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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모(67)씨는 오전 7시부터 수레에 폐지를 주워 담는다. 폐지 가격은 ㎏당 40원이다. 5~6시간 DMC 일대를 돌면서 박스를 수레 가득 담으면 2000원을 받는다. 그마저도 운이 좋은 날이어야 가능하다. 그는 오전 7시부터 점심까지, 오후 9시부터 오전 2시까지 하루 두 번씩 집을 나선다. 이씨는 “기초수급자로 받는 월 100만원가량 받지만 아내가 아파 환자에게 들어가는 고정비용만 월 50만원”이라며 “폐지 주워 하루 많이 벌어야 5000원이지만 그마저도 절실해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상가 앞에서 이모(67)씨가 박스를 접어 수레에 쌓고 있다. 폐지 가격은 ㎏당 40원인데 이씨 발걸음으로 5시간을 돌면 30~50㎏을 모은다. 이아미 기자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대령으로 전역한 정모(84)씨는 인천의 한 실버타운에 살고 있다. 전기‧가스요금 등 공과금을 포함하면 실버타운 주거 비용으로만 월 200만원이 나가지만 정씨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다. 그는 서교동에 있는 건물에서 임대료로만 월 1400만원을 받는다. 정씨는 “실버타운 내에서 수채화, 수필, 사진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며 “몇 년 전까지는 해외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5분위 노인 소득, 1분위의 11.7배
고령층의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대에서 가장 빈부 격차가 큰 건 이른바 '수저론'이 대두한 청년층이 아닌 고령층이었다. ‘금지팡이’와 ‘흙지팡이’로 구분되는 셈이다. 28일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2년 60세 이상의 소득 5분위배율은 11.7배다. 소득 5분위(상위 20%)와 1분위(하위 20%)의 소득 격차가 11.7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60세 이상 중 소득 상위 20%는 가구 평균 연 1억6017원을 버는데 하위 20%는 1369만원에 그쳤다. 정부에서 받는 연금이나 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 결과다.
김경진 기자

연령대별로 소득 5분위배율을 따져보면 30세 미만이 8.6배로 가장 작았다. 30대(9.3배), 40대(10.7배), 50대(10.8배) 순으로 나타났다. 점차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데 50대를 넘어가고 60세 이상으로 가면 격차가 확 벌어진다. 소득 5분위배율은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60세 이상은 전 연령대 중 5분위 소득은 가장 많고, 1분위 소득은 가장 적었다. 소득 하위 20%는 상대적으로 빈곤할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가장 가난하다는 의미다. 수당‧연금 등 정부 지원이 주로 고령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인 결과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생계 등을 이유로 폐지를 줍는 이씨와 같은 고령층은 전국 4만2000명애 달한다. 이들은 주 6일, 하루 5시간 이상 폐지를 주워 한 달 16만원을 손에 쥐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직업, 노인 일자리에 영향
고령층에서 소득 격차가 유독 벌어지는 건 생애 일자리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고학력자나 높은 직급에 올라갔던 고령층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조성돼있지만, 반대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졌던 경우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이 되어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이승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대기업 간부를 했으면 고령이라도 하청업체의 임원이나 사장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 등 좋은 일자리를 가졌던 사람에겐 기회가 계속 있다”며 “반대로 저소득층은 추가로 일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 거기에 몸까지 안 좋아진다고 가정하면 육체 근로를 통한 소득을 아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애 전반에 걸쳐 축적된 불평등은 자산 격차로도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더 커진 자산 격차, 소득 불평등으로
자산 격차도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고령으로 갈수록 임대‧이자수입 등의 재산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전 생애에 걸쳐 벌어들인 소득이 자산으로 연결되는 만큼 자산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벌어지는 구조다.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마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고령층의 자산 불평등은 최근 들어 더 심각해졌다.

2019년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노인가구의 순자산 5분위배율은 117.1배였는데 지난해엔 135.9배로 증가했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상위 20% 노인가구가 하위 20%보다 130배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과 4년 새 5분위배율이 16.1% 증가한 건 부동산 가격 상승 영향이다.
김경진 기자

2021년 기준으로 60대의 46.9%, 70세 이상의 43%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고령층이 30세 미만(2%), 30대(25.4%) 등과 비교해 주택 소유 비중이 높다 보니 자산 가격 상승 영향도 크게 나타났다. 실제 노인가구 중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2019년 12억6306만원에서 지난해 16억575만원으로 27.1% 뛰었다.



미성숙한 연금제도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영향도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전 국민이 국민연금 가입할 수 있게 된 건 불과 25년 전인 1999년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 내에서도 출생연도에 따라 빈곤율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출생세대별 노인빈곤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개발연구원, 통계청]

KDI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인 빈곤율이 50%가 넘었다. 반면 1950년대 전반생의 빈곤율은 27.8%, 1950년대 후반생은 18.7%에 그쳤다. 산업화로 인한 고도 성장기에 근로하고, 국민연금에도 가입할 수 있는 비교적 젊은 노인이 고소득·고자산 노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외 선진국을 보면 고령층 소득원은 대부분 연금 등 이전소득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 내에서 소득 격차가 크지 않다”며 “반면 한국은 근로소득이나 재산소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애초 재산이 있는 사람만이 배당이나 임대료 수익을 가져가다 보니 노인세대 내 불평등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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