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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세살 때부터 헌혈 시작…"헌혈 위해 해외여행도 포기"
1만원씩 모은 700만원 기부…"헌혈 필요한 이들 여전히 많아"


이승기씨 헌혈 700회 기념식
김상진 대한적십자사 서울중앙혈액원장(왼쪽)이 김상진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촬영 진연수]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700회'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첫 헌혈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많은 생명을 살린 저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헌혈의집 중앙센터에서 이승기(68)씨가 700번째 헌혈을 마치고 일어서자 곳곳에서 "고생하셨어요"라는 인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씨의 700번째 채혈을 한 간호사는 이씨에게 '영광'이라고 말했다.

'79년 6월 19일, 서울적십자 혈액원', '79년 12월 11일, 구인혈액원'….

이씨는 꼬깃꼬깃 접힌 헌혈 일지를 가방에서 꺼냈다.

23세에 첫 헌혈을 한 이씨는 어느덧 45년이 흐른 이날 700번째 헌혈을 했다. 국내에서는 8번째 달성자다.

이씨는 이날 700만원의 기부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증하기도 했다. 헌혈할 때마다 1만원씩 모은 게 어느덧 목돈이 됐다.

이승기 씨의 헌혈 일지
[촬영 이율립]


그는 처음에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헌혈을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환우회를 통해 백혈병, 심장병 환자들을 만나며 점점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1987년쯤 지인을 통해 백혈병을 앓는 20대 여성에게 수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혈소판 성분 헌혈을 한 적이 있다"며 "이후 잊고 지냈는데 그 환자의 아버지로부터 딸이 완치돼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헌혈을 멈춰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씨는 과거 전혈(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것)만 가능하던 때에는 두 달에 한 번, 1990년 이후 성분 헌혈이 가능해진 뒤로는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혈액원을 찾았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씨는 혹여나 헌혈을 못 하게 될까 봐 해외여행도 포기했다.

이씨는 "최근에 구로 사진 동아리 회원들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으로 5박 7일 해외 출사를 갔는데 저는 헌혈을 해야 해서 가지 않았다"며 "전혀 아쉽지 않다. 헌혈 정년인 만 69세가 지나고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며 웃었다.

이승기 씨가 대한적십자사에 기증한 헌혈증서 200장
[이승기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씨는 "건강해야 헌혈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헌혈해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만 헌혈 3∼4일 전엔 술도 안 먹고 커피, 홍차도 마시지 않는다"며 "집사람도 처음에는 헌혈을 못 하게 말렸는데 요즘에는 '우리 신랑 최고'라고 한다. 헌혈 전에는 기름진 음식을 못 먹게 하고 헌혈하고 오면 삼겹살 파티를 해주는데, 그때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아내 임찬영(63)씨도 이날 헌혈에 동참했다. 임씨는 남편을 두고 "내 남편이지만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면서 "영광스럽고 대단해 보인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씨도 만 69세인 헌혈 정년을 이제 18개월 남겨뒀다.

그는 "저출산으로 헌혈자는 줄고, 고령화로 수혈자는 늘고 있다"며 "헌혈 정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혈 정년이 늘어난다면 죽을 때까지 헌혈하고 싶다는 이씨는 정년이 늘지 않더라도 열심히 헌혈 홍보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이씨는 '사랑의 헌혈에 동참해주세요. 헌혈하는 당신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문구가 적힌 명함을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고 있다. 뒷면에는 4년 전 600번째 헌혈을 했던 사진이 자리했다.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첨단 의학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이 혈액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수혈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수혈자가 남이 아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헌혈에 적극 동참해줬으면 고맙겠습니다."

이승기 씨의 명함
[촬영 이율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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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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