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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에 추월당하다

한국이 타이완에 역전당했다. 전체 전력 발전량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차지하는 비중 얘기다. 타이완의 경우 9%에 육박한다. 2020년 3%에서 단 4년 만에 8.9%, 거의 3배가 됐다.

한국은 3년째 5%대다. 2022년까지는 타이완 보다 높았지만, 2023년부터 뒤처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 닮은 꼴… 둘 다 에너지 전환에 불리한 건 마찬가지
1. 에너지 집약적 수출 산업 구조
2. 혼자서 100% 안전하게 유지해야

1. 수출 산업의 구조
한국과 타이완은 수출 제조업이 중심이다. 특히 최대 수출 품목이 반도체로 같다. 한국은 메모리, 타이완은 시스템 반도체 중심이다.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의 위상이나 타이완의 TSMC 같은 기업의 위상은 각국에서 '절대적'이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의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모'다.

"반도체 산업은 열과 빛, 플라스마를 사용합니다. 수백에서 천도에 달하는 열이 발산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죠. 우리는 반도체 팹(Fab) 하나가 제주도 전체 전력의 3분의 1을 사용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공지능의 시대는 더 정밀한 공정을 요구하고, 그러면 더 많은 전력을 써야 한단 점입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위원)

"일반적으로 제조업은 1달러 매출을 만들기 위해 0.3~0.5kWh의 전력을 씁니다. 반도체는 그보다 훨씬 높은 0.8~1.5kWh를 씁니다. 특히 최첨단 EUV 공정이 들어가게 되면 2kWh를 넘어서게 됩니다. 반도체는 점점 더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 /「반도체 오디세이」 저자)


이론적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50% 늘린다 해도, 전력 사용량이 그만큼 늘어버리면 재생 비율은 전혀 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사용하는 전력은 단순히 합산하면 대한민국 전체 전기 발전량의 8%다. 엄청난 양의 전기를 쓰는데, 앞으로는 더 많이 쓸 것이다.

그렇다고 수출 첨단 제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전기는 써야 한다. 줄이기도 힘들다. 따라서 재생 전환에 불리한 환경이다.

(사용 전력량은 두 기업의 지속 가능 보고서 속 최신 데이터 기준이다. 이 수치는 국내외 합산이다. 따라서 두 기업이 국내외에서 쓰는 전력량을 모두 합친 8%는 사용량의 비교를 위한 지표이지, 한국 전기의 8% 이상을 두 기업이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

2. 섬이거나 섬과 유사한 환경
에너지는 100% 수입품이다. 화석연료든 원자력이든, 마찬가지다. 바깥에서 에너지를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배로 들여온다. 섬이거나 섬과 유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국토 면적이 좁다. 대부분 산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용이한 환경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웃 국가에 의지할 수 없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에 에너지를 의존하기는 어렵다.

에너지 안보를 100%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매우 보수적 기준에서 전력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유다. 2011년 순환 정전 사태를 겪으면서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모자람이 없는 안전한 전력망' 구축에 더 집착하게 됐다. 충분한 안전마진을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전력망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은 다르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여럿이 힘을 합친다. 국가 간 전력망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영국은 필요하면 노르웨이의 수력 전기나 덴마크의 풍력, 프랑스의 원자력을 모두 실시간 수입할 수 있다. 유연한 전력 운영이 가능하다.)

■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니다

제품 생산에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라는 RE100, 사실 그 자체는 기업의 자발적 약속이다.

문제는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모든 기업이 RE100을 하겠다고 한 점이다. 그들이 '내 공급망에 계속 있으려면 RE100을 해줘야겠어'라고 하니 RE100은 우리나라 수출 제조업체들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의무가 된다.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문제는 지금 속도로는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약속한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현행 국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하에서는 2030년까지는 반도체 전력 수요를 간신히 충족하지만, 2032년부터는 이 목표도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반도체 기업들이 RE100 목표를 이행하려면 국가 목표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0%로 높아져야 한다. 목표뿐 아니라 실제 보급 속도도 높아져야 한다. 이 말은 매년 10GW 이상의 설비가 계통에 연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반도체 산업,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기후솔루션. 6월 발표

■ 그런데, 타이완의 전환을 누가 돕고 있나?

타이완은 어떻게 빨라지나? 의지다. 우선 정부의 의지다. 타이완 탄소 감축 기구에 참여했던 린쯔루엔 타이완 국립대 교수는 에너지 전환이 2016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증언한다.

