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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지연에 추락방지장치 없이 재가동
25년 지난 노후 승강기 전국 2만2669대
잇단 불합격에 4번째 검사 올해 2배로↑
중구 항동7가 A아파트에 엘리베이터 운행 금지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연합뉴스

최근 안전 부적격 판정을 받아 운행이 전면 금지됐던 인천의 한 노후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추락 방지 장치 등 안전부품 누락 상태로 재가동에 들어갔다. 고령자, 장애인 등 주민 불편을 고려한 임시 조치지만 위험을 감수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렇게 주민들이 목숨을 담보로 타다시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전국에 2만8000대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7년간 안전검사 매번 탈락하고도 운행
인천 중구 항동7가 지상 15층 608가구 규모 A아파트는 지난달 5일 8개동 승강기 24대의 운행을 모두 중단했다. 정밀안전검사에 불합격해 사용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 아파트는 1990년 준공돼 올해 35년째를 맞은 노후 단지다.

A아파트 승강기는 설치 28년째인 2017년을 시작으로 2021년과 올해까지 3, 4년 간격으로 세 차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실시한 정밀안전검사에서 모두 ‘보완 공사 미비로 인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노후 승강기에는 현재 기준이 요구하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다.

2017년 개정된 승강기 안전관리법은 설치한 지 15년 지난 승강기는 정밀안전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후에도 3년마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운행을 시작한 지 21년이 지나 세 번째 정밀안전검사를 받는 승강기는 8대 안전부품을 설치해 안전성을 개선해야 한다.

설치해야 하는 안전부품은 추락 방지 장치, 승강장문 어린이 손 끼임 방지 수단, 승강장문 이탈 방지 장치, 승강장문 비상 가이드, 카문(승강기 안쪽 문) 어린이 손 끼임 방지수단, 카(승강기)의 상승 과속 방지 수단, 카의 문열림 출발 방지 수단, 브레이크 시스템 및 자동 구출 운전 수단이다.

다만 입주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안전부품 설치를 네 번째 검사 전까지로 3년 더 미룰 수 있다. 이때도 설치하지 않으면 운행 중단 조치가 내려진다. A아파트는 2021년 안전부품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승강기 사용을 허가받았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올해 1월에는 “4개월 안에 안전부품을 설치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공단 관계자는 지난달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A아파트 승강기는 올해 1월, 그리고 추가 유예 기간인 4개월이 지난 지난달 27일 각각 검사했는데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아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통지했다”며 “지자체가 운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옥상 방수에 밀린 승강기 안전
A아파트가 승강기 안전장치를 여태 보강하지 못한 건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아파트 주요 시설 교체나 보수에 쓰기 위해 주민들이 매달 적립하는 돈이다. A아파트도 장기수선충당금을 쌓아오기는 했지만 지난해 옥상 방수를 위한 도장 공사를 하는 데 먼저 써버렸다. 누수 피해 가구가 많은 데다 5년인 도장 공사 권장 기한도 임박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노후 아파트에 승강기 교체·수리 비용을 지원하지만 실제 필요한 금액에는 크게 못 미친다. 인천 중구청 관계자는 “전체 교체 비용이 700만원 이내면 주민 자부담금 없이 100% 지원이 가능하다”며 “그 금액을 넘어서면 자부담금이 있기는 하지만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A아파트는 승강기 안전장치 설치에 모두 7억원가량이 필요하다. 대당 3000만원 가까이 드는 셈이다. 이 아파트는 구에 비용 지원을 신청하지 않았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여유가 있었으면 승강기 수리와 도장 공사를 모두 마쳤을 것”이라며 “올해 1월부터 입주민에게 걷는 장기수선충당금을 평(3.3㎡)당 195원에서 1027원으로 4배 넘게 인상해 승강기 공사 금액은 마련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는 돈을 마련하고도 부품이 없어 승강기 수리는커녕 공사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안전장치 설치에 필요한 부품은 7월 중에나 제작이 완료될 예정이다. 아파트 측은 공사 업체로부터 “두 달 안에 공사를 완료하겠다”는 설명만 들은 상태다. 길면 오는 8월 하순까지 승강기를 쓰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부품이 제작되는 대로 공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강기 멈추자 구조요청 쏟아져
A아파트에서는 승강기 운행 중단 후 119로 구조·구급 신고가 잇따랐다. 이틀 만인 지난달 7일 오전 5시30분쯤 4층에 사는 80대 남성이 의식장애로, 다시 닷새 뒤인 12일에는 13층 80대 여성이 호흡곤란 증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소방 당국은 출동 인원을 늘렸다. 승강기를 이용할 수 없어 환자 이송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3층 거주자가 신고했을 때는 구급차로 3명이 먼저 출동하고 소방관 2명이 추가로 나갔다. 이들은 화재진압용 펌프차와 구급차가 결합된 ‘펌뷸런스’를 이용해 계단으로 환자를 옮겼다. 주민은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펌뷸런스는 화재나 긴급한 상황에만 이용하는데 승강기가 고장 나 함께 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는 고령자 비율이 높아 평소에도 노인들의 건강 상태가 악화했다는 신고가 자주 들어오는 단지다. 승강기 가동이 중단된 5일부터 21일까지 16일간 11건의 119신고가 접수됐다. 하루 반마다 한 건씩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고령자가 공황 발작이나 호흡 곤란 같은 증상을 호소한 경우가 많았다고 소방 당국은 설명했다.

