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6년 대부업 최고금리 109.5%→20%
불법추심하면 계약 무효화, 등록 요건도 강화
채무자 상담 프로그램 등 개인파산·자살률도↓
음지 대부업체, SNS 활동 등 아직도 있지만
경찰 연계·금융 교육으로 꾸준한 사후관리


지난달 18일 일본 도쿄의 신주쿠 가부키초 거리 인근. 한때 ‘대부업 거리’로도 불렸던 이곳 일대에는 여전히 ‘레이크’, ‘아코무’ 등 합법 대부업체들의 대형 광고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층이 전부 대부업체로 채워진 건물도 눈에 띄었다. 2000년대만 해도 이 거리 양쪽엔 70여개의 합법·불법 대부업체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합법 대부업체들, 그중에서도 대형 업체들의 비대면 영업점만 남아있다.

대부업 거리에 있는 한 건물에 들어서자 예상과 다른 모습에 놀랐다.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야쿠자 복장을 한 직원이 불법 빚 독촉(추심)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대부업체 영업점 내부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직원도 없이 무인대출심사기만 놓여있는 3.3㎡(1평) 남짓한 방 3~4개가 전부였다. 무인대출심사기에 앉아 생년월일과 이름, 전화번호, 직업 등을 화면지시에 따라 입력하니 신분증을 스캔하라는 내용이 나왔다. 기자는 신분증 단계에서 멈췄지만, 내국인의 경우 신분증을 제출하면 신용도에 따라 대출여부와 금액이 결정된다. 심사가 끝난 후 영업점 내에 있는 자동입출금기기(ATM)에서 즉석으로 돈을 찾을 수도 있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0분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 사채업계를 다룬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에서 묘사된 상상을 초월하는 금리와 잔인한 영업방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일본 정부는 20년 전 불법 사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업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 대부업체 수 추이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다수의 금융기관에 부채를 보유한 다중채무자 수도 크게 줄었다. 다중채무가 원인으로 보이는 자살률도 낮아지는 등 사회 문제도 자연스럽게 개선됐다. 또 대부분의 대부업체가 사라지면서 ‘알짜’ 대형 업체만 남게 됐는데, 무인대출심사기 같은 자동 시스템을 일찍부터 도입하는 등 소비자들의 접근성도 좋아졌다.

지난달 17일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 일대의 한 대부업체 지점. 기자가 무인대출심사기를 이용해보고 있다. /오은선 기자

日 대부업체, 4만7500개→1515개 97% 줄어
6일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이미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 불법 사금융이 사회 문제가 됐다. 당시 ‘야미킹’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불법 대부업체들은 ‘다중채무도 OK, 저금리 일원화’라는 내용의 신문이나 잡지 광고로 채무자를 모집하고, 10일에 50~60%에 달하는 초고금리 이자를 부과했다. 지불을 하지 못한 채무자에게는 불법 추심을 일삼았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법 정비를 시작했다. 2006년 개정된 대부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연 최고금리를 20% 수준으로 내리고, 채무자 연소득의 3분의 1까지만 신규 대출하도록 했다. 저신용자들이 상환 능력 이상의 채무를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무등록 대부업체가 불법 추심행위를 할 경우 처벌도 강화했다. 대부업 등록 심사를 강화하고 연간 109.5%를 넘는 이자를 붙였을 경우 그 계약을 아예 무효화시켰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1986년 많게는 4만7504개까지 늘어났던 일본의 합법 대부업체는 개정안 시행 직후인 2007년 1만1832개까지 줄었다. 2014년 2113개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 지난해 1515개의 대부업체만 남았는데, 가장 많았을 때보다 96.8%나 감소했다. 채무자들이 대부업자에게 빌린 대출액 잔액도 2006년 20조9006억엔에서 지난해에는 7조9921억엔으로 크게 줄었다.

그래픽=손민균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도 나아졌다. 일본은 여러 개의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는 다중 채무자가 많았는데, 무담보·무보증 차입 건수가 5개 이상인 사람은 2007년 171만명에서 2024년 13만800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2003년 24만2357건에 달하던 개인파산 숫자도 지난해 역대 최저인 6만2229건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다중채무가 원인으로 보이는 자살률은 2007년 6% 수준에서 2021년 3.1%까지 감소했다.

