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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수의사(청주동물원)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는 동물, 그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던 반려동물이 아니었을까? 청주동물원 제공


서울의 한 대학교 연구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북이들에 대한 생태연구가 끝났는데 남은 거북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거북이들이 국내에 포획되기는 하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생태교란종이라 사용 이유가 끝나면 폐기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는 연구 종료 후 폐기 방법이 마땅치 않아 냉장이나 냉동실에 거북이들을 넣고 죽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아무리 연구라지만 거북이와 많은 날을 지내온 연구원들이 거북이들을 직접 폐기해야 하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거북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국내 여러 기관에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딱히 답을 얻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것은 연구원들이 거북이를 냉동실에 넣은 뒤 죽은 줄 알고 몇달이 지나 상온에 꺼내 놓았는데 소수의 거북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동물원 열대관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 육지거북. 청주동물원 제공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몇해 전 어느 중년 남자가 동물원에 찾아왔다. 본인이 강원도에 땅을 샀는데 그 안에 작은 동물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원에는 거북이를 포함한 여러 동물이 있었는데 돈이 되겠다 싶어 직접 동물원을 운영해보려고 자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 동물원에는 거북이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생김새를 들어보니 아프리카 육지거북이었다. 남자는 거북이에 대해 전혀 모르다 보니 겨울이 와도 거북이에게 아무런 난방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프리카 육지거북은 강원도의 겨울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갔고 따뜻한 봄이 되어서야 나왔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파충류들이 동면하는 줄은 알고있었지만 추위를 모르는 아프리카 육지거북이 유전자에나 간신히 들어 있었을 태곳적 본능을 깨친 것이 안쓰럽고도 신기했다. 두 사례를 들어보아도 냉장과 냉동은 의식 있는 거북이를 폐기하는 인도적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호 수의사는 서울의 한 대학교의 요청으로 실험용이었던 생태교란종 거북이 몇 마리를 동물원으로 이송했다. 청주동물원 제공


연구원들과 상의 끝에 거북이들을 청주동물원으로 이송하여 처리하기로 했다. 생태교란종은 원칙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도 안 되고 발견한 지역에서 폐기해야 했지만 관할 환경청을 연구원들과 설득했다. 국내 첫 사례라 환경청은 난감해했지만 결국 하나의 생명인 거북이의 딱한 처지를 공감해 주었다. 하던 대로 일 처리하면 편했을 것을 예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준 환경청 직원들이 고마웠다.

생태교란종의 정의는 “국내 서식지의 생물 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쳐 토종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마비시키는 외래생물로 방제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생물”이다. 토종뱀을 잡아먹는 사진으로 유명했던 황소개구리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생태교란종은 뉴트리아가 있다. 동물원 등에서 귀여운 동물로 여겨지는 세계 최대 설치류 카피바라와는 대조적으로 국내 야생에 풀린 대형 설치류 뉴트리아는 괴물쥐로 불린다. 하수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쥐를 수십 배 크게 해놓은 외모라 괴물쥐가 됐지만 뉴트리아 입장에선 잘 살던 남미에서 잡혀 온 것만으로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뉴트리아와 황소개구리는 식용으로 국내에 도입됐다. 20년 전 청주동물원에서도 뉴트리아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성체가 되면 농장에서 전시가 용이한 새끼로 바꿔왔다. 농장도 키워서 바꿔 가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동물구매 담당자와 찾아간 뉴트리아 농장은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식단표에는 물곰이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뉴트리아의 다른 이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은 내온 김치찌개를 의심쩍게 뒤적이는 나를 안심시켰지만 먹어 볼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당 인근 농장에 갔다. 그곳에는 어림잡아도 100마리가 넘는 뉴트리아가 사육되고 있었다.

동물원에 교육 전시된 생태교란종 플로리다 붉은배거북, 생태교란종 거북이 등 설명판. 청주동물원 제공


물곰이 대형쥐라는 걸 알고도 먹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물곰이 인기가 없자 식당들은 영업을 포기했고 농장에 방치된 뉴트리아들은 살아보려고 탈출해서 국내 정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적응력으로 생태교란종이 됐다.

청주로 보낸 거북이들은 붉은귀거북(red-eared slider), 리버쿠터(River cooter), 노랑배거북(yellow-bellied slider), 중국줄무늬목거북(Chinese stripe-necked turtle), 플로리다 붉은배거북(Florida red-bellied cooter) 모두 5종이다. 미국과 중국이 원서식지이고 애완동물로 수입된 거북이들이다.

서울 하천에서 포획된 천연기념물 남생이. 청주동물원 제공


이 중 중국줄무늬거북은 국내 천연기념물인 남생이와 교잡이 가능해서 다른 거북이들보다 더 문제지만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다. 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 등급이 CR(Critically Endangered)로 푸바오로 유명한 자이언트판다(VU, Vulnerable)보다 높다. 데려온 거북이들의 일부는 동물원 열대관에서 교육 전시 중이다.

진료행위를 통해 동물을 살리는 것이 수의사로서 업의 주된 목표이다.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살릴 수 없다거나 남은 것이 고통뿐이라면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 또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데려온 거북이들 중 일부만이 전시를 이유로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거북이들은 약물로 의식을 소실시킨 후 안락사시켰다.

전시된 거북이들의 설명판에는 종의 이름과 함께 “이 거북이들은 지금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던 반려동물이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김정호 수의사(청주동물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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