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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반 마음고생, 자녀 계획 등 어그러져
“비슷한 처지 피해자들 잘 이겨내길 바라”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세사기를 당한 신혼부부가 올린 ‘전세사기 후기 글’이 온라인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해당 사연을 접한 후 댓글로 메시지를 남기며 이들의 미래를 응원했다. 작성자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응원에 많은 힘을 얻었다고 국민일보에 전했다.

24일 온라인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전세 사기의 끝이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다.

글 작성자 A씨(29)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큰소리 떵떵치며 잘 살겠다고 뛰어든 결혼, 꼼꼼한 성격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검토하고 신혼집을 마련했으나 공인중개사까지 한패였던 대규모 사기 매물에 걸려들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각을 잡고 판을 짜니 누가 와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가장으로서 헤쳐나가기 시작했다”며 “1년 반 동안 온갖 마음고생 하다가 오늘 이행요구 서류 제출하러 다녀왔다”고 전했다.

A씨는 다행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임대계약 기간 만료 후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 보증보험 이행청구를 진행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대기실을 꽉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초년생, 젊은 신혼부부였다. 20명 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가는 말소리 하나 없이 정적만 감도는 게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다”며 “오랜 기간 학업에 매진하다 인생 첫 스스로 발을 떼자마자 당한 사기에 다들 얼마나 막막했을지…”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A씨는 피해자가 오히려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특히 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죄는 사기꾼이 쳤는데, 임차인이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며 “이따금 담당자가 서류가 잘못됐다고 하면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 역으로 빌고 있는 꼴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서울 시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고객이 상담받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어 “저 또한 오픈런을 했지만 이미 대기가 1시간이 넘었고,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수 없이 다시 검토하며 마음을 졸였다”며 “최근 사기 급증으로 업무량이 증가해 3개월 이상 걸린다고 했지만, 다행히 서류상 큰 문제는 안 보인다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서류를 제출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건물을 나서니 들어올 때는 안 보이던 게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며 “분당 한 가운데 으리으리한 건물 사이 어쩐지 초라한 신혼부부 한 쌍, 괜히 멋쩍게 느껴지길래 큰맘 먹고 와이프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 있는 좋은 향수 하나 사고, 비싼 밥 한 끼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며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오늘이 그 오르막의 첫걸음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은 “남 일 같지 않아 울컥해진다” “액땜했다고 치고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힘내시고 이번 주 로또 1등 되시라” “본인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 등 댓글을 달며 응원했다.

A씨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게시한 글과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정황을 전했다. A씨에 따르면 그가 2022년 보증금 1억5700만원을 주고 계약한 신혼집은 통보도 없이 한 달 만에 집주인이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전세사기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도 한참 지나서였다.

보증금을 떼일 걱정에 A씨 건강은 그때부터 급속히 나빠졌다. 그는 “우선 건강이 너무 상했다. 전세사기를 당한 후 불안해서 일주일에 5∼6번 정도 거의 매일 소주 1병 반씩 먹으며 견뎠다”며 “정신을 차리고 건강검진을 해보니 이전에 없던 지방간과 고지혈증이 걸려있었다”고 했다.

이어 “술이 없으면 새벽 3시에 겨우 잠들어 오전 7시에 깨는 삶이 반복됐다”며 “불면증이 너무 심해 회사에서 지원하는 정신 상담도 일주일에 두 번씩 1년 동안 받았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DB


부부의 인생 계획도 어그러졌다. A씨는 “아내와 작년이나 올해 중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워놨었다”며 “그러나 주거 문제가 발생해 자연스럽게 아이 계획도 미뤄졌다”고 했다. 또 “전세사기 이전에는 공격적으로 자본을 굴리는 데 관심이 있었지만, 사기를 당하고 난 후 예·적금으로 돌리는 등 성격이 위축돼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장인어른에게 빌린 돈으로 전세보증금을 마련한 탓에 처가에 면목이 없었다. A씨는 “어린 나이 겨우 허락받은 결혼, 장인어른께 차용증을 써가며까지 빌린 전세자금인데 그걸 사기 당해 장모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결혼 허락을 받을 때 A씨 나이는 27세, 아내는 25세였는데 당시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A씨는 “사람들의 응원에 많은 힘을 얻었다”며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꾸 겹치는데, 다들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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