특히 일본 금융청은 다중채무 대책 프로그램을 통해 불법 대부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개정안을 만들 당시 ‘다중채무대책본부’를 설립한 일본은 채무자들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고 필요할 때 정부의 정책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불법 대부업을 이용하고 있을 경우 경찰과 연계했다. 이 결과 다중채무자들의 상담 건수는 2008년 9만5165건에 달했는데, 2023년에는 2만3601건까지 줄었다.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일본의 대부업 개정안은 수입이 적은 사람이 20%의 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채무자들이 대부업 채무를 정리하게 유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7일 도쿄 가부키초 일대 대부업거리의 한 건물. 지하 1층과 3층, 4층, 5층, 6층이 모두 대부업체다. /오은선 기자

SNS서 불법 활개 쳐도 홍보·신고로 “사전에 막을 것”
개정안 도입 당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다. 오히려 합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게 되는 사람이 생기면 불법 대부업이 더 음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도 우려했던 바와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돈을 빌려주고 빌릴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 계정 등이 활발해지면서 불법 대부업체로 의심되는 광고물이 온라인상을 떠도는 경우도 있다.

도우모토 히로시 일본 도쿄정보대학 교수는 “불법 사금융 대출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불법으로 대부업을 하는 사람들도 경찰이나 공공기관의 개입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이 때문에 ‘정확하게 상환할 수 있는 사람’만을 고객으로 삼기 위해 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SNS상에 떠도는 불법 대부업으로 의심되는 광고들. 왼쪽 화면에는 '생활자금 안심, 확실, 즉시. 급한 지출도 맡겨주세요'라는 문구가 써 있다. 오른쪽 화면에는 '최단, 당일! 면허증만으로 10만엔을 빌릴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오은선 기자

일본 금융청은 이런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과 연계해 불법 대부업체가 광고를 하는 경우 소비자들이 빠르게 신고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도 불법 대부업체로 의심되는 신고를 받으면 정기적으로 신고받은 업체 이름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불법 대출 광고를 경계하라는 내용의 문구도 SNS를 통해 꾸준히 노출하고, 불법 대출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한국이 진행하는 대부업법 개정도 법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미리 분석하고, 사회적 현상 등 법률 외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 한다”며 “본인의 수입 대비 과도한 대출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도록 금융과 경제 인식을 강화하는 교육 활동 등이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709 트럼프 가자 구상에 각국 비판 이어져…이스라엘 ‘환영’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8 [단독] 고작 3.5%… '의대 광풍'에 중도탈락자 느는데 여전히 높은 서울대 편입 장벽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7 네타냐후 '황금 삐삐' 선물에 트럼프 "훌륭한 작전"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6 다음 주초까지 강추위…오늘 수도권에도 눈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5 "아무 일도 없었다" 발언에 경악‥"국민 모독"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4 "KTX 타고 모텔비 내면 끝"…요즘 감사원 돈 없어 현장 못간다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3 [세상만사] 尹비상계엄 '천기누설' 하고 국회도 나오는 요즘 무당들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2 美공항 활주로서 여객기 2대, 어처구니없는 충돌…사상자는 없어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1 윤석열 탄핵 재판 오늘부터 하루 종일…“의원 아닌 요원” 따질 듯 new 랭크뉴스 2025.02.06
47700 목줄 당겨 쿵쿵…학대 아니라던 ‘어둠의 개통령’ 결국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9 “나경원 해임, 용산 사모님 ‘잘됐다’고”…명태균발 카톡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8 '비행기 엔진'에서 팔굽혀펴기한 남성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7 출근길 '냉동고 한파' 서울 -11도…오후엔 눈까지 내린다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6 분노의 주먹…미 법정에서 용의자에게 달려든 피해자 가족 [잇슈 SNS]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5 [샷!] 故오요안나는 '근로자'인가 아닌가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4 부정선거 '망상' 법정서도‥"그래서 병력 보내"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3 예산 9억 끊겨… 국내 유일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 문 닫는다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2 [아시안게임] 쇼트트랙 김건우·심석희, 500m 불참…혼계·중장거리 집중 new 랭크뉴스 2025.02.06
47691 '내란 혐의' 경찰 수뇌부·군 예비역 재판 오늘 시작 new 랭크뉴스 2025.02.06
» »»»»» [불법사채 덫]③ 사채꾼 ‘야미킹’ 줄자 자살률도 ‘뚝’… 대부업체 97% 줄인 일본 비결은 new 랭크뉴스 2025.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