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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따라 20마리 동시 이동 성공
무리 지어 넓은 지역 동시 조사 가능
곤경 처한 동료 구하는 본능도 보여

사이보그 바퀴벌레들이 모래 언덕을 지나 목표 지점인 나무판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 바퀴벌레들은 목표 지점에 대한 정보를 가진 리더를 따라 이동했다.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넘어지거나 구덩이에 빠지면 동료의 도움을 받아 극복했다./싱가포르 난양공대

영화 ‘듄’의 한 장면일까. 모래 언덕 위로 탱크 같은 기계장치들이 몰려온다.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가 등에 전자장치를 달고 모래 언덕을 오르고 있다. 바로 동물과 기계장치를 합친 사이보그(cyborg)이다. 몸집이 작고 날랜 사이보그 바퀴벌레들은 건물 잔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토 히로타카(Sato Hirotaka) 싱가포르 난양공대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최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관광객처럼 사이보그 바퀴벌레 무리가 리더 한 마리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발표했다. 사이보그 바퀴벌레 20마리는 가로세로 각각 3.5m인 모래 언덕에서 장애물을 피하며 목표까지 이동했다.


리더 바퀴벌레 따라가라는 명령만 입력
사토 교수는 ‘마다가스카르 바퀴벌레(학명 Gromphadorhina portentosa)’의 등에 위치제어용 초소형 컴퓨터와 배터리, 안테나로 구성된 배낭을 붙였다. 여기서 전선이 나와 더듬이와 꼬리에 연결됐다. 외부에서 안테나로 무선 신호를 보내면 배낭의 컴퓨터가 그에 따라 전선에 전류를 흘린다.

조종 원리는 간단하다. 오른쪽 더듬이에 전류를 흘리면 바퀴벌레가 왼쪽으로 돌고, 왼쪽 더듬이를 자극하면 오른쪽으로 돈다. 더듬이 양쪽을 자극하면 후진한다. 가속하려면 꼬리에 있는 감각기관(cercus)으로 전류를 흘리면 된다.

연구진은 앞서 연구에서 전기 자극을 통해 바퀴벌레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번에는 동시에 20마리를 원격 조종했다. 그렇다고 바퀴벌레를 한 마리씩 따로 조종하지는 않았다. 무리 중 한 마리만 리더로 삼고 이동 목표를 제공했다. 나머지는 리더를 따라가도록 했다. 그만큼 무리 조종이 쉬워졌다.

리더가 아닌 바퀴벌레들은 동료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 수 있었다. 연구진은 사이보그 바퀴벌레들에게 리더가 근처에 있으면 그쪽으로 이동하고, 리더가 없으면 다른 바퀴벌레들이 모인 곳으로 가라는 명령만 입력했다. 그 결과 리더가 움직이면 나머지 바퀴벌레들이 쫓아갔다. 곤충 한 마리는 보잘것없이 작지만, 떼를 지어 다니면 순식간에 넓은 지역을 수색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연구진은 바퀴벌레 등에 초소형 컴퓨터와 배터리, 안테나를 달았다(a). 컴퓨터는 더듬이와 꼬리에 연결된 전선으로 전기자극을 줘 이동 방향을 조절했다. 리더 바퀴벌레가 목표 위치(b 화살표)로 이동하면 다른 바퀴벌레들이 리더를 따라갔다./싱가포르 난양공대

동료 일으켜주고 구덩이서 꺼내기도
사이보그 바퀴벌레는 컴퓨터 지시대로 방향을 잡지만, 나머지는 스스로 처리했다. 길을 가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일반 바퀴벌레처럼 넘어가거나 돌아갔다. 곤충의 본능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바퀴벌레만 한 로봇을 만들 수 있지만, 동작을 일일이 지시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진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문제를 오랜 진화를 통해 환경에 최적화된 바퀴벌레 자신에게 맡긴 것이다.

특히 이번 실험에서 바퀴벌레들은 곤경에 빠진 동료를 돕는 모습도 보였다. 한 마리가 실수로 굴러 뒤집히면 주변 바퀴벌레가 몸으로 밀어 바로잡았다. 넘어진 바퀴벌레는 지나가는 동료를 붙잡고 일어서기도 했다. 구덩이에 빠진 동료를 몸으로 밀어서 꺼내주는 모습도 보였다. 사토 교수는 이런 행동은 컴퓨터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 본연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사이보그 바퀴벌레 무리가 넓은 지역에서 조난자를 찾거나 환경오염 수치를 측정하는 데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형 운반 로봇에 사이보그 바퀴벌레 무리를 싣고 현장으로 이동해 풀어준다. 임무를 마치면 사이보그 바퀴벌레들이 다시 운반 로봇으로 돌아와 먹이와 물을 먹고 배낭 배터리도 충전하는 식이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마치고 충전기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사이보그 바퀴벌레의 충전 시간을 더 줄일 수도 있다. 임무를 하면서 스스로 전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사토 교수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함께 2022년 9월 자가 발전과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있는 사이보그 바퀴벌레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마다가스카르 바퀴벌레의 배 위에 두께 4㎛(1㎛는 100만분의 1m)인 아주 얇은 박막형 태양전지를 붙였다. 연구진은 사이보그 바퀴벌레를 30분 충전해 2분간 원격 제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배에 얇은 태양전지를 부착한 사이보그 바퀴벌레. 임무를 하면서 전력을 생산해 등에 달린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일 와세다대

참고 자료

arXiv(2024), DOI: https://doi.org/10.48550/arXiv.2403.17392

npj Flexible Electronics(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28-022-00207-2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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