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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말기 남태평양 밀리환초에 강제동원돼 희생된 김기만씨(1923년생)의 유족 김귀남씨.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혹시라도 살아있는지도 몰라 제사를 지낼 수도 사망신고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남태평양 밀리환초 강제동원 조선인 학살 사건에서 숨진 김기만씨(1923년생)의 조카 김귀남씨(86)는 지난 8일 삼촌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허탈해했다. 일본인 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67)는 그런 귀남씨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다케우치는 지난 7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환초에서 사망한 조선인은 218명이며 이중 4명을 제외한 214명은 모두 전남지역 출신”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귀남씨의 삼촌인 기만씨도 포함됐다.

10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기만씨는 22살이던 1945년 3월18일 밀리환초에서 일본 진압군에 의해 사망했다. 1942년 3월 고향을 떠난 지 3년 만이다. 당시 전남지역에서는 800여명이 일본군에 의해 밀리환초로 강제동원됐다.

기만씨는 일본 해군 군속으로 비행장 활주로 등 일본군 시설 공사에 투입돼 강제 노역을 했다. 그러다 1944년 미군의 해상 봉쇄로 식량 등 사정이 여의치 않자 일본군은 기만씨 등 조선인을 주변 첨에 분산 배치해 자력으로 생활하도록 했다. 기만씨는 동료 120여명, 감시 역할을 하는 일본군 11명과 함께 체르본섬에 배치됐다.

이곳에서 일본군은 조선인 2명을 살해한 인육을 ‘고래 고기’라고 속여 배급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기만씨 등 조선인은 일본군을 살해하고 섬을 탈출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이 계획을 알게 된 일본군은 반역이라며 탈출에 가담한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다케우치는 “이 과정에서 전남 담양 출신 25명을 비롯해 5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32명 총살됐고 기만씨 등 23명은 자결했다.

다섯살 무렵 삼촌과 헤어진 귀남씨는 79년 만인 이날 삼촌의 사망 소식을 처음 듣게 됐다. 귀남씨는 “그때 모집이랍시고 무조건 데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간 사람은 있어도 온 사람은 아예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귀남씨는 할머니가 살아 생전 아들인 기만씨를 애타게 그리워 했다고 전했다. 그는 “삼촌의 성격이 당찼나 보다. 할머니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만씨는 꼭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기만씨는 강제동원 된 뒤 가족에게 편지를 두 통 보냈다고 한다. 그는 “삼촌이 끌려간 뒤 1년 다 돼서 편지가 두어 번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 소식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기만씨를 기다리다 88세에 숨을 거뒀다. 귀남씨는 “해방되고 일본 돈을 한국 돈으로 바꿔주는 화폐교환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아들 오면 그 돈 쓴다’고 교환도 하지 않고 돈 감추고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2005년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정부에서는 강제동원 피해 신고를 접수했지만, 귀남씨는 신고를 하지 못했다. 사진이 남아있지 않고 신원보증을 서 줄 사람이 없다 보니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최근 시민모임이 밀리환초 피해자와 유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용기 내 연락을 했다. 다케우치가 공개한 명단에는 번호 426번, 창씨개명 이름 김산기만, 출생날짜, 사망 날짜, 부친 성명, 주소 등이 적혀있다.

귀남씨는 “뒤늦게라도 삼촌 소식을 알게 돼 다행”이라며 “많은 분의 희생이 밝혀진 만큼 온전한 진상규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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