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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화 기자 [email protected]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를 전했던 작가이자 언론인, 사회운동가인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이 18일 별세했다. 향년 77.

고인은 1947년 12월10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얼마 안 돼 한국전쟁이 터지고, 부모와 떨어진 채 종로구 연건동 외가댁에 맡겨져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준 사람이었다고 한다. 경기중·경기고를 거쳐 196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갔다.

홍세화라는 이름 석 자가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프랑스 망명 중이던 1995년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였다. 망명자로 삶의 폭풍을 겪게 된 과정과 파리생활의 에피소드를 버무려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사랑을 받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똘레랑스’는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 지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망명자가 된 것은 독일 뒤셀도르프에 이어 정착한 프랑스 파리에 있을 때 남민전 사건이 터지면서다. 당시 그는 무역회사인 대봉산업의 해외지사 근무원이었다. 1977년 한국민주투쟁위원회(민투) 맹원을 거쳐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의 전사가 되었는데, 조직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어 1999년 출간한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한겨레출판)가 서점 종합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작가로서 한 번 더 입지를 굳혔다.

2002년 2월부터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기획위원과 편집위원으로 일했고 2011년에는 한겨레가 발행하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지냈다. 한겨레 기획위원으로 일할 당시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담는 ‘왜냐면’ 지면을 만들었다. 왜냐면은 현재까지 이어지며 전문가와 언론인 중심인 여론 지형에서 시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론장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회사를 떠난 뒤에도 조용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많은 후배의 존경을 받았다. 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활동가, 정당인으로 2012년 진보신당 공동대표, 2013년 ‘말과 활’ 발행인에 이어 2015년부터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회단체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을 맡았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서울대 금속공학과 1학년 시절이던 1966년 추석 때 아버지 고향에서의 일을 ‘사유체계의 바탕을 무너뜨린 인생의 분기점’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충남 아산군 염치면 대동리 황골에서 문중 대부에게 한국전쟁기 주민 간 벌어진 학살극의 전모를 듣게 된 것이다. 그 현장에 세 살이었던 본인이 어머니, 동생과 함께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됐다. 마을공회당에 갇힌 일가족은 ‘손가락 총’ 하나에 죽고 살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어머니는 떠났고, 돌쟁이 동생 민화는 죽었다. 일본에서 돌아와 아나키스트 활동을 하던 아버지는 도피생활을 하던 때였다.

방황을 시작한 그는 낙제하다가 학교를 그만뒀고, 1969년 서울 문리대 외교학과로 다시 진학했을 때에는 딴사람이 돼 있었다. 연극반 활동을 하며 학생운동에 몰두했다. 1970년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과 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집행을 접하며 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남민전에 들어간 계기다.

홍세화 <전태일50> 편집위원장이 지난 2020년 10월26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묘소 앞에서 열사의 흉상을 쳐다보고 있다. 50년 세월을 거슬러 한국의 노동현실을 고민하는 두 노동자의 고민은 무엇일까.

고인은 지난해 9월 언론 인터뷰에서 “이성의 빛을 잃는 순간, 우리는 인간임을 포기하게 된다.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똘레랑스”라고 말했다. 한겨레에 지난해 1월 마지막으로 실린 홍세화 칼럼의 제목은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였다.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암 진단을 받고도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활동을 계속했다. 12월께부터 암이 온몸으로 번졌고,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와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병세가 위중해지면서 부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입국해 마지막 순간 임종을 지켰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일선씨와 자녀 수현·용빈씨가 있다. 장례는 18~21일 한겨레신문사 사우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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