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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강도 높은데 보수는 낮아…가축방역관 턱없이 부족
지난해 5월 충북 청주시 한우 농장 두 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해당 농장에서 살처분을 준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간이 녹아나요. 정읍은 키우는 가축이 많으니까 사건·사고가 계속 있습니다. 밤도, 주말도 없고 뭐 터지면 출근해야 하니까요. 가축전염병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법정 전염병만 65가지입니다.”

A씨는 전북 정읍시청에서 가축방역 업무를 1년 넘게 맡고 있다. 법상 지방자치단체는 가축방역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수의사 자격을 가진 가축방역관을 둬야 한다. 그런데 A씨는 농업 분야로 임용된 공무원으로 수의사 자격이 없다. 그는 “가축방역관이 없는 시·군은 불법을 자행하고 있죠. 수의대에서 6년 동안 공부한 사람 지식을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날마다 책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뜻밖인 것은 정읍이 가축이 유독 많은 지역이라는 점이다. 공공데이터포털을 보면 올해 1월 기준으로 정읍의 축산 농가들은 소 16만두, 돼지 33만두, 닭·오리 등 가금류 1000만수를 키우고 있다. 거의 모든 종의 사육 두수가 전북의 시·군 중 가장 많고, 단위면적당 소 사육두수로는 전국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지역의 가축 수에 따라 가축방역관 인원을 배치하도록 정하고 있어 법대로면 정읍시에는 가축방역관이 6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2022년 하순부터 정읍에는 가축방역관이 한 명도 없다.

남은 사람 업무 부담 더 커져

한때 다섯 명이었던 정읍 가축방역관은 하나둘 떠났다. 수의사 B씨도 정읍시청에서 2년여간 근무하고 퇴직했다. B씨는 “원래 두 명이 있다가 한 명이 떠나고 저만 남았습니다. 그러면 업무적으로 외롭습니다. 가축방역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저한테 쏠리죠. 시청에서 (근무한) 첫해에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는데 그 뒤로 3년간 계속 발생하더라고요. 그러면 항상 비상이에요.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 퇴근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거죠. 지치는 거죠”라고 했다. 가축이 많아 더더욱 사람이 필요한데 일이 많으니 사람이 떠난다. 남아 있는 사람의 업무 부담은 더 커지고, 종국엔 누구도 쉽게 엄두를 못 내는 일자리가 된다.

정읍만의 일이 아니다. 가축 수가 적은 일부 광역시를 제외하고 전국 지자체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축방역관 적정인력은 1953명인데, 근무 중인 인원은 1130명밖에 없다. 이중 309명은 수의대 졸업 후 군 복무를 대체하고 있는 공중방역수의사다. 해가 갈수록 부족 인력이 늘더니 이제는 적정인력이라는 기준이 의미 없어졌다.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는 최근 한국인들이 마주한 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수의계’에서도 전체 수의사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필수 업무인 이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하다. 동물병원 개원 등 다른 선택지보다 가축방역관이 업무환경, 보상 면에서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시도가 때를 놓치면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닮았다. 가축방역의 실패는 식량안보·물가안정을 저해할 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코로나19 사례에서 보듯 새롭게 나타나는 감염병의 75%는 동물에서 유래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축산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 빠르게 줄고 있다. 수의사는 7급 공무원으로 신규 채용하는데, 채용 공고를 내도 구직자가 오지 않는다. 도내에 약 160명의 가축방역관이 있는 경기도는 지난해 경력 3년 미만 가축방역관 12명이 사표를 냈다. 기껏 채용해도 금방 떠난다는 얘기다. 올해 14명을 신규로 채용하기로 했는데 지원자 수는 모집정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수도권은 사정이 낫다. 전라북도는 올해 상반기에 무시험으로 45명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는 1명에 불과했다. 전북은 가축방역관이 205명 필요한데, 현재는 그 절반도 안 되는 94명이 일하고 있다.

기저에는 높은 업무강도가 있다. 일단 AI가 기승을 부리는 매년 10월이면 가축전염병 특별방역대책기간(특방)이 시작된다. 이 기간 가축방역관들은 질병 발생 신고에 대비해 교대로 24시간 비상근무를 한다. 밤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주말에도 순번을 정해 당직 근무를 한다. 통상 특방은 이듬해 2월까지 5개월간 계속되는데, 최근엔 2월 이후에도 AI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연장되는 일도 잦다. 관내에서 질병이 발생하면 가축방역 업무를 맡은 모든 직원이 비상근무로 총력대응하고, 살처분도 진행한다. 관내가 아니라도 일단 국내에서 질병이 확인되면, 역학조사를 벌여야 한다. 사료 차량 등의 동선이 겹쳐 관내로 전파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로 전파됐다면 특방이 끝난 평상시에도 예찰(미리 살피기)이 계속된다. 수출에 유리한 동물 질병 청정국 지위 회복을 위해서는 몇 년간 질병이 재발하지 않았다는 예찰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보상은 더 큰 걸림돌이다. 최옥봉 경기도 조류질병관리팀장은 “7급으로 들어온 초임 수의직 공무원의 첫해 연봉이 세전 3000만원 남짓이다. 직원 한 명이 그만둔다기에 잡아라도 볼 요량으로 부모님과 상의했는지 물어봤다. 부모님이 ‘이 급여가 맞는 거냐’고 하셨다더라”고 했다. 가축방역관 초임 연봉은 수의사들의 평균 초봉(4180만원·고용정보원 2020년 자료)에 미치지 못한다. 동물병원 개원의와 비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 격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승진도 쉽지 않다. 가축방역관은 업무 범위가 제한된 기술직 공무원인 탓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5급 공무원이 사실상의 승진 상한선이다. 7급으로 입직해 30년이 지나도 잘해야 5급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인사적체도 심해 승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려동물 수의사는 인기

반려동물 문화 정착으로 반려동물 수의사를 꿈꾸고 수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진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현업에 종사하는 수의사의 81.5%는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다. 소·돼지 등 농장동물만 진료하는 수의사는 11.3%에 그쳤다. 현장에서는 수의대 학제가 1998년부터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기회비용이 커져 수의대 졸업생들이 기대하는 보상도 커졌는데, 수의직 공무원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일자리라는 얘기다. 이는 가축방역관의 고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도 단위 행정기관에서 공중방역수의사를 제외하면 ‘2030’ 가축방역관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북 지역 가축방역관의 평균 연령은 52세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파열음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광역 시·도의 경우 의료업무수당을 월 25만원에서 35만원으로 인상했다. 재난 담당 공무원에 승진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고, 강원도 등에서는 신규 채용 직급을 6급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그러나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전남 동물위생시험소에서 일하는 20년차 수의사 C씨는 “수의대 졸업한 친구들에게 수당 10만원 올랐으니까 공직으로 오라고 차마 말할 수 없다. 6급으로 신규 채용하면 뭐하나. 20년 동안 6급인데. 승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직급을 높여야 한다. 10년 전부터 결원 징후가 있어 줄곧 얘기해 왔는데 우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다. 올해 상반기에만 50대 팀장급 세분이 나갔다. 신입만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베테랑도 버티다 못하고 나간다. 한계가 온 것 같고,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두렵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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