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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쉽지만 폐지는 어려운 韓 주식시장... 투자자 눈치 때문
금융당국 “투자금 묶인 좀비 기업 퇴출해야 밸류업 가능”
상폐 목적 불공정 거래 단속하고, 폐지 절차 간소화

#미스터피자 운영사였던 대산F&B는 최근 7년간 거래가 가능했던 기간보다 정지 기간이 더 길다. 2017년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에 들어갔다가 2020년 4월 가까스로 거래 재개됐고, 지난 4월 7일 회계법인이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대해 의견 거절을 내리면서 다시 거래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거래소 이의 신청으로 내년 4월 10일까지 시간을 벌었는데, 만약 이때 거래 재개된다고 해도 정지 기간 합은 4년 4개월이 넘는다.

상장사이지만 거래는 불가능한 ‘좀비 기업’ 퇴출에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팔을 걷어붙였다. 시세 조종 등 불공정 행위에 악용됐으면서도 여러 이유로 퇴출을 피한 좀비 기업에 투자자금이 묶여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가 심화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폐지 절차를 이전보다 쉽게 손본다는 계획이다.

일러스트=손민균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일 기준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상장폐지 사유 발생 등의 이유로 주식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21개, 코스닥 시장에선 76개로 총 97개로 집계됐다. 스팩, 주식 액면 분할 등으로 인한 단기 거래정지는 제외했다. 이 중 현재 거래정지 기간이 1000일(2021년 8월 31일 이후)이 넘는 기업은 10곳이었다.

현행 제도상 한계 기업이라고 해도 상장 폐지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절차가 한없이 길어진다. 좀비 상태의 기업이 매년 증가하는 이유다. 좀비 기업은 투자자 자금을 한없이 붙들고 있다. 가까스로 거래 재개된다고 해도 드라마틱하게 정상화되는 케이스는 거의 없고, 대부분 또다시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지면 투자자들이 금융위와 금감원, 거래소, 국회, 청와대 할 것 없이 투서를 넣으니 실무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면서 “정치적 부담 때문에 자꾸 상폐를 지연시키면서 좀비기업이 이처럼 늘어나게 됐다”고 꼬집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미국 주식 시장의 시가총액이 우리나라보다 약 27배 정도 큰 데 비해 상장사 수는 2배 정도만 차이 난다. 한국이 시장 규모 대비 상장 기업이 많은 것”이라며 “미국은 지난해 신규 상장한 기업 대비 퇴출된 회사 비율이 146.2%지만 우리나라는 20%에 그치는 ‘다산난사(多産難死)’인데,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가치 성장) 프로그램의 하나로 좀비 기업 퇴출을 꼽고, 절차 개선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상장 폐지 회피 목적으로 불공정거래를 자행하는 종목에 대해 집중 조사에 나선다. 최근 3년간 실적 악화 등으로 상장 폐지된 기업 44곳 중 37개에서 불공정거래가 발생했는데, 조사 완료된 15개사에서만 부당이득 규모가 1694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러스트=정다운

거래소는 한계 기업 퇴출 제도 개선 검토를 시작했다. 진입요건 대비 상장폐지 요건이 지나치게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퇴출 울타리를 낮추는 방향이다. 거래소는 우선 코스피 시장의 상장 폐지 절차에 드는 기간을 기존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 시장 상장 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할 계획이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좀비 기업이 퇴출당하지 않고 상장을 유지하면 투자금이 계속 묶여 있게 된다”면서 “원칙에 입각한 정리가 이뤄져야 건전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 수요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량 기업이 불합리한 심사 지연 없이 적시에 상장될 수 있게 하고, 부실기업은 조기 퇴출하는 진입·퇴출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공개가 위축된다거나 외국인 투자자들을 내쫓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우량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을 불량 기업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좀비 기업이 계속 누적되고 있는 만큼 퇴출 강화를 시작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2019년 기술특례 전형으로 시장에 입성한 기업의 면제 혜택이 사라지는 내년부터 좀비 기업이 쏟아질 것”이라며 “상장 폐지 대상이 된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반발하겠지만, 좀비 기업이 각종 불공정 행위에 악용돼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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