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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가 없는) 바람이 전 세계 외식업계에 불고 있다.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드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요리에는,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먹거리를 다음 세대에도 전하려는 책임 의식이 담겨 있다.

■남기지도, 버리지도 않는다…쓰레기통 없는 식당들

영국 런던 동부의 ‘힙’한 동네 헤크니에는 쓰레기통 없는 레스토랑이 있다.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 ‘사일로’(silo)다. 이곳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난 뒤 배출되는 쓰레기가 없도록 식자재를 전부 요리에 활용한다. 구운 빵의 딱딱한 겉부분을 후식용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로 만들거나 손님 테이블에 올릴 수 없는 채소의 껍질, 뿌리 등은 따로 모아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식이다.

런던의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 ‘사일로’ 에서는 남은 음식과 식자재를 퇴비로 만들거나 발효시켜 음식 재료로 재탄생시킨다. @freaberlin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은 그렇다 쳐도 손님들이 먹고 남긴 음식은 어떻게 처리할까? 퇴비로 만들어 지역 농부들에게 제공하고 그런데도 폐기해야 하는 음식물은 발효시켜 새로운 음식 재료로 재탄생시킨다. 사일로에서는 음식뿐 아니라 식당의 가구나 집기류들에도 친환경 재활용 소재를 이용했다. 식당 바닥재는 재활용 코르크를, 접시는 와인병을, 화려한 무늬를 뽐내는 멋들어진 테이블은 버려진 과자봉지를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2014년 ‘쓰레기통이 없는 레스토랑’을 내걸고 사일로를 오픈한 더글러스 맥마스터 셰프는 “쓰레기는 상상력의 실패”라고 말한다.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실험을 통해 쓰레기를 없앨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버려지는 음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독일 베를린의 비건 레스토랑 ‘프레아’(Frea)는 손님에게 ‘낭비 없이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는 원칙에 따라 철저한 쓰레기 없애기 시스템을 도입했다. 100% 식물성 식자재로 완전 채식 메뉴를 제공해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줄이고, 한번 식당에 들어온 식자재는 버리는 것 없이 100% 활용하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베를린의 제로 웨이스트 비건 레스토랑 ‘프레아’(Frea)의 요리들. @freaberlin


프레아는 식자재 등의 공급망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구축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가까운 지역 농가와 친환경 생산업체로부터 식재료를 공급받고, 공정무역이나 유기농 인증 제품만을 사용한다. 파스타와 빵, 크림, 소스 등을 레스토랑에서 직접 만드는데 이는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장재와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손님들이 남긴 음식은 식당 한쪽에 있는 퇴비 기계를 통해 비료로 만들어 지역 농가로 보낸다.

친환경 식당이라고 해서 함부로 금욕주의적 요리를 떠올리지 말 것. 프레아는 비건뿐만 아니라 모든 고객에게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하며 베를린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대표 장소로 지역 주민과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외식업계에서 줄이고 있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뿐만이 아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준우승자로 인기를 끈 셰프 에드워드 리는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 ‘플라스틱 제로’를 목표로 하는 비영리 식당 ‘시아’(SHIA)를 오픈했다. 이 식당의 플라스틱 제로 정책은 단순히 비닐백이나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정도의 소극적 단계를 뛰어넘는다.

가스·플라스틱·쓰레기 없는 레스토랑 ‘시아’를 이끄는 에드워드 리와 스테프들. 시아 홈페이지


에드워드 리는 ‘NO GAS, NO PLASTIC, NO WASTE’를 모토로 내걸었다. 가스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없는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아에서는 가스스토브 없이 전기만을 사용해 주방을 운영하고, 메뉴판이나 펜, 유니폼 등 소모품은 재생 소재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며, 일회용 용기 대신 다회용 용기를 쓰는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식기류를 포함해 식당 내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식자재 공급망 전체에서 플라스틱 제로를 실현하는 것이 시아의 목표다.

■미식업계 화두로 떠오른 ‘지속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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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쓰레기 없는’ 식당들은 농업과 식품 공급망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며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뿐 아니라 음식의 생산부터 소비와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전 같으면 버려졌을 식재료의 쓰임새를 찾고,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까운 지역 생산물을 활용하는 ‘로컬 소싱’이 대표적인 방식. 낭비되는 식재료가 없도록 메뉴의 개수를 줄이고 테이블에 일회용 냅킨 대신 면 손수건을 제공하는 것도 크고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외식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은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와도 멀지 않다. 미국레스토랑협회는 ‘2025 인기 요리 트렌드 전망’(2025 What’s Hot Culinary Forecast)에서 ‘지속 가능성’과 ‘로컬 소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외식 트렌드를 조명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친환경적으로 운영하는 외식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지속 가능성이 글로벌 외식업계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주요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을 발생시킨다. 게티이미지뱅크


