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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조현준 효성 회장(맨 왼쪽), 이재용 삼성 회장(왼쪽 둘째), 김동관 한화 부회장(맨 오른쪽) 등과 함께 지난해 12월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시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국민의 관심이 22대 총선에 쏠린 사이 주요 그룹들이 잇달아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재계 7위 한화의 지주회사 격인 ㈜한화와 방산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비주력 사업의 양도, 물적분할, 인적분할(기존 주주에게 신설법인 주식도 나눠 주는 방식) 계획을 내놨다. 재계 31위 효성도 지주회사인 ㈜효성을 인적분할해서 2개 지주회사로 나누기로 했다.

기업이 경영상 이유로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화와 효성도 선택과 집중, 경영 효율, 시너지 효과,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투자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업구조 개편을 내세워 총수 자녀들의 지배권 승계와 계열분리를 해온 재벌의 오랜 관행 때문이다. 실제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조현준 회장 형제의 계열분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재벌이 계열분리를 위해 회사(그룹) 분할을 서슴지 않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다. 기업을 가족재산으로 여기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이다. 10여년 전 히든챔피언(강소기업)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 현지 기업인들에게 한국의 계열분리와 회사 쪼개기 관행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한 회사 분할은 일종의 배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계열분리를 위한 회사 쪼개기가 회사나 일반주주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법 절차도 위배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업구조 개편의 특성상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기업 분할, 합병, 영업 및 자산 양수도 등 ‘자본(의 변화를 수반하는) 거래’는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어서, 거래 한쪽이 이득을 얻으면, 상대방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효성그룹 사업구조 개편의 실체는 2018년 옛 효성의 인적분할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효성은 지주회사 효성(존속법인)과 효성티앤씨 등 4개 사업자회사로 인적분할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회사는 기업가치 제고 및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는데, 사업구조 개편의 실제 이득은 조현준 회장 일가에 돌아갔다. 조 회장 일가는 원래 옛 효성의 지분 38%를 갖고 있었는데 분할 과정에서 현물 출자, 유상증자 등을 통해 55%로 크게 높였다. 그만큼 일반주주의 지분은 줄었다. 종합하면 1단계로 총수일가 지분을 높인 뒤, 2단계로 회사를 쪼개서 나눠 갖는 그림이다.

삼성물산 합병 사건의 경우 세간의 관심은 이재용 회장 일가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 부당한 합병 비율과 분식회계 혐의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효성 사례를 적용하면, 1단계 총수일가의 지분 확대 이후 2단계로 합병 삼성물산의 인적분할을 통한 이 회장 오누이 간 계열분리가 유력한 시나리오다.

3·4세 승계가 진행 중인 재벌들은 모두 비슷한 유혹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재벌도 달라진 경영 환경에 맞춰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는 170년 가까이 5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지만, 계열분리를 한 적이 없다. 대신 각 세대 중에서 가장 역량이 뛰어난 두 사람을 선발해서 경영을 맡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라는 ‘유일한식 경영철학’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은 총수 자녀들의 계열분리를 위해 멋대로 잘라 먹는 피자 판이 아니다.

22대 총선이 윤석열 정권 심판론 속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제까지와 같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은 제동이 걸리겠지만, 경제만 놓고 보면 벌써 걱정이 앞선다. 정부·여당은 총선을 앞두고 실현 가능성이 낮고, 의지도 없는 ‘공수표’를 남발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내걸고 급조한 ‘기업 밸류업 지원책’도 부도 위험성이 높다.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라는 근본 원인의 개선 없이 세제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비슷하다.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사업구조 개편 역시 이사회가 견제 기능을 못하는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의 산물이다. 민주당의 이용우 의원은 2020년 발의한 ‘상장회사 특례법안’에서 ‘소수주주 동의제’(법안 제20조) 도입을 제안했다. 상장사가 합병, 분할, 영업 양수도 등을 할 때는 최대주주(총수)와 특수관계인(가족)은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윤 정부가 정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바란다면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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