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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중 사회부장 겸 스포트라이트부장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생방송 회견에서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등 경영진을 향해 ‘개저씨’라는 멸칭을 날려 화제가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 데이터베이스 ‘빅카인즈’에서 찾아보니 개저씨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건 2014년이었다. 2016년 6월 경향신문에 실린 ‘당신 개저씨인가, 젠틀맨인가’ 기사는 ‘약자를 하대하는 권위주의적인 행태, 일상적인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 데이트 폭력, 쩍벌남·노상방뇨 등 시민의식 실종, 여성비하 발언 등’을 개저씨의 행태로 나열했다.

중년 남성 누구도 개저씨로 불리고픈 이는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과 후배에게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유의 가이드라인이 인터넷에서 주기적으로 유통되는 건 이런 심리의 반영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나대는 개저씨들이 다른 중년 남성들까지 부끄럽게 만든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요즘 인권위 인지도를 높이는 일등공신이다. 인권위에선 그가 참석한 회의가 열릴 때마다 난장판이 벌어진다. 독립성이 보장된 인권위원으로서 의견이 갈리면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행태는 도를 넘어선다. 인권위 공무원 노동조합이 그를 겨냥해 낸 성명의 한 토막이다. “특정 사람이 인권위원으로 임명된 이후 위원회 주요 회의에서 막말, 비하, 협박 같은 비인권적 발언과 행동 등을 지켜봐야만 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한 사례만 보자. 김 상임위원은 지난 5월 그가 맡지 않았던 사건 관련 자료 일체를 보여달라는 요구에 난색을 표한 인권위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 확인서를 쓰도록 했다. 직원이 거부하자 이번엔 휴대폰 녹음기를 들이댔다. 직원은 녹음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김 상임위원은 무시하고 강행했다. 사실상 취조를 당한 직원은 충격에 병가를 냈다고 한다.

직원이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징계를 청구하든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김 상임위원이 상임위 회의에서 한 해명이 가관이다. 그는 해당 공무원이 4급으로 고위직이라며 “전무가 상무 불러 다그치면 그것도 직장 내 괴롭힘이냐”고 반문했다. 근로기준법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게 벌써 5년 전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해놓고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반문하는 개저씨스러움이라니!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2월부터 벌어진 의·정 갈등에서 의사 집단의 강경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임 회장은 지난달 페이스북에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며 “창원지법 판사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고 적었다. 그는 “이 여자와 가족이 병의원에 올 때 병 종류에 무관하게 의사 양심이 아니라 반드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규정’에 맞게 치료해 주시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비슷한 증상의 환자에게 널리 쓰이는 약물을 처방한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의사를 형사처벌해선 안 된다는 비판은 의협 회장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는 판사를 부를 때 굳이 ‘이 여자’라고 했다.

“어허! 이 여자가?” 이 땅의 아저씨들이 여성과 대거리를 할 때 동원하는 윽박이다. 여성에 대한 멸시가 그득 담긴 말이다. 임 회장이 페이스북에 쏟아낸 비판의 대상 중엔 남성들이 숱하지만 ‘이자’라고 부른 적은 있어도 ‘이 남자’라고 부른 것은 못 봤다.

임 회장은 페이스북에 ‘소말리아 20년 만의 의대 졸업식’이라는 2008년 사진기사와 함께 ‘Cooming soon’이라고 올리기도 했다. 정부가 ‘후진국 의사’를 수입하려 한다며 굳이 아프리카인을 지목했다. 여성뿐 아니라 특정 국가나 인종, 지역에 대한 멸시와 편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개저씨의 덕목이다.

‘개저씨 학교’라도 만들어야 하나. 개저씨들이 그들의 저열한 인식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는 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시대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다. 이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을수록 그들이 끼치는 해악은 더 커진다. 개저씨들아,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쉬시라! 그게 싫으면 제발 인터넷에 들어가 ‘개저씨가 되지 않는 법’이라도 한번 찾아보시라.

김재중 사회부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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