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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박사’ 박상진 교수, ‘궁궐의 고목나무’ 출간
조선 개국보다 오래된 수령 750여년 향나무 등
고목과 궁궐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 풍성
덕수궁서 유명한 나무는 70살 된 ‘젊은’ 살구나무
뒤주에 갖힌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지켜본 창경궁 선인문 안쪽 회화나무. 수령은 300여 년이다. 눌와 제공


궁궐에서 재미나게 살펴볼 만한 새로운 흥밋거리가 생겼다. 바로 고목나무들이다.

궁궐의 고목나무는 사실 궁궐보다 더 오랜 역사를 품은 게 많다. 궁궐 전각들은 훼손되면 새로 지어졌지만 고목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궁궐에서 벌어진 숱한 역사적 순간들을 생생하게 목격한 산증인이 고목들이다. 궁궐 고목나무야 말로 궁궐의 또다른 역사, 문화인 것이다.

‘나무 박사’로 유명한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궁궐의 고목나무’(눌와)를 펴냈다. 수목학을 바탕으로 역사·고고학을 넘나들며 평생 나무를 연구한 저자가 창덕궁·창경궁을 중심으로 경복궁과 후원인 청와대, 덕수궁, 종묘의 고목들을 소개한다. 고목들이 살아온 긴 세월 만큼 저마다 품고 있는 풍성한 이야기를 씨줄로, 궁궐의 역사와 문화를 날줄로 엮어낸 것이다.

수령 750여년으로 궁궐의 고목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청덕궁의 향나무(왼쪽)와 19세기 초의 ‘동궐도’에 그려진 향나무의 모습(오른쪽). 눌와, 고려대박물관 제공


더욱이 ‘동궐도, 옛 그림, 사진과 함께 보는’이라는 부제처럼 각 고목을 ‘동궐도’(국보)나 옛 그림, 근현대 사진과 비교했다. ‘동궐도’는 200여년 전 그려진 궁궐 그림으로, 경복궁 동쪽에 자리한 궁궐(동궐)인 창덕궁·창경궁의 건물들과 4000여 그루의 궁궐 나무를 세밀하게 그린 채색 기록화다. 저자는 ‘동궐도’에 실린 나무들의 일부가 지금도 그 자리에 살아있음에 감동했고, 궁궐과 고목나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고목나무는 그저 크고 오래된 나무가 아니다. 저자는 적어도 나이는 100살 이상, 둘레는 한아름(지름 50㎝) 이상인 나무라고 한다. 궁궐 중 고목이 가장 많은 곳은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과 창경궁이다. 창덕궁·창경궁은 각각 1405년(태종 5), 1484년(성종 15)에 처음 지어져 임진왜란 때 불탔고, 광해군 대인 1615년에 재건됐다. 1395년 완공된 경복궁도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860년대 중건됐지만 일제강점기에 다시 훼손됐다. 덕수궁은 원래 궁궐로 지어진게 아닌데다 1904년 큰 화재도 일어났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본 명정전 남행각 앞 회화나무(위 왼쪽), ‘동궐도’에 그려진 이들 회화나무 모습. 수령은 300여 년이다. 눌와, 고려대박물관 제공


현재 가장 오래된 궁궐의 고목도 창덕궁에 있다. 수령 750여년의 향나무다. 창덕궁 건립보다 100여년 앞서 살던 고려시대 나무다. 정문인 돈화문에서 멀지 않은 건물인 규장각(옛 이문원) 뒷편에 있다. 용틀임하는 듯한 줄기, 옆으로 낮게 뻗은 줄기로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향나무는 속살 대부분이 없어져 살아온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이 향나무는 ‘동궐도’에도 있는데, 놀랍게도 지금처럼 가지 받침대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보호받은 것이다. 향나무가 왕실 제사에 쓴 향의 재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창덕궁 후원에는 수령 600년으로 국내 최고령 다래나무가, 관람지 인근에는 400살의 뽕나무, 선원전에는 300살의 측백나무가 있다.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는 고목들이다. 널리 알려진 성정각 옆의 매화는 임진왜란때 명나라에서 가져와 400살이나 됐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저자는 훨씬 어린 후계목으로 본다.

창경궁에는 뒤주에 갖혀 죽어야 했던 사도세자의 비극(1762년, 영조 38)을 지켜본 고목이 있다. 선인문 안쪽과 명정전 남쪽 행각 앞의 회화나무로, 수령 300여 년이다. 춘당지 남쪽 아래의 쉼터 주변에는 창경궁 터줏대감인 400여살의 느티나무가 있다.

경복궁 후원인 청와대에서 가장 오래된 고목으로 수령 740여 년인 주목. 눌와 제공


경복궁, 덕수궁의 나무들은 나이가 한참 어려 100살 안팎인 경우가 많다. 경복궁 건춘문 안쪽과 국립고궁박물관 마당의 큰 은행나무는 110살 가까이 됐다. 그런데 이들 나무는 일반적 고목과 달리 어릴 적부터 일본식 가지치기가 된 모습이다. 1918년 조선총독이 심었다는 은행나무로 추정된다. 청와대의 수궁터에는 수령 740여년의 주목, 녹지원 서쪽에는 250살의 회화나무, 녹지원에는 180살 정도의 반송이 자라고 있다.

덕수궁 석어당 앞의 살구나무는 봄마다 화려한 살구꽃으로 장관을 이뤄 많은 관람객이 찾는다. 아름드리 고목으로 보이지만 수령 70여 년이다. 눌와 제공


덕수궁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는 단청을 하지 않은 2층 건물인 석어당 앞의 살구나무다. 봄에 살구꽃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국가유산청도 아예 살구꽃이 피었다고 홍보할 정도다. 둘레가 약 2.4m에 이르러 수백년 된 고목같지만 사실은 70살 정도다. 살구나무의 성장은 워낙 빠르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재건한 돈덕전 앞, 정관헌 서쪽에는 400살 안팎의 회화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가장 오래된 고목은 망묘루 연못의 향나무로 수령 400여년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왕과 왕비, 공주, 역사적 인물·사건과 관련된 고목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주요 고목나무의 위치를 표시하고, 옛 그림·사진과 비교해 책을 읽을 때는 물론 궁궐을 찾았을 때 궁궐과 고목의 역사·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가이드북이다.

‘나무 박사’로 유명한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궁궐 속 고목나무들을 통해 고목과 궁궐의 역사문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엮은 ‘궁궐의 고목나무’(눌와)를 펴냈다. 눌와 제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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