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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노트’
입하(立夏), 본격적인 짝짓기와 생산의 계절
방생을 기다리는 물장군.

부드럽고 연한 녹색에 날마다 초록이 보태어져 두툼하고 투박한 진한 녹색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다 푸르다. 생명력 넘치는 모든 생물이 본격적인 생장을 하여 열매를 맺는 여름으로 가고 있다. 해가 솟기 무섭게 날이 뜨거워지고 잠깐 몸을 놀려도 땀이 비 오듯 한다. 한낮에는 덥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지난해 충남 아산시 백학동 물장군 서식지에서 시민과 함께 물장군을 방생했다. 올해는 5월8일에 방생을 진행한다.

오늘(5월5일)은 입하. 늦은 봄과 초여름을 각각 반쯤 걸쳤지만, 곧 여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메이퀸(May Queen)을 그대로 해석해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칭하지만, 그 유래에는 유럽의 종교적 행사와 축제, 노동의식을 다지는 의미가 담겼다. 본래 의미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5월은 생물학적으로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왕벌, 여왕개미처럼 ‘여왕’이란 단어에는 다산과 번식의 뜻이 담겼지만, 이러한 여왕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암컷은 5월이 되면 본격적인 짝짓기와 생산을 시작한다. 새싹이 나오면 그 싹에 애벌레를 키울 곤충이 알을 낳고, 곤충의 애벌레를 양식으로 하는 새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어 새끼를 키운다. 꼼꼼하게 잘 짜인 ‘먹이 그물’이 가동되는 계절이다.

우체통 뱁새 알.

계곡 덤불의 노랑할미새 둥지와 알.

강원 횡성군 홀로세생태보전연구소 우체통에도 뱁새가 5개의 알을 낳았다. 창고 구석진 곳의 상자와 2층 오두막 구석, 원두막 파이프 안에도 구멍과 구석만 보이면 온통 새 둥지다. 연구소뿐 아니라 비가 오면 둥지가 쓸려 내려갈 것 같은 위태위태한 계곡 덤불 속에도 노랑할미새가 5개의 알을 키우고 있다. 노랑할미새는 풀과 나무, 물속에 가득한 벌레를 먹이로 노리고 있다.

필자도 해가 떠서 뜨거워지기 전 새벽에 일을 시작한다. 지난밤 방목장에 소가 쌓아놓은 신선한 소똥을 수거하여 겨울 휴면에서 막 깨어난 애기뿔소똥구리와 소똥구리에게 밥을 주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한다. 지린내 나는 쥐오줌풀이 피기 시작하면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고치를 만들 때다. 고치를 만들기 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4~5㎝의 오동통한 크기인데 이때 가장 왕성하게 먹이를 해치운다.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린초를 보충하는 일이 버겁다.

쥐오줌풀.

붉은점모시나비 5령 애벌레.

붉은점모시나비 고치.

약 7개월간 겨울 휴면하느라 굶주렸던 물장군도 올해 처음 식사를 했다. 먹고 난 물고기 사체를 치우고 배설물로 더럽혀진 케이지를 청소한 뒤 다시 먹이를 넣어준다. 자칫 먹이가 부족하면 때를 가리지 않고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곁에 있는 동족도 가리지 않고 다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놈이므로 수시로 관찰해야 한다.

멸종위기종은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증식하기가 힘들다. 숱한 세월 동안 그들의 생리, 생태를 파악하여 생존에 최적화된 특성을 맞춰 매뉴얼을 확립했지만, 무한 반복되는 증식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특히 요맘때는 월동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먹이활동을 시작한 소똥구리와 물장군 그리고 붉은점모시나비까지 동시에 ‘먹이 달라’, ‘치워 달라’ 난리를 칠 때라 정신이 없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힘이 달릴 때 훌쩍 큰 손녀가 고사리 같은 손을 놀리며 일손을 덜어 준다. 큰 힘이 된다.

물속 여러 생물 가운데 물장군은 확실히 큰 크기로 눈에 띈다. 거의 70~80㎜에 이르는 크기로 아마존이나 열대 지역의 큰 동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부리부리한 눈과 얼굴 뒤로 숨겨놓은 뾰족한 입으로 다른 동물을 압도하며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잡아먹는 강력한 포식자이다. 그래서 이름하여 물속 장군이기도 하지만 식사량도 만만치 않다. 양도 많은 데다 살아있는 놈만 먹으니 질과 양을 맞추는 일은 늘 어려운 숙제다.

방생을 기다리는 물장군.

27년 전 산속으로 들어와 전기도 물도 없을 때 집 앞 개울은 식수원이었다. 종일 일한 뒤 개울로 내려가 발을 씻으면 발가락 사이사이로 버들치가 몰려들어 입으로 톡톡 간지럽혔다. 계곡물을 같이 마시며 가까이 곁을 지키던 버들치를 물장군의 먹이로 줘야 한다니! 다른 생명으로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물장군을 이해하면서도 살아있는 버들치를 먹이로 줄 때마다 마음은 아프다.

어버이날인 오는 8일, 멸종위기종 복원을 위해 애지중지 증식한 물장군을 충남 아산시에 방사한다. 물장군도 특별 관리를 받으며 살았지만 좁은 가두리에서 답답했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 같은 물장군이 넓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디 자연에서 마음에 드는 짝 만나 번식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것은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어버이 마음과 다르지 않다.

금낭화.

돌틈 앵초.

일 년 중 가장 다양한 꽃이 피는 시기지만, 금낭화와 돌 틈 앵초의 은은하고 화려한 연분홍 색상은 과연 압권이다. 향이 은은한 분꽃나무도 이때쯤 핀다. 어렸을 적 어머님이 외출하실 때 바르셨던 ‘코티분’(프랑스제 화장품) 냄새를 맡으면 괜스레 들뜨고 신비했던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도 아끼며 바르셨던 기억이 난다. 화장품 분 냄새와 분꽃나무의 향이 같아서 분꽃나무를 볼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해 여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천수를 누리셨다고 자위를 했지만, 새록새록 회한이 남는다.

분꽃나무.

콩배나무.

어마어마한 양의 꽃과 향이 있는 밀원(蜜源) 식물인 콩배나무에 온종일 곤충이 모인다. 나무에 큰 구멍이 생겨 그 구멍으로 꼬마쌍살벌이 한창 집을 짓고 있다. 근처에서 노는 손주들이 쏘일까 간단하게 발포폼으로 구멍을 막았다. 나무도 치료하고 벌집도 막을 겸 구멍을 메우며 짧게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발포폼으로 구멍을 막는 게 혹시 나무를 죽이는 행동이 아니냐며 걱정하시는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이 영상은 현재 누적 조회수 500만 회에 달한다. 식물을 걱정하고 벌을 염려하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 같다. 물론 나무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벌집은 사라졌고 꽃은 더 많이 피웠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봄꽃과 하늘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도 좋지만, 눈길 가는 곳마다 사랑스러운 손주들 웃음소리만큼 더 좋을 수 없다. 봄날이 아깝게 가고 있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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