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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검사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것 같다. “평생 할 출세”라는 말에서 잘 느껴진다. 남은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고, 그래서 ‘공공선’을 위한다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총선 뒤에 그에게 ‘정치적 미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를 계속한다면, 더 이상 ‘자애로운 귀족’으로 다가오지 말기 바란다. ‘불쌍한 평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3일 충북 제천시 제천중앙시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권태호

“저는 검사 처음 시작한 날 평생 할 출세 다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져가야 할 잇속도 없다. 다만,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3일 충북 충주 유세), “이수정은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을 위해서 나왔다”(지난달 27일 경기 수원 유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을 보면, 하나의 세계관이 일정한 궤를 유지하는 것이 보인다. ‘귀족’이 ‘평민’을 위해 수고로이 손수 몸을 일으켜 시혜를 내리는 것이다. 요즘 공개적인 자리에서 ‘출세’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노인 외에는 잘 없다.

지난 2월 대기업-전통시장 상생 모델인 서울 경동시장 스타벅스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스타벅스는 사실 업계의 강자이지 않나, 굉장히. 여기가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경동시장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옛 경동극장을 매장으로 꾸며 품목당 300원씩 적립해 경동시장 상생기금으로 조성한다. 한 위원장은 같은 달 관훈토론회에선 “국민의힘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어서 갑자기 당대표로 불러올린 것”이라며 “제가 죽을 길인 걸 알면서도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4월10일 이후 제 인생이 꼬이지 않겠나. 이기든 지든. 저는 그걸 알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거액의 재산신고 누락을 이유로 국회 임명안이 부결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인사 검증을 제대로 못 한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쓸 때는 대개 비슷한 문제가 나오게 돼 있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처남이 운영하는 가족회사의 비상장 주식 9억9천만원 상당을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가 보유하고, 3억원가량을 배당금으로 수령한 사실을 수년 동안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게 문제가 됐다. 지난달 이수정 후보 관련 발언도 수원에 출마했는데 서울 서초구에 38억원 상당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공격받았을 때다.

한 위원장의 또 다른 세계관은 ‘억울함’이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직후 여론이 악화된 날, 부산·경남 유세에서 “정부가 부족하지만 100일도 안 된 제게 그 책임이 있지는 않지 않으냐. 개인적으로 억울하다. 제게 기회를 한번도 안 주셨는데 이렇게 사라지게 두실 겁니까”라고 했다. 친구나 동생의 하소연이라면 이해가 되나, 지금까지 공개석상에서 이런 유아적인 말을 한 여당 대표가 있었던가. 다음날 주워 담긴 했지만, 무엇이 진심인지는 다 안다. 사람은 성공했을 때, 위기에 처할 때, 그리고 피곤할 때, 진심과 인격이 드러난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었다. 민정수석실 인사검증 업무를 가져오면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진일보”라 했다. 그러면서 “제 입장에선 짐과 책무에 가깝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제가 비난받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늘 한결같다. ‘개인적으론 손해지만 기꺼이 희생’ 세계관의 연장이다. 그런데 지난해 2월 정순신 전 검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결정이 ‘아들 학교폭력 송사’ 문제로 하루 만에 취소된 것을 비롯해 매번 부실 검증 논란이 일자, “자료를 수집만 하고,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넘기는 역할만 한다”고 말하는 등 책임을 회피했다. 인사 실패 책임은 전적으로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세계관은 ‘생색’이다. 지난달 20일 이종섭 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귀국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건 대통령실도, 외교부도 아닌 유세 현장의 한 위원장이었다. “이종섭 대사 문제. 저희가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는 말씀 드립니다”라고 했다. 29일 이 전 대사가 사퇴했을 때도 곧바로 “‘저희가’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는 말씀 드립니다. 내가 (대통령실에) 귀국해야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공’은 취하고 ‘과’는 넘긴다. 이런 사람을 업무적으로 위에나 아래에 두면 내가 다친다.

한 위원장의 또 다른 특징은 ‘내로남불’인데, ‘내로남불’은 인간의 속성이다. 그래서 탓하기 힘들다. 그러나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남에겐 추상같고, 내겐 봄바람’ 같은 간극이 너무 커 그의 ‘내로남불’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서울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검사’가 인생의 목표였던 것 같다. “평생 할 출세”라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남은 삶은 덤이고, 그래서 ‘공공선’을 위한다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총선 뒤 그에게 ‘정치적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를 계속한다면, 더 이상 ‘자애로운 귀족’으로 다가오지 말기 바란다. ‘불쌍한 평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한 위원장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1995년 이후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해, 요즘은 다들 똑똑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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