국가의 의지와 역량이 그때부터 강한 동력이 되었다. "경제부 교통부 농업부 등 관련 부처가 협의했고, 각종 민원과 갈등을 협의체를 통해 해결했다"고 말한다.

기업의 의지도 강력했다. 특히 타이완 국가대표 기업, TSMC가 앞장섰다. 2020년 덴마크 풍력 회사(오스테드)와 해상풍력 전원 공급을 위한 직접 계약(제3자 PPA)을 했다. 규모는 0.9기가와트, 거대한 계약이었다.

TSMC는 이후 국내외 거대 재생에너지 기업과 추가로 태양광과 풍력에서 끊임없이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계약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업이 아직 없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이 타이완의 에너지 전환, 우리 기업들이 돕고 있었다.

타이완에서 세계 1위 해상풍력 회사 오스테드(Ørsted, 덴마크) 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사장, 페어 마이너 크리스텐센(Per Mejnert Kristensen)을 만났다. 그는 한국 기업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페어 마이너 크리스텐센 덴마크 오스테드 아시아태평양 지사장

"한국은 산업 기반이 굉장히 잘 갖춰진 나라예요. 그건 녹색 전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죠. 오스테드는 예전부터 한국 공급업체들과 함께 국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어요. 꽤 오래 협력해 왔죠. 그 과정에서 한국에는 해상풍력 같은 분야에서 녹색 전환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강력한 기업들이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예를 들어 몇 군데만 꼽자면, LS 케이블(해상 케이블), 씨에스윈드(타워), 한화오션(조선), 그리고 성동(하부구조물) 같은 기업들은 저희가 아주 좋은 협업을 해온 파트너들이에요."

경남 통영의 성동조선 사례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2010년대 법정관리에 들어가 직원 200명만 남은 회사가 하부 구조물 사업으로 부활했다. 지금은 직원이 3,000명이다. 지난해 매출의 70% 이상을 해상풍력 발전에서 올렸다.

타이완의 빠른 에너지 전환의 이면에는 이런 한국 기업의 조력이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이 과정에서 매출을 올리고 글로벌 플레이어로 커가고 있다.

HSG성동조선의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 <수도권 에너지 독식>

재생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해야 하고, 우리에겐 잠재력도 있다. 그런데 경쟁자는 추월해 앞서간다. 왜 그럴까?

1. 정부가 강제로 속도를 조절한다
전남지역은 재생에너지 추가가 멈춰져 있다. 2031년까지다. 5kV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추가로 연결하려는 모든 사업자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가장 풍부한 지역에서 강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송배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해도 연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산을 막고 있다.

2. 수도권 아니면 쓸 곳이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모순이 있다. 소멸 위기로 치닫는 지역에는 추가로 전력이 필요한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다. 신규 수요는 오직 수도권이다. 그렇다면 새로 생기는 전기는 무조건 수도권으로 옮겨야 쓸 수 있다.

문제는 송배전망 건설에는 반대가 극심하다는 점이다.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걸 다 해도 10년 15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가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강제로 낮추는 것이다.

결국 타이완에 뒤지게 된 이유는 바로 이 ① 수도권 수요 쏠림과 그 때문에 벌어지는 ② 강제 속도 조절 때문이다.

'수도권 에너지 독식 시스템'으로 불러야 할 만큼 심각한 쏠림 현상을 풀어야 한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지역 균형과 장기적 성장이 모두 여기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 10기가와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문제

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안 그래도 심각한 수도권 전력 쏠림을 극적으로 심각하게 만들 이벤트가 벌어지려 한다.

바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이미 건설 중인 SK 하이닉스의 원삼면 단지와 곧 토지 수용에 들어갈 삼성전자의 이동-남사읍 단지다. 규모와 의미는 제쳐두고 전력만 살펴보면 최소 10기가와트의 전력이 더 필요하다. 13기가와트를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현재 수도권 안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27기가와트 수준이니까, 그 절반 정도를 쓸 공장지대가 새로 생겨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시사기획 창>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석광훈 에너지 전환포럼 전문위원

■ 본질은 수도권 에너지 독식 시스템의 위기

한국은 타이완에 왜 뒤졌는가?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전력망의 문제다. 에너지 측면에서 그 본질은 한 가지다. <수도권 에너지 독식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아래서는 속도를 더 낼 수가 없다. 관련 산업에 '신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소용없다.

이 <수도권 독식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의지, 그리고 계획이 국가와 기업 모두에 필요하다.


오늘 밤 10시, KBS 시사기획 창은 <전환과 성장-수도권 에너지 독식 체제의 위기>에서 이 문제를 정면에서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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