목동 칼디의 이야기다. 어느 날 칼디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신이 나 있는 염소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붉은 열매와 짙은 녹색의 잎사귀를 가진 나무 곁에 머물던 염소들이 마치 그들만의 파티를 열고 춤추며 노는 것처럼 보였다.

땅에 떨어진 붉은 열매를 의심한 칼디가 인근 수도원 승려들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승려들은 그 열매를 먹어봤지만 너무 써서 불 속으로 던져버렸는데, 불에 구워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를 내기 시작해 ‘옳다구나’ 하고 우려 마시게 됐다는 것이다. 맛도 맛이었지만 역시 각성 효과가 매혹적이었다. 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조용하고 지루한 수련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승려들에게도 일종의 ‘꿀팁’이 된 것이었다.

17세기에는 마침내 유럽에 상륙했다. 유럽 최초의 카페는 1645년 이탈리아 베니스에 생겼다. 1652년에는 영국 최초의 카페 파스카 로제가 문을 열었다. 맛있는 음료가 있고 사람이 모이면 빛나는 대화가 움트는 법. 카페는 당대 문화의 산실이 되었다. 파스카 로제 역시 세계에서 활약하던 상인들이 각자의 정보를 교류하는 장이었다.

파스카 로제에 넘실거리던 이야기와 정보를 모아 주 3회 발행하던 소식지의 이름은 ‘Tatler’(태틀러)였다. 수필가 리처드 스틸 경이 1709년 런던에서 창간한 정기간행물 ‘Tatler’는 근대 신문의 전형이 되었고, 그 이름은 1901년 영국에서 처음 발행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커피와 각성, 뉴스와 이야기, 종이와 활자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흐름의 중심에 커피가 있었다.

영국에 파스카 로제가 있다면 보광동에는 헬카페가 있다고 무척 개인적인 편애를 드러내도 될까. 커피에 대한 본격적인 애정은 2013년 즈음 헬카페가 문을 열었을 때 ‘헬라테’를 비롯한 시그니처 음료들을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세상에 커피가 이렇게 복잡미묘한 음료였나 싶은 경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헬라테와 클래식 카푸치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물론, 솔직하고 묵직하면서도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강배전 융드립 아이스 드립커피를 위스키 온더록스처럼 사치스럽게 즐겼다. 너무 많이 마셔서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덜덜 떨려도 두 잔 이상은 꼭 마시게 되는 마성과 야성의 공간. 카페를 나설 땐 헬카페가 ‘단맛 신맛 쓴맛의 적절한 스펙트럼’이라 소개하는 밸런스 원두와 ‘서늘하고 깔끔한 느낌의 이탈리안 블렌드’라 쓰는 강배전 블렌드 원두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 산다.

홈카페를 그럴싸하게 만들어주는 브레빌의 에스프레소 머신.


집에 오면 브레빌 머신으로 한 잔 한 잔 최적의 맛을 찾아가며 원두 200g이 사라질 때까지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내린다. 기분과 필요에 따라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두유를 섞은 카페라테 사이에서 양껏 즐긴다. 브레빌 바리스타 터치 임프레스 BES881은 집에서 그럴듯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지만 경험은 많지 않아 망설이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쉽고 재미있게, 손맛까지 느껴가며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돕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자상하게 돕는다’는 문장은 이 멋진 기계를 사는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날의 나들이가 서울의 서쪽을 향할 때는 프츠 도화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늘 북적이는 와중에도 다정하고 전문적인 바리스타들과 함께 단연코 세계 수준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매장에서 직접 굽는 빵에는 하나하나 윤기가 흐르고, 진열대에 놓여 있는 굿즈들은 사도 사도 또 사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의 압축된 힘이 있다. 마포구 새창로에 있는 도화점 외에도 세 곳의 매장이 더 있다. 종로구 율곡로 아라리오 갤러리에는 원서점, 서초구 강남대로에는 양재점, 서귀포시에는 성산점이 있다.

동쪽에서는 강동구청 근처에 있는 커피 몽타주 성내점에서 즐기는 오후를 아낌없이 편애한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던 지난여름, 지금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시그니처 음료를 한 잔 마시고 기가 막히도록 상큼하게 컨디션을 회복한 순간이 아직도 쨍하니 생생하다. 두 번째 잔으로는 브루잉 커피를 챙겨 마셨다. 어떤 원두를 마셔야 할지 고민될 때는 바리스타에게 편하게 물어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다. 약은 약사에게 커피는 바리스타에게. 언제나 후회 없는 맛과 향과 온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 회사 소개에 “네, 우리는 커피에 미친 사람들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서울 곳곳의 커피 리브레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성북구 고려대로에 있는 라플루마앤 보헤미안에는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지 오매불망이다. 시간은 없고 한국의 멋진 카페들은 이렇게나 소중하니 커피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피곤해 죽겠는 날에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담배는 끊어도 커피와는 이별하지 않는다. 마침내 아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이 모든 카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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