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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성 "대한민국은 법 위에 검사가 있다"

지난 금요일, 헌법재판소를 빠져나온 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는 절규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법 위에 검사가 있습니다. 검사를 통제하고 대한민국을 지켜줄 수 있는 법이 오늘 결국 무너진 것 같습니다. 피해자로서 사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호소하고 아무리 뭐라 해도 현실을 변하지 않는다는 그 높은 장벽을 오늘 다시 한 번 체험을 했습니다."


유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헌법재판소를 등지고 쓸쓸하게 집으로 향했습니다.


유우성, 그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건 10년 전입니다. 지난 2013년, 재북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 씨는 간첩으로 몰려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3월 항소심 재판 중에 국가정보원이 조작한 증거를 검찰을 통해 제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줄줄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간첩증거 위조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까지 했습니다.

간첩 사건 검사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고소를 당한 검사들은 증거 검증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시원 검사(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와 이문성 검사가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고, 다른 1명에게는 감봉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검찰은 수세에 몰렸습니다.

검찰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던 시기, 박광일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탈북단체) 대표가 대북송금 혐의로 유씨에 대한 고발장을 냅니다. 검찰은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고발 사흘 만에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사건이 배당됐고 하루 뒤에는 과거 유 씨를 기소유예 처분한 기록을 긴급 송부하고 수사팀이 대검찰청에 수사지원 요청을 보낸 뒤 고발인인 박 씨를 조사했습니다. 고발장이 제출되고 나흘 안에 기록송부와 수사지원 요청, 고발인 조사까지 신속하게 이뤄진 겁니다. 박 씨가 낸 고발장엔 추측성 언론기사 외엔 유 씨의 혐의를 따로 소명할 만한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 유 씨는 조작된 증거가 드러나면서 간첩 혐의를 벗고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죄 선고가 나온 지 2주 만에 유 씨는 또다른 혐의인 대북 송금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간첩 사건 검사들에게 징계가 확정된 지 8일 만이었습니다. 유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앞선 2010년 검찰이 기소유예(재판에 넘기지 않고 종결)로 처분했던 사건이었습니다.

■ '보복 기소' 논란‥대법원의 첫 "공소권 남용" 확정 판결

이른바 '보복 기소', '분풀이 기소'라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유 씨는 이미 증거 조작으로 형사재판에서 시달리다가 간첩 혐의에서 무죄를 받았는데, 곧바로 과거에 기소유예 처분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겁니다. 결국 유 씨는 다시 대북송금과 위장취업 혐의로 재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유 씨는 검찰이 막강한 권력인 공소권을 남용해 보복 기소했다고 일관되게 주장을 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 7명 중 4명도 공소권 남용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2심은 1심을 뒤집었습니다. 대북송금 혐의에 대해 공소권 남용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재판부는 "만일 기소유예 처분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건을 기소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면 유 씨를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할 당시 함께 기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유 씨에 대한 기소는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며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위법이 있는 만큼 기소는 무효"라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10월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유 씨는 대북송금 혐의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대법원이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첫 사례였습니다. 검사가 형사사건에 관해 심판을 법원에 청구하는 권한, 공소권을 마음대로 남용했다는 겁니다. 2014년에 시작된 유 씨의 형사재판은 2021년에야 끝났습니다. 이후 유 씨가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도 법원은 위법한 공소제기 등으로 유 씨가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국가에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민·형사적으로 법원이 위법한 검사의 공소제기를 인정한 겁니다.

■ 사상 첫 검사 탄핵소추‥안동완 검사 탄핵 결과는 기각

유우성 씨는 법원에서 '사법 피해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가해자는 공소권을 남용한 검사입니다. 검사 탄핵소추 1호, 안동완 검사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안 검사는 당시 유 씨를 기소한 주임검사였습니다. 하지만 공소권 남용 판결 이후에도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2022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안 검사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는 안 검사를 탄핵소추했습니다. 탄핵 외에는 안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헌정사상 첫 현직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이 시작됐습니다. 안 검사 측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에도 자신의 공소제기에 위법이 없었다는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사법부의 판단을 불신하며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판단해달라고 한 겁니다.

8달간의 심리 끝에 헌법재판소는 5대 4의 팽팽한 의견으로 탄핵을 기각했습니다. 탄핵 의견을 낸 재판관 4명(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은 "대법원의 판단처럼 공소권 남용으로, 법을 어기고도 징계도 없었다"며 파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찰 조직의 위신이 크게 손상된 직후 유 씨에게 불이익을 줄 의도로 공소제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보복 기소'도 인정했습니다.

"검사 본연의 의무를 저버린 행위로서, 검사로서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고, 유 씨에 대한 공소제기로 인해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 역시 매우 중대하다. 그런데도 안 검사는 어떠한 징계나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고, 그 시효도 모두 지났다. 따라서 엄중한 헌법적 징벌을 가함으로써 공소제기로 인해 침해된 헌법 질서를 회복하고, 더는 검사에 의한 헌법 위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9명 중 탄핵 의견은 4명으로 소수였습니다. 다수는 기각 의견 5명. 이 중 2명(이종석·이은해)도 "공소권 남용과 법 위반은 맞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안 검사를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징계를 받지 않긴 했지만 실제 징계를 받았다면 파면보단 약한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파면하는 건 가혹하다는 겁니다. 나머지 재판관 3명(이영진·김형두·정형식)은 "유 씨를 재수사할 필요성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며 안 검사의 기소는 애초에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탄핵을 소추한 국회 측 김유정 변호사는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해 권한을 남용했는데,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고 탄핵도 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 대법원 판단 뒤집은 이영진·김형두·정형식 헌법재판관

이번 탄핵 선고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이 낸 기각 의견이었습니다. 이들은 "안 검사가 수사한 결과, 과거의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하고 유 씨를 기소할 만한 사정들이 밝혀졌다"면서 재수사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공소제기가 적법했다는 겁니다. 대법원의 '공소권 남용' 판결과는 배치되는 결론입니다.

"공소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참고할 만한 법원의 선례가 없었던 점, 안 검사 기소 사건의 1심도 공소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공소제기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의하여 위법하다고 평가됐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안 검사가 어떤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법조계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집니다. 물론 대법원도 틀릴 수 있지만, 적어도 3심제 안에서 1·2심을 거친 최종 판단입니다. 헌법재판관들이 사실관계를 다시 판단해 대법원의 결론을 사실상 부정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법적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조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 현직 부장 판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것에 대해 서로서로 구속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면서도 "이상하긴 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공소권 남용으로 본 걸 헌법재판소에서 위법하지 않다고 본 건 그 자체로 조응이 안 된다"며 "탄핵 심판과 형사재판은 완전 별도의 재판이라 형식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순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황당한 사람은 이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일 겁니다. 7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안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했다는 판단을 받았는데, 엉뚱하게도 안 검사의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관들이 다른 결론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유 씨로선 매 순간이 그저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피해자로서 사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호소하고 아무리 뭐라 해도 현실을 변하지 않는다는 그 높은 장벽을 오늘 다시 한번 체험을 했습니다."


국민이 검사의 공소권 남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유 씨는 높은 장벽 아래서 다시 묻고 있습니다.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는 7년입니다. 대법원이 '검사의 공소권 남용'을 확정하기 전에 이 공소시효는 끝났습니다. 기소 시점을 기준으로 시효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안 검사를 비롯한 전·현직 검사 4명이 공수처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이유입니다.

관련 보도: 헌정 사상 첫 검사 탄핵 심판‥재판관 5:4로 기각(5/30 뉴스데스크, 김상훈 기자)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603444_36515.html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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