주민들은 평소에도 최고 15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며 불편과 위험을 감내했다. 쌀과 물이 떨어지면 직접 계단으로 운반해야 했다. 11층에 사는 30대 주민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를 계단으로 등원시킬 수 없어 인근 원룸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도 했다. A아파트 근처 한 치킨집은 국민일보에 “배달 주문이 오면 웬만하면 직접 가져다주지만 고층 고객들은 스스로 미안해서 배달 주문을 잘 안했다”고 전했다.

공사 지연에 폭염까지… 임시 운행 허용
이런 문제가 이어지자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인천 중구는 지난달 18일 “A아파트가 준공된 이후 승강기 사고 이력이 없는 점을 토대로 일정 기간 승강기의 임시 사용을 허가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건의서를 행정안전부에 전달했다.

행안부도 결국 ‘재난 등이 발생한 경우 개선 조치 이행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안전부품 미설치 승강기에 대해 조건부 운행을 허용했다. 이 조치는 A아파트를 비롯해 오는 8월 말까지 안전부품을 설치해야 하는 전국 모든 공동주택 승강기에 적용됐다. 안전부품 수급과 설치 공사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폭염까지 지속되자 이를 사실상 재난 상황으로 해석해 내린 결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3일 “전국적으로 온열 질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A아파트에는 고령자가 많고 장애인도 46명가량 거주하고 있어 조건부 운행을 허용했다”며 “안전 확인 후 엘리베이터 운행을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승강기 임시 가동 역시 위험을 감수한 조치라는 점이다. 원래 안전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승강기를 가동하는 것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정도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당초 관리사무소는 긴급 상황이 발생해도 승강기를 임시로 가동할 방법이 없다고 했었다.

안전 불합격 4수 아파트 승강기 2.8만대
더욱이 이런 사례는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올해 5월 31일 기준 안전부품을 설치하지 않아 불합격 판정을 받은 공동주택 승강기는 154개 단지 372대다.

정밀안전검사에서 탈락한 승강기를 무단으로 운행하는 아파트도 한두 곳이 아니다. 올해 1월 경북 경산에서는 973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에 설치된 승강기 24대 중 22대가 추가 안전장치 미설치로 폐쇄됐다. 입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관리사무소는 승강기를 불법으로 운행했다. 22대 중 12대는 교체 공사를 진행하고 10대는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남 목포에서 1995년 준공된 320가구 규모 아파트의 승강기 29대가 모두 안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때도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으로 승강기를 계속 가동했다. 현재는 모두 교체한 상태이다. 대당 7500만원씩 모두 21억원을 공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승강기안전공단 통계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승객용 승강기 29만3155대 중 27.3%인 8만1대가 설치된 지 15년 이상 경과했다. 7.7%인 2만2669대는 25년을 넘겼다. 세 번째 정밀안전검사 당시 안전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네 번째 검사를 받아야 하는 승강기는 지난해 1만4141대에서 올해 2만8063대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공단 측은 “대부분의 승강기는 네 번째 정밀안전검사 도래 전 안전부품을 설치한다”면서 “공단이 안전검사 전후로 안전부품 설치에 관한 안내문을 발송하고 안전검사 때 현장에서도 안내한다”고 말했다. 행안부 및 지자체와도 협업해 정밀안전검사 대상 승강기의 부품 설치를 독려하고 있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사고 나지 않기만 바랄 뿐?
행안부는 운행 정지 결정이 내려진 아파트 승강기에 대해 2개월 안에 공사 업체와 안전부품 설치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두 달 안에 안전부품의 설치를 끝낸다’는 내용으로 계약한 뒤 승강기안전공단의 정밀안전검사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현장에 안전관리기술자를 배치해 임시로 운행을 재개하는 식이다.

그러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웅 교수는 “행안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임시 운행 근거인 ‘재난 상황’에 대한 규정이 불명확하다. 주민들이 불편해 하니 임시 조치를 취한 것 같은데 안전관리자가 상주한다고 해서 승강기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다만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면 노약자의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안전을 확보한다는 전제 아래 근본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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