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시각장애인 교사 김헌용씨가 19일 서울 강동구 신명중학교 영어교실 앞에서 점자영어교재를 들고 있다. 김씨가 학교로 온 뒤로 1층 교실에는 점자교실안내판이 만들어졌다. 김세훈 기자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전 서울 강동구 신명중학교 영어교실. 수업종이 울리자 시각장애인 교사 김헌용씨가 밝은 얼굴로 학생들을 맞았다. 김씨는 사물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주원이 안녕”. 김씨가 점자 정보단말기를 이용해 학생들의 출석을 불렀다. 수업을 마친 뒤에도 김씨는 점자교재를 펼쳐놓고 다음 수업 준비를 이어갔다.

김씨에게 교사가 되는 일은 도전이었다. 전례가 거의 없었다. 2006년 장애인 교원 의무고용제가 시행되자 기회가 열렸다. 김씨는 2010년 처음 교단에 섰다.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이 쓰는 인트라넷은 김씨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점자 정보단말기 등 보조공학기기도 없었다. 점자 교과서를 받지 못해 직접 점자도서관에 제작을 의뢰해야 했다. 김씨는 “당시 ‘뽑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뭔가를 요구하기가 어려웠다”며 “허허벌판에 던져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동료 교사들과 ‘한국시각장애교사회’를 만들어 정보를 나눴다. 어느 순간부터 “환경에 맞춰가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환경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 설립도 추진했다. 초기 반응은 차가웠다. ‘장애인에 대한 낙인이 커질 것이다’ ‘노조일을 할 사람 뽑기도 어려울 거다’ 등 의견이 나왔다. 김씨는 “장애인은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위축됐던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2019년 노조가 설립됐다. 지금의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다. 김씨는 설립 당시 사무총장을 맡았다가 2021년부터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로 다른 장애가 있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부터가 쉽지 않았다. 김씨는 “장애인들도 겪고 있는 장애 종류에 따라 필요한 것이 서로 다르다. 처음에는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보니 오해가 쌓이기도 했다”며 “당사자인 나도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노조에는 시각·청각·지체장애 등을 가진 교사 200여 명이 가입해 있다.

노조는 교육 당국의 인식을 바꾸는 일에 전념했다. 지난해 1월 “청각장애 교사들이 수어통역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고 있지 못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냈다. 지난 2월 인권위는 전국 시·도 교육청 교육감에게 수어통역 등을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6월에는 교육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장애인교원 인사관리 안내서가 발간됐다.

김씨는 이 모든 것이 “투쟁의 결과”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전까지 우리의 요구는 ‘민원’에 불과했다”며 “단체협약을 통해 대등한 조건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교육 당국에게 우리 스스로의 삶을 보여줘야 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며 “내 장애를 전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헌용 교사가 19일 서울 강동구 신명중학교 영어교실에서 점자전용단말기로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김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교육청은 편의를 지원할 의무가 있는데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지원예산이 삭감된 뒤로 노조는 지난 1월 서울 중구 사무실을 나왔다. 현재는 온라인 회의 등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전국 장애교원 수는 지난 15년간 5000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지원은 이에 못 미친다”며 “지부가 설립된 서울·전남과 그밖에 인천·대구 정도를 제외하면 장애 교사 편의 지원을 위한 별도의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없다시피하고 전담자도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장애인의 날’에 양면적인 감정이 든다고 했다. 장애인의 날에 맞춰 각 학교에서 장애이해 교육을 하지만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 동반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정작 학교 내 장애교원에 대한 지원이나 소통없이 학생들에게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빼앗긴 공간, 밀려난 사람②]교육부 단협 7개월 만에 “방 빼”···사무실 빼앗긴 장애인 교사들지난달 29일 오후 9시쯤, 장애인 교사 5명이 서울 중구의 한 공유사무실에 모였다. 노트북, 문자 통역을 위한 빔프로젝터, 지체장애인 선생님이 쉬던 접이식 침대 등 물품을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011547001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5799 이스라엘 '99% 요격' 비밀 이용하라...韓방어망 100% 성공 작전 [이철재의 밀담] 랭크뉴스 2024.04.21
15798 이재명, 尹 회담서 던질 의제는…전국민 25만원 지원금이 핵심 랭크뉴스 2024.04.21
» »»»»» “뽑기만 하고 지원 없는 현실”···장애인 교사가 말하는 ‘노조’ 필요한 이유 랭크뉴스 2024.04.21
15796 “증권사 ‘초단타 매매’ 불법 공매도에 악용” 개미 주장 사실일까… 조사 마친 금감원 랭크뉴스 2024.04.21
15795 美하원, 우크라·이스라엘·대만 130조원 지원안 극적 처리(종합2보) 랭크뉴스 2024.04.21
15794 치워도 치워도 오고 또 온다…한동훈 팬덤 회환 '양날의 검' 랭크뉴스 2024.04.21
15793 춘곤증, 햇빛 쬐고 20분 ‘낮잠’ 운동으로 충전을[톡톡 30초 건강학] 랭크뉴스 2024.04.21
15792 [날씨] 전국 대체로 흐리고 곳곳 빗방울…낮 최고 15∼23도 랭크뉴스 2024.04.21
15791 한국서 잘 나가는 4대 빅테크…매출 9조원·영업익 6천억대 랭크뉴스 2024.04.21
15790 젤렌스키, 美하원 우크라 지원안 처리 환영 "전쟁 끝내겠다" 랭크뉴스 2024.04.21
15789 월가 떠나는 금융사들…JP모건, 월스트리트 마지막 지점 철수 랭크뉴스 2024.04.21
15788 [속보] 美하원, 대이스라엘 36조원 안보지원안 처리 랭크뉴스 2024.04.21
15787 [1보] 우크라 84조원 지원안 美하원 통과…對러항전 힘실을듯 랭크뉴스 2024.04.21
15786 "관광객 너무 많다"…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서 시위 랭크뉴스 2024.04.21
15785 한동훈 "정치인이 배신 안해야 하는 건 국민뿐"...'尹배신론'에 반박 랭크뉴스 2024.04.21
15784 테슬라, 美서 모델Y 등 가격 2천달러씩 인하…"재고 증가 탓" 랭크뉴스 2024.04.21
15783 바이든, 23일 '트럼프 본거지' 플로리다서 낙태 연설 랭크뉴스 2024.04.21
15782 "이스라엘 무기, 탐지 안 당한 채 이란 방공망 손상" 랭크뉴스 2024.04.21
15781 이커머스 업체, 쿠방발 가입자 모시기 경쟁 치열 랭크뉴스 2024.04.21
15780 "부모·전 남친 죽여주세요" 의뢰했다가…돈 뜯기고 협박당한 10대女 랭크뉴스 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