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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간 50차례 대화하며 불법 포장마차 철거
생계형 노점은 허가 받은 ‘거리가게’로 옮겨 영업

시민들이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 강변역 인근을 걸어가고 있다. /홍다영 기자

“포장마차가 싹 사라졌어요. 그동안 노점상들이 인도를 차지하고 있어서 걷기 불편했는데, 보기에도 시원하고 좋네요.”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지하철 2호선 강변역 인근에서 지난 18일 오전 11시쯤 만난 주민 김모(32)씨가 한 말이다. 이곳은 원래 포장마차 수십개가 늘어서 밤마다 제육이나 순대, 국수 같은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취객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이날 찾은 강변역 포장마차는 대부분 철거된 상태였다. 시민들은 지하철역을 빠져 나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인근 아파트로 걸어가거나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모든 노점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광진구 허가를 받은 7곳은 토스트, 김밥, 닭꼬치 등을 팔았다. 흔히 노점을 철거할 때는 용역업체가 동원되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만 강변역 노점은 평화적으로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강변역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 강변역 인근 구의공원에 위치한 포장마차. 올해 하반기 철거가 예정돼 있다. /홍다영 기자

30년 자리 지킨 포장마차, 주민들 민원에 몸살
21일 광진구에 따르면 강변역은 하루 평균 이용자가 3만명(3월 기준)이 넘는다. 주변에 동서울터미널과 광역버스 환승 정류장이 있어 유동 인구가 많다. 사람들은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기 전후 간단하게 요기할 곳이 필요했고, 몇 년 전부터는 노포(老鋪) 감성을 즐기는 MZ세대 취향과도 맞아 떨어졌다. 포장마차는 30여 년 전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해 강변역 1번출구, 4번출구, 구의공원, 강변우성아파트 인근에 명물로 자리 잡았다.

외지인에게는 명물이었지만 주민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였다. 주민들은 구청에 ‘포장마차가 아파트 인근 도로와 화단을 점유했다’, ‘걸어 다니기 불편하다’, ‘음식물 냄새가 난다’며 민원을 계속 넣었다. 아파트 미관을 해치고 집값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있었다. 강변역 인근 아파트 주민 500여 명이 집단으로 구청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광진구청은 결국 불법으로 노상에서 영업하던 포장마차를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2월 노점상들에게 6월 말까지 자진 철거하라고 요청했다. 상인들은 ‘새벽까지 장사하며 자식들 키워서 장가를 보냈는데 철거하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러스트=손민균, 그래픽=정서희

광진구 공무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상인들을 50여 차례 찾아갔다. 노점상들을 한 명씩 커피숍에서 만나 2~3시간씩 대화를 나눴고, 상인들도 구청이 추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게 됐다. 결국 물리적 충돌 없이 모든 노점상에게서 철거 동의를 받아 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노점상들도 장사를 오래해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들었고, 그동안 어느 정도 재산을 불린 경우가 있어 원만히 합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광진구 관계자는 노점상들에게 철거해달라고 설득한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씩 대접하면서… 두 번 세 번 상인들을 계속 만나서 대화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 눈물을 흘리면서 이곳에서 장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렇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저희가 주변 환경을 정비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상인들도 이해하고 철거에 동의하시더라고요.”

일부 노점상은 허가 받고 합법 영업 전환…위험한 LPG 가스 대신 전기만 사용
상인들에게는 포장마차를 철거하는 대신 구청으로부터 1500만원 상당의 점포 비용을 지원받으며 강변역 4번출구 인근 허가 받은 ‘거리 가게’에서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시민들의 통행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점포 7개가 들어섰다. 상인이 자신의 명의로 직접 점포를 운영해야 하며, 재산은 4억5000만원 이하일 것, 자녀 승계는 불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점포들은 서울시 지침에 따라 가로 정비 특별 구역으로 지정돼 관리된다.

시민들이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 강변역 인근 보행로를 걸어가고 있다. 구청 허가를 받은 합법 거리가게다. /홍다영 기자

기존 포장마차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은 연말에 한 번씩 구청에 과태료를 냈다. 평당 10만원씩으로 3~4평짜리 작은 포장마차는 30만~40만원을, 15평짜리 포장마차는 150만원을 납부했다. 허가 받은 거리 가게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은 연간 110만원 정도를 내면 된다. 점포 관리도 엄격해졌다. 구청 관계자는 “포장마차는 도로에서 LPG 가스를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등 위험 요소가 있었다”며 “현재는 가스 대신 전기만 사용하며 냄새가 심한 음식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보다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변역 노점에서 20년 넘게 장사한 정모(64)씨는 “포장마차를 할 때는 재료비를 빼도 한 달에 500만원씩 남았다”며 “지금은 가스를 사용하지 못해 김밥을 한 줄에 4000원씩 팔고 있는데 하루 손님이 열몇명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철거에 동의했는데 생계가 막막했다”고 했다.

광진구는 강변역 인근 구의공원에 일부 남아있는 포장마차 10여 개를 올해 하반기부터 철거할 계획이다. 박모(41)씨는 “비 오는 날 강변역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즐겼는데 가끔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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