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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11월 보도 사건 피해자
'목사방' 피해 사실 뒤늦게 인지
당시 경찰, '잡을 수 없다' 통보
서울청, 수사 후 구속·송치
선생님은 "모자를 벗어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고교생 이민지(17·가명)에게 소리를 질렀다. 분명 교권을 침해하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민지는 딥페이크 피해자였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정말 미안해, 내가 딱히 할 말이 없어."

고교생 이민지(17·가명)가 자신의 알몸 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초등학교 동창 김기태(17·가명)에게 들을 수 있었던 사과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DM) 하나뿐이었다. 김기태는 지난해 1월 민지의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사진을 만들어 온라인에 유포했다. 딥페이크 처벌법이 통과되기 전이었던 만큼, 30시간 성범죄 예방 교육을 받으면 되는 수강명령 처분을 받는 데 그쳤던 김기태는 끝까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교사들과 친구들에게 "오히려 내가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가해자는 또 있었다. 지난해 2월 '딸기'라는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DM을 보내온 그는 김기태가 민지의 딥페이크 사진을 유포했다고 알려줬다. 자신을 돕는 사람이라 믿고 경계심을 푼 민지는 자신이 사진 속 민지가 맞으며 어디에 살고,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도 확인해줬다. 그런데 딸기는 민지의 신상을 확인하자마자, 민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들에게 조작된 민지의 나체 사진을 보낸 후 연락을 끊었다.

민지 가족들은 경기 화성동탄경찰서에 찾아갔지만, 경찰은 4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잡을 수 없다"고 관리미제사건 종결 처리했다. 외국기업인 인스타그램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 만큼 가해자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관련기사: 내 딥페이크 사진 뿌린 '그놈', 학교는 '피해자'라 불렀다)

"못 잡는다"던 경찰에게서 온 연락

딥페이크 피해자 이민지(17·가명) 가족은 지난해 2월 민지의 딥페이크 피해를 신고했지만, 경찰로부터 '관리미제사건' 통보를 받았다. 범인이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잡을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민지 가족 제공


낙담했던 민지 가족은 지난달 31일 경찰로부터 딸기를 체포해 구속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딸기의 나이 등 개인정보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범행 피해 후 1년 만의 희소식이었다.

그런데 불안감도 커졌다. 김기태와 딸기가 최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한 '목사방' 일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달 24일 텔레그램 성착취 집단 '자경단'의 총책 A(33)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는데, 피해자는 234명(미성년자 159명)에 이른다. 2019, 2020년 조주빈(30)의 '박사방' 피해자 73명보다 3배 이상 많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집단


사진 받고 착취 대상 물색 "10명 잡으면 면죄부"



경찰 등에 따르면, 자경단 일원이었던 딸기는 정의로운 척 김기태에게 접근, 협박했다. 김기태의 딥페이크 범죄에 대해 "자필 반성문을 써와라. 이름 나이 학교 쓰고, 피해자 이름 들어가게 명확히 써와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민지 신상을 확보한 후, 민지에게 접근해 '크로스 체크'한 것이다.

김기태는 경찰 조사에서, "딸기가 '면죄부를 주겠다'며 '착취할 대상을 찾아오라'고 했고, 생활기록부까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딸기는 '목사'도 언급했다. "당신이 잘하면 목사님께 인도됩니다. 저희처럼 범죄자 잡는 일을 하고 10명을 잡으면 기존 죄를 없애는 면죄부를 받을수 있습니다" "무릎 꿇고 얼굴 보이게 반성문 또박또박 읽는 거 영상으로 찍어오세요. 5분 드립니다" 등이었다.

애초 민지를 악몽에 빠뜨린 김기태는 소문을 낸 민지 친구를 학교폭력으로 신고까지 했다. 그리고 자퇴하고 체대 입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지 가족이 학교폭력위원회를 신청하기 전에 빠르게 자퇴한 덕분에 학생기록부에는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았다. 민지네 가족은 김기태에 대해 민사소송에까지 나섰으나, 제대로 된 사과를 들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오히려 김기태 측은 "민지 사진을 목사 일당에게 1회만 전송했을 뿐, 딸기가 민지 사진을 유포한 것인데, '과장된 소문'이 퍼져 학교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민지 어머니 이소정(46·가명)씨는 "뒤늦게라도 범인을 잡게 돼 다행이지만, 이렇게 큰 사건의 피해자가 될 줄 몰랐다"면서 "대체 왜 내 딸이 당해야 했는지, 딸 정보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수 없어 불안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서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활달했던 민지는, 그 사건 이후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됐다. 초등학교 동창이 자신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배신감에 더해, 또 한 번 믿었던 사람(딸기)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민지는 늘 주변을 둘러본다고 했다.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던 학교를 나설 때조차,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이들이 '그 사진'을 보고 찾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민지 가족은 경찰과 검찰에 유포된 민지의 사진과 정보 삭제를 요청한 상태다. 조직적으로 이뤄진 만큼,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사진이 더욱 많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다. 오규식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2대장은 "피해자나 가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리란 확신도 할 수 없고, 현재까지 파악된 것 외에 추가 피해 여부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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