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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
노동력 부족 日 '적합인재' 뽑기 채용방식 변화
스펙 대신 '회사자원 활용 5분 PT'로 면접 평가
면접관 선택부터 '면접 주제'도 응시자가 선택
최종 면접 탈락자에 '한번더 면접' 기회 기업도
"회사 대한 충성도 ↑" 패자부활전 평가도 높아
최종탈락메일 인증시 타기업 스카우트 기회도
[서울경제]

스펙 안 본다는 기업…"그럼 뭘 본다는 겁니까?"



“학창 시절에 힘을 쏟은 일은 묻지 않습니다.”

입사 지원자인 당신에게 기업이 이런 요구를 해온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해보라. 열 중 네 다섯은 아마도 “그럼 뭘 보겠다는 거냐”하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 사소한 경험 하나까지도 ‘특별한 무엇’으로 포장하고, 어필해야 하는 다수의 취준생들에게 ‘학창 시절 힘 쏟아 만들어 낸’ 한 줄, 이른바 ‘스펙’은 남들과 다른 나를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피땀 흘려 만들어낸 스펙을 묻지 않는다면 그럼 또 뭘 준비하란 말인가.

최근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일본 주요 기업들이 기존의 전형적인 채용 방식에서 벗어나 PT, 게임 실력 등을 평가하는 새로운 면접을 확대하고 있다./DALL-E


이 궁금증 가득한 요구는 실제 지난해 일본의 대기업 히타치 제작소가 도입한 ‘프레젠테이션 전형’의 핵심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3년 신입 직원 채용 전형부터 PT 면접을 강화했다. 지금까지 가쿠치카(ガクチカ)라고 불리는 ‘학창시절 힘을 쏟은 일’을 중심으로 지원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하던 전형적인 기업 면접의 틀을 벗어나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전형에서는 지원자에게 ‘입사 후 어떤 직종에서 히타치의 자원을 활용해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5분 안에 설명하라고 주문한다. 마치 회사에 입사해 프로젝트 제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회사는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발견 능력을 평가한다고 한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이 있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회사에 맞는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 히타치는 “그렇다”고 답한다. 회사에 따르면 신입 채용에서 내정(입사 확정) 후 입사 포기(내정 사퇴)율이 새 전형 도입 후 이전보다 약 10% 포인트나 낮아졌다고 한다.




“회사 자원 활용 기획 5분 PT”, 게임 1인자 우대하는 전형도



히타치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직장’ 하면 관료주의·혁신지연·연공서열 같은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겠지만, 최근 일본 기업 곳곳에선 ‘적합 인재 선발’을 위한 상식과 틀을 깨는 채용이 확산하고 있다. IT 기업 카야크(kayak)의 채용은 더욱 파격적이다. 이 회사는 게임의 달인을 채용 시 우대하는 일명 ‘게임 1등 채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에서 ‘플래티넘 트로피(1000명 중 1등)’를 획득한 사람에게는 1차 전형을 면제해준다. 게임에 대한 열정이 개발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게임 열심히 했더니 취업이 되네”라는 상상을 현실로 만든 셈이다. 이 회사엔 ‘에고 서치 채용’이라는 제도도 있다. 이름이나 블로그, 작품명 등을 검색한 결과로 지원자를 평가한다. 회사에 따르면 인기 밴드 멤버나 창업가 같은 개성 있는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다고 한다. ‘독특한 채용이 가능한 작은 회사’라고 생각하겠지만, 카야크는 엄연한 도쿄증권시장 그로스 상장 기업이다. 두 개의 전형을 통해 약 3200명이 회사에 응시했고, 이 중 20여 명이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다.



면접관 운이 나빴다? “그럼 직접 선택하라”

면접관에 면접 질문 주제까지 선택권 줘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이 독특한 채용 방식의 회사가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뻔해도 전통적인 방식이 객관적’이라는 취준생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형이 어떤 방식이 됐든, ‘나를 평가하는 사람’과의 궁합이 별로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면접관 가챠(뽑기)’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뽑기처럼 누가 나올지 모르는 면접에선 ‘어떤 성향의 면접관과 만나느냐’가 마치 운처럼 면접의 당락을 결정짓게 된다는 의미다. “아 저 면접관만 아니었으면 합격했을 텐데”, “나한테 질문한 저 사람 말고, 그 옆 사람이 질문을 해줬다면 달라졌을 텐데”라는 한탄(?)은 최종 관문에서 고배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해본 행동일 것이다.

일본의 한 디지털마케팅 회사는 2025년 대학 졸업예정자 대상 신입 채용부터 구직자가 1차 면접 면접관을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사진은 구직자가 선택할 수 있는 회사 직원들 프로필 화면으로 이 프로필에는 해당 직원의 이력과 취미 등이 게재돼 있다./일본 ‘나일’


그래서 일부 기업들은 아예 지원자가 면접관을 고르게 한다. (이 내용은 이전 ‘일당백’에서 다루었으니 참고하시길.) 면접관 선택뿐만 아니라 면접 주제도 여러 개 중 지원자가 선택하게 하기도 한다. U-NEXT 홀딩스는 2021년부터 1차 면접에서 면접관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면접 주제도 여러 개 중에서 응시자가 고르도록 했다. 이 회사에 입사한 고이즈미 히나미 씨는 이렇게 말한다. “원래 면접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취업 활동 중에는 단순히 질문과 답변만 오가거나 압박 면접을 받아서 위축되곤 했죠. 하지만 U-NEXT의 면접에서는 K-POP 아이돌 얘기로 분위기가 고조됐어요.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성이 영업직으로 일하는 것의 어려움 같은 질문하기 어려운 것들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선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한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제도도 운영한다. 일명 ‘트라이아웃 리벤지’다. 최종 합격자의 약 10%가 이 제도를 통해 ‘패자부활’했다고 한다.

최종면접 불합격자에게 한차례 더 최종면접 응시 기회를 주는 기업이나 이런 ‘최종 불합격자’만 대상으로 다른 기업 스카우트 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생겼다./DALL-E



날 울린 ‘불합격 메일’이 취업 9회말 2아웃 ‘부활’의 무기?



아예 ‘불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도 있다. ABABA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이 서비스는 최종 면접까지 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불합격 통지’를 제출하면 다른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나를 울린’ 그 안내 메일이 ‘나를 다시 살릴’ 무기가 되는 것이다. 2024년 졸업생의 경우 약 1만 7000명이 이용했고, 한 사람당 평균 21개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본 내 기업은 1200개가 넘는다.



2040년 1100만명 노동력 부족

“우리와 맞는 인재 제대로 뽑자”



자료: 일본 리크루트웍스 연구소


이런 변화에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심각한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리크루트웍스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2040년에는 약 1100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기업들은 학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기업이 직원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예비 사원들이 들어가서 일할 기업을 선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신입 직원을 뽑아도 이 중 적지 않은 인원인 2~3년 내 퇴사·이직하는 경우도 많아 처음부터 ‘우리와 맞는 인재 제대로 선발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독특하기만 한 채용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인재 부족 및 이탈 현상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리크루트 취직미래연구소는 “학생들(취업준비생)을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실제로 일하고 있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일하기 쉬운 환경인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기발하고 있어 보이는 채용 제도를 만들어도, 정작 일할 때 “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직원이 많다면 소용없다는 이야기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일요일 ‘일당백(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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