실제 음식물 쓰레기는 주요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을 발생시키는 환경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매년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가 버려진 음식에서 나온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항공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거의 5배 규모다. 거대한 비행기가 내뿜는 온실가스보다 우리가 먹다 버린 음식물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지구를 더 아프게 하는 셈이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에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생태계를 보전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소비 판단 기준이 되며 요리와 서비스뿐 아니라 미식 생활 전반에 걸친 외식업계의 친환경적 노력이 더 많은 충성고객을 끌어모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고물가 시대, 친환경 소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인기를 끄는 사업도 있다. 덴마크 사업가 메테 뤼케가 2015년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투굿투고’(Too good to go)는 식당과 베이커리, 슈퍼마켓 등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당일 판매되지 않고 남은 음식을 70%가량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식당 입장에서는 폐기 위기에 놓인 식품을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음식과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으니 음식점과 소비자, 지구까지 ‘윈윈’이다.

당일 판매되지 않고 남은 식품과 식자재를 소비자들에게 연결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투굿투고’. @toogoodtogo.usa


이 앱은 이용자가 2024년 5월 기준 780만명으로 미국, 영국을 포함한 17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물가가 살인적인 뉴욕과 런던에서는 ‘투굿투고로 1주일 살기 챌린지’ 등이 유행할 정도다.

■ 칵테일도 제로 웨이스트, 주목받는 친환경 칵테일바들

유럽에 비해 속도는 더디지만 국내 외식업계에서도 환경친화적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바(bar) 인터스트리에 부는 제로 웨이스트 바람이 흥미롭다.

‘아시아 베스트 바 50’를 비롯해 각종 글로벌 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의 바 ‘제스트’(ZEST)는 태생부터 작정하고 제로 웨이스트 콘셉트로 문을 연 칵테일 바이다. 제스트라는 상호 자체가 ‘제로 웨이스트’의 준말이기도 하다.

바 ‘제스트’의 ‘시티 비즈니스’ 칵테일. 서울 도시 양봉가들로부터 받은 꿀을 사용한다. @zest.seoul


이곳의 바텐더들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칵테일의 주재료인 토닉워터와 진저에일, 콜라까지 직접 만든다. 바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는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 쓰레기를 어떻게 없앨까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칵테일에 사용되는 허브와 식용 꽃은 남양주 농가에서 재배한 것을 바텐더들이 직접 수확하고 과일 자투리, 남은 향신료나 커피 등 모든 식재료는 건조, 침출, 발효, 증류를 거쳐 다양하게 업사이클한다. 과일 껍질과 남은 과육을 증류한 진으로 만든 ‘제이앤티’(Z&T), 도심 생태계 복원을 돕는 서울의 양봉가들에게서 공급받은 꿀을 사용한 ‘시티 비즈 니스’(City Bee’s Knees)는 환경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제스트의 철학을 재치있게 담아낸 칵테일이다.

개성 강한 바텐더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의 칵테일 바 ‘파인앤코’의 홍두의 대표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마스크를 재활용해 독창적인 코스터(컵받침)를 제작했다. 마스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원단의 90%만 제품화되고 10%는 잘린 채 폐기되는데 이를 녹여 손님들에게 칵테일과 함께 제공하는 코스터를 만든 것이다. 굴 껍데기 같기도 하고, 물결치는 파도 같기도 한 이 컵받침은 파인앤코의 시그니처 칵테일인 ‘바다’(BADA)와 어우러져 멋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바 ‘파인앤코’의 마스크 업사이클링 코스터(컵받침). 파인앤코 제공


바 ‘파인앤코’의 ‘바다’ 칵테일. 파인앤코 제공


칵테일과 함께 개성 있게 표현된 메시지들은 우리가 환경을 살펴야 하는 것의 본질과도 닿아 있다. 홍 대표는 페르노리카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지속 가능함은 곧 살아남는 것을 의미한다”며 “본격적으로 환경 문제가 대두된다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저급여를 받는 서비스직”이라고 말했다. 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목표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바 문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업계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지속 가능한 바텐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내 바와 호텔, 레스토랑 종사자들과 지속 가능한 재료 조달, 자원 낭비 최소화 방법, 책임 있는 서비스 제공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는 현재까지 국내 150개 업장, 550명 이상이 참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속 가능성은 현재 전 세계 미식업계의 화두”라며 “국내에는 아직 여러 환경적·제도적 제약이 있지만, 자원 낭비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국내 외식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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