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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따른 집중호우, 흰개미 출몰 이상고온 등
야외 유형 유산 비롯 무형·자연유산도 위험
국가유산청 전담 부서 없고 기후대응 걸음마 수준
2020년 충청권 집중호우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충남 공주 공산성 성벽 일부가 무너진 모습. 공산성은 2013년, 2020년, 2022년, 2023년 집중호우로 성벽이 무너졌는데, 최근 들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잦아지는 양상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충남 공주시 공산성(사적 제12호)은 최근 10년 사이 4번이나 무너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국지성 집중호우로 충청권에 예측 불가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다. 백제의 웅진 천도 이후 공산성은 1,600년간 한자리를 지켰지만, 인류 최대의 위기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2. 흰개미의 별명은 '목조 문화유산의 저승사자'다. 나무 속을 갉아먹는 흰개미 떼가 지나가면 골다공증에 걸린 뼈처럼 나무에 숭숭 구멍이 뚫린다. 흰개미가 더 위험한 존재가 된 건 한반도 전역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활동 기간이 매년 4~10월에서 3~11월로 두 달이나 늘면서다. 경남 합천 해인사, 경북 영주 부석사, 강원 춘천 청평사 등 비교적 서늘한 곳에 위치한 사찰에서도 흰개미 피해가 확인되고 있다.

#3.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가꿨다는 강원 강릉시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484호)는 수령이 600년인 매실나무다. 기후변화로 나무의 90%가 고사하면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될 위기에 놓였다. 올봄에도 율곡매는 남은 10%의 가지에서 꽃을 끈질기게 피워냈으나, 사실상 언제 생명을 다할지 모르는 시한부 운명이다.

서울 중구 덕수궁 중화전에서 흰개미탐지견들이 목조문화유산 흰개미 탐지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2016~2019년 실시된 국립문화유산연구소의 조사 결과 362건의 국가지정 문화유산(국보, 보물 등) 중 317건에서 흰개미 탐지 반응이 나타났다. 뉴시스


지난 3월 천연기념물 제484호인 강원 강릉시 오죽헌 율곡매가 고사 위기 속에 꽃을 활짝 피우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기후변화가 집어삼키는 수천 년 역사의 국가유산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21일 경북 경주 석굴암 석굴을 방문해 관계자로부터 산사태 대비 관리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기후변화가 수천 년 역사를 품은 국가유산을 훼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경주시 석굴암(국보 제24호)과 불국사가 경주 토함산 산사태의 여파로 매몰 위기에 몰렸다는 최근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보고서 내용은 징후적이다. 2년째 계속되는 산사태는 석굴암으로 향하는 계곡과 불국사 경내를 향해 번지고 있다. 불국사엔 다보탑과 삼층석탑(석가탑) 등 국보 6개가 있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7년 이후 5년간 자연재난으로 인한 문화유산 피해는 집계된 것만 440건에 달한다. 2020년 이후 발생한 피해가 307건(69.8%)으로 급증 추세다. 2022년 발생한 피해 154건 중 호우에 따른 피해가 112건(72.7%)으로 가장 많았고, 태풍 피해 34건(22.1%), 화재(산불 포함) 피해가 6건(3.9%)이었다. 기상청이 23일 발표한 '2024년 3개월(6~8월) 전망'에 따르면 올여름은 평년보다 더 덥고,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는 야외 유형 국가유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형유산과 자연유산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남 남해군 일대에서 죽방렴으로 멸치를 잡는 전통 어업 방식인 어살(국가무형유산)은 수온 상승으로 멸치의 씨가 마르는 바람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 구상나무는 국내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수종인데, 기온 상승으로 한라산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하고 있다.

한라산에만 자생하는 한라산 구상나무 3그루 중 1그루는 최근 20년 사이 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고사한 구상나무. 제주도 제공.


"기후 대응 없이 국가유산 보호 불가능" 정책 통합 나선 선진국들



일찌감치 위험을 파악한 선진국들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문화유산 정책을 통합했다. 문화유산의 최대 위협 요인이 기후이고, 기후 대응 없이는 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2016년 NPS 문화자원 기후변화전략을 세우고, 유럽연합은 2020년 기후 법안인 '그린딜(Green Deal)'에 의거해 '유럽 문화유산 그린 페이퍼'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엔 이 같은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국가유산 훼손은 이미 도래한 현실"이라며 "기성 문화유산 보존 대책에 포함된 통상의 재난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기후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는 선제적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느린 대처...국가유산 기후변화 대응책 컨트롤 타워가 없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17일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국가유산청 출범식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이달부터 시행된 '국가유산기본법(국가유산법)'엔 기후변화 대응 근거 조항이 담겼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환경 변화나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국가유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도록 기후변화가 국가유산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국가유산의 취약성을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포괄적 내용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는 속도에 비하면 대처는 여전히 느리다. 이달 7일 이름을 바꾸고 새로 출범한 국가유산청에는 '기후변화 대응 전담 조직'이 없다. 안전방재 담당 조직이 자연재해 피해에 대해 사후 대응을 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국가유산청이 발표한 '문화재 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수립 연구'에 기후변화 대응 컨트롤 타워를 설치해야 한다는 제안이 담겼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국가유산청 재출범 과정에서 기후위기 전담 조직이 검토됐지만, 다른 조직과의 업무 중복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올해부터 '기후변화 대응 국가유산 피해회복 및 적응관리 연구개발(R&D) 사업'에 5년간 총 231억 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김영재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재수리학과 교수는 "의미 있는 예산이지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5, 6년 동안은 무방비 상태인 것이 사실"이라며 "이상기후 피해가 시작된 국가유산에 한해서라도 선제적인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 국립공원 내 석굴암 윗편의 경사면에 산사태가 발생한 모습. 녹색연합 제공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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