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고세욱 논설위원

AI반도체 독점 파워에 중국도
대만계 CEO 눈치 보는 상황

어느덧 대만이 AI 생태계 중심
경제와 안보 강화에도 도움

한국은 경제 하강에 AI 부실
도약 위한 변화 서둘러야

A:“대만은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다.” B:“힘에 의한 (대만해협)현상 변경에 반대한다.”

둘 중 어느 게 중국을 더 자극할까. 중국은 “둘 다 안 된다” 하겠지만 굳이 꼽자면 A일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해 ‘대만=국가’는 절대 금기사항이다. 무심코 말했다간 중국의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B는 지난해 외신에 보도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다. 대만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 당국자들은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불장난하면 타 죽을 것”이라는 말폭탄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A에 대해선? 상상 이상의 험한 멘트가 나와야 정상일 게다. 게다가 A 발언자는 대만과 중국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은 침묵했다. 당사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지난달 모국인 대만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4차산업혁명 패권은 인공지능(AI) 승부에서 결판난다. AI 전용칩 80% 이상을 엔비디아가 독점한다. 미국의 첨단 칩 제재에 중국은 저사양 AI 반도체라도 엔비디아로부터 받아야 한다. 안하무인 중국이 스스로 입틀막할 정도로 엔비디아는 슈퍼 갑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엔비디아에 이은 AI 칩 점유율 2위 AMD의 CEO 리사 수도 대만계다. 대만계가 이끄는 AI 반도체 업체들이 대만 기업인 모리스 창이 세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에 생산을 맡긴다. 동시에 대만에 투자도 늘린다. AI 서버 세계 3위 슈퍼마이크로 CEO 찰스 리앙, 야후 공동창업자 제리 양, 유튜브 공동창업자 스티브 첸도 대만 출신이다. 중국을 쩔쩔매게 하는 AI·IT 생태계가 대만(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다.

다른 업체들도 속속 동참한다. 지난주 대만에서 열린 IT 박람회 ‘컴퓨텍스 2024’. 팻 갤싱어 인텔 CEO는 기조연설에서 “IT는 인텔(Intel)과 타이완(Taiwan)의 준말”이라고 조크를 날렸다. 갤싱어는 당초 한국을 방문하려다 취소했다. 그의 대만행이 반도체와 AI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TSMC의 제조 장비 가동을 원격 중단하겠다고 했다. 미국 군사력이 아닌 반도체·AI 동맹군들이 대만의 호위무사가 되고 있다. 미·중 갈등 후폭풍, 상시적 지정학 위기를 겪는 대만이 킬러콘텐츠와 산업 공급망의 중심으로 나서며 안보까지 지키고 있다. 대만과 여건이 유사한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인데 경제 체력이 부실하다.

국가경쟁력 순위는 2021년 23위에서 지난해 28위로 밀렸다. 지난해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중국 기업은 135개인 데 반해 한국은 18개뿐이다. 지난 10년간 100대 기업 영업이익은 한국이 16% 감소한 반면, 대만은 49% 급증했다. AI 부진이 뼈아프다. 1분기 기준 글로벌 AI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사)은 총 219곳인데 한국 기업은 전무하다.

컴퓨텍스가 폐막한 지난 7일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혁신을 당부한 ‘프랑크푸르트 선언’ 31주년이었다. 선언을 기폭제 삼은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IT 시장을 지배했다. 혁신 바람에 다른 기업들도 동반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됐다. 한국경제의 비상을 이룬 계기였다. 지금은 어떤가.

요새 삼성전자 개미들은 젠슨 황 입만 쳐다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엔비디아 품질 시험을 통과하는지, 젠슨 황이 삼성전자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주가 등락이 결정되다시피 해서다. 혹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하청업체가 됐다”고 한탄한다. 찰나의 방심으로 시대의 흐름(AI)에 뒤처진 대가가 이리 크다. 덩달아 한국 경제도 초격차를 낼 콘텐츠 부재로 세계 경제의 종속변수로 처지고 있다.

빅테크 수장들이 대만에 러브콜을 보낼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조용히 미주로 향했다. 현지에 도착한 뒤 “아무도 못하는 사업을 먼저 해내겠다”고 말했다. 최근의 수모를 씻을 와신상담 선언으로 불리길 바란다.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됐으면 싶다. 우리도 중국 입틀막 무기 하나 갖지 말라는 법 없지 않나.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될 것”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일성이 더욱 울림을 주는 요즘이다.

국민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5712 유산취득세 도입하는 상속세제 ‘대개편’… 과표구간·세율·공제 등 ‘디테일’ 남아 랭크뉴스 2024.06.17
35711 의사들 '집단휴진' 강행…정부는 '집단행동 금지 교사명령' 강공(종합) 랭크뉴스 2024.06.17
35710 국민의힘 7월23일 당대표 뽑는다···윤곽 갖춰가는 전당대회 대진표 랭크뉴스 2024.06.17
35709 ‘을과 을의 싸움’ 아니다···배민에 맞서 손잡은 자영업자·라이더들 랭크뉴스 2024.06.17
35708 의협, 집단휴진 전날 "밥그릇 지키기 아냐… 의료체계 붕괴 막으려는 몸부림" 랭크뉴스 2024.06.17
35707 도끼 휘두르고, 팬들 유혈 충돌… '유로2024 개최' 독일, 사건사고 '몸살' 랭크뉴스 2024.06.17
35706 "이화영이 바보냐" 또 직접 등판한 이재명, '사법리스크' 분리 전략 흐트러지나 랭크뉴스 2024.06.17
35705 기자협회·언론노조 “이재명·양문석, 언론인 상대 망언 사과하라” 랭크뉴스 2024.06.17
35704 국민의힘 23일 당대표 뽑는다···윤곽 갖춰가는 전당대회 대진표 랭크뉴스 2024.06.17
35703 엘베 천장서 '낼름'‥"으악! 진짜 미쳐" 아파트 발칵 랭크뉴스 2024.06.17
35702 “인생 사진에 목숨 걸지 마세요” 제주해경의 호소 랭크뉴스 2024.06.17
35701 상속세 개편 두고 대통령실·기재부 엇박자?…최상목 “필요성은 공감, 검토는 필요” 랭크뉴스 2024.06.17
35700 "인내의 한계" 김정숙 고소에, 배현진 "애닳긴 하나보다" 랭크뉴스 2024.06.17
35699 韓남성 결혼 힘든 이유 있었다…"특히 지방이 위험" 무슨일 랭크뉴스 2024.06.17
35698 한·중 차관급 외교안보대화 내일 개최…북·러 정상회담과 같은 날 랭크뉴스 2024.06.17
35697 푸틴 이르면 18일 ‘24년 만에 방북’…무기협력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 가나 랭크뉴스 2024.06.17
35696 갑자기 등장한 최태원 회장, 고개 숙였지만 ‘일부일처제’는? [이런뉴스] 랭크뉴스 2024.06.17
35695 투숙객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호텔 직원…검찰이 석방? 랭크뉴스 2024.06.17
35694 "'140억 배럴' 브리핑은 윤 대통령이 매장 가능성 듣고 직접 결정" 랭크뉴스 2024.06.17
35693 푸틴 이르면 내일 ‘24년 만에 방북’…무기협력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 가나 랭크뉴스 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