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고대구로병원 본관 헤리티지 홀 외벽에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 개소 내용이 새겨져 있다. 고대구로병원은 정부 지원금 중단에 따라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를 이달 28일까지만 운영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국내 최초 외상외과 전문의 교육기관인 고려대구로병원 수련센터가 예산 문제로 문을 닫기로 했다. 다발성 외상 환자의 소생·치료를 담당하는 외상외과는 살인적 업무 강도와 낮은 경제적 처우 때문에 항시 인력 부족 현상을 겪는데, 그나마 힘겹게 명맥을 이어온 수련기관마저 단 ‘9억 원’ 때문에 후학 교육을 접게 됐다. 한국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넷플릿스 TV쇼 부문 세계적 흥행을 누리는 사이, 정작 현실에선 외상외과 인력조차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기가 막힌다.
고대구로병원은 “정부 지원금 중단에 따라 중증 외상 전문의 수련센터를 이달 28일까지만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2014년 정부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매년 9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현재까지 20여 명의 외상외과 세부전문의를 키웠다.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에서 전문의를 딴 의사가 2년을 더 교육받고 외상외과 세부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지원 중단은 결국 ‘돈’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단계에선 지원 방안이 들어갔지만, 기획재정부 심의에서 삭감됐다고 한다. 석해균 선장(아덴만 작전)의 목숨을 살린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당시 아주대 교수)의 활약에서 보았듯이, 외상외과 전문의들은 추락·화재·폭발·총상·교통사고 등 급박한 상황에서 급격히 꺼져가는 목숨을 되살리는 이들이다. 외상외과는 병원에 돈을 못 벌어다 준다는 이유로 홀대받고 있어 정부 지원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관련 예산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불과 몇억 원 때문에 누군가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중증외상센터’ 드라마에도 등장하지만 누구나,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재난·사고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외상외과 지원은 결국 국민 목숨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다. 서울시가 급하게 재난관리기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정부가 자꾸 외상센터 사안을 ‘돈 문제’로만 접근하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외상센터에서 사람을 살리는 의학 드라마가 더 이상 ‘판타지’가 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추가경정예산 및 내년 예산안 편성에서 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