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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형 약국’ 성남 메가팩토리 한 달
의약품 2500가지 최대 30% 저렴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에서 소비자들이 약을 고르고 있다. 이주빈 기자

“영양제가 거의 다이소만큼 싸네?” (소비자)

“두 연고는 성분이 비슷하니 하나만 사셔도 돼요.” (약사)

지난 6월10일 경기도에 개점한 ‘창고형 약국’ 영업이 한 달을 맞이했다. 소비자는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장점을 든다. 반면 약사회는 “약물 오남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약사들은 “동네 약국 죽이기”라고 반발한다. 제약업계에서는 ‘창고형 약국’이 더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고형 약국’인 ‘메가팩토리’ 건물 외관에는 약 박스 수십개가 쌓여 있었다. 약 박스를 실은 트럭이 연이어 오갔고 직원들은 택배 박스를 하차해 분류하는 ‘까대기’ 작업을 쉼 없이 하고 있었다.

다이소처럼 다양하고 약사가 복약지도까지

매장은 약 130평 규모로 일반의약품 2500여가지 종류가 구비돼 있었다. △밴드·보호대·벌레퇴치 △영양제·구강·염색 △해열·소염·진통제·파스 △감기약·구내염·치약·인후 △속쓰림·잇몸약·피부질환 △소화·점안제 △동물용품·관절·숙취해소·멀미·철분 △마그네슘·간·탈모 등으로 코너가 10여개로 나뉘어 있다. 다이소나 대형마트처럼 소비자는 약 종류와 숫자가 적힌 안내판을 보고 약을 둘러볼 수 있게 돼 있다. 매장 한쪽 벽면에는 박스 단위로 판매하는 자양강장제·소화제가 수백개 쌓여 있었다.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에서 소비자들이 약을 고르고 있다. 이주빈 기자

손님들은 저마다 카트를 끌며 ‘약 쇼핑’에 나섰다. “여보 이쪽으로 와 봐. ‘비맥스메타’(비타민 약 종류)가 39000원밖에 안 하네. 동네 약국에선 7만원이었는데.” 핸드폰으로 약 한 알당 가격을 계산하는 소비자도 보였다. 가족·지인에게 전화를 해 “약이 저렴하니 필요한 약을 말하면 사다 주겠다”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일부 약은 동네 약국에 비해 10~30%가량 저렴했다. 대표적인 약 상품의 메가팩토리 판매가를 전국 최다 판매가와 비교해 보면 △테라플루나이트(6개입) 9천원→7천원 △애크논크림 12000원→1만원 △탁센(30개입) 8천원→5200원 △스트렙실(12개입) 6천원→4500원 등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약사 두세명이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소비자의 질문에 응대하거나 약을 찾아주고 있었다. 한 소비자가 “생리통으로 먹을 액상 부루펜을 찾는다”고 하자, 약사는 “액상은 위장장애가 생길 수 있다”며 같은 성분의 연질캡슐 약을 추천했다. “입술 포진약을 사려고 한다”는 또다른 소비자에게는 “포진이 올라오기 전이라면 ‘아시클로버’, 포진이 올라온 이후라면 상처회복 성분이 있는 연고 ‘티로클’ 등을 쓰면 된다”고 알려줬다. 진통제 두 개를 들고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다가가 “왼쪽 약은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작게 나온 것”이라며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에서 소비자들이 약을 고르고 있다. 이주빈 기자

계산대에는 약사 4명이 계산과 복약지도를 했다. ‘아시클로버’와 ‘포지넨’ 두 개를 담은 소비자에게 “둘 다 비슷한 성분이니 포진이 난 위치에 따라 하나만 사도 된다”고 말해주거나 “테라플루 나이트는 일반적으로 감기 기운이 있을 때, 테라플루 나이트 ‘콜드앤코프’는 진해 성분이 들어있어 기침이 심할 때 먹으면 된다”고 안내했다. 소비자들 일부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며 “이 약까지는 따로 담아달라”거나 “이만큼은 따로 계산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남용이요? 평소 먹는 약을 더 싸게 살 뿐”

소비자들은 다양한 약을 둘러볼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해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인 비암바(byambaa·44)는 “비타민, 파스 등 총 43만원어치 약을 샀다. 한국에 여행 왔다가 곧 몽골로 돌아가는 엄마에게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물건을 비교하기 좋고 가격이 싸서 또 올 생각”이라고 했다.

김아무개(66)씨는 “평소에 먹는 기관지약 ‘맥그론’을 동네 약국에서 3500원에 샀는데 여기서는 2천원에 팔더라. 계산하는 약사가 약 효능, 복용량을 알아서 설명해 줬다. 복약지도는 동네 약국이랑 비슷한데 가격이 확실히 싸니까 안 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사들이 ‘오남용 위험’을 이야기하는데, 평소에 먹는 약을 더 싸게 샀을 뿐”이라며 “약사들의 ‘이권 지키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송아무개(29)씨는 “약 1년치 감기약을 비롯해 인공눈물·진통제·메디폼(밴드) 등에 12만원을 썼다. 5만원 이상 아낀 것 같다. 다이소만큼 싼 영양제도 많았다”고 했다.

정두선(49) 메가팩토리 대표는 “건강에 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는데, 마트를 가도 헬스케어 코너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소비자가 여러 상품을 비교하며 편리하게 약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곳 약사들은 ‘설명하되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일하고 있다. 소비자도 유통기한을 모두 보고 필요한 만큼 사가기 때문에 ‘사재기’ 우려는 과도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오디엠(ODM·연구개발생산), 오이엠(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상품을 만들어 중간 마진을 빼고 저렴한 약을 공급할 계획”이라며 “전문의약품 판매 계획은 없다”고 했다.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에서 소비자들이 약을 계산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약사들 “동네 약국 죽이기”

메가팩토리가 위치한 성남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17년차 약사 이아무개(55)씨는 메가팩토리 개점을 두고 “동네 약국 죽이기”라고 비판했다. 이씨는 “텐텐(어린이 영양제) 120개짜리를 18330원에 납품받는데, 메가팩토리는 같은 제품을 17000원에 ‘판매’한다. 우리는 프렌즈아이드롭(인공눈물)을 4150원에 들여와서 5천원에 파는데, 메가팩토리 ‘판매가’는 3500원”이라며 “메가팩토리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게 나을 판인데 세금계산서를 떼야 하니 그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비자는 납품가에 대해 잘 모르니, 판매가만 보고 동네 약국에서 폭리를 취한다고 비판한다”며 “메가팩토리가 생긴 이후 약국 손님에게 ‘도둑’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24일 입장문에서 “창고형 약국은 약사의 본질적인 역할인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복약지도, 의약품 안전관리, 환자 맞춤 상담 등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가격 경쟁만을 앞세운 의약품 난매는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긴다”고 했다. 소비자 송씨는 “이곳에 오니 사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약까지 사게 됐다. 무분별하게 약을 담아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오남용 우려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대한약사회는 대형 자본으로 인한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했다. 대한약사회는 “(창고형 약국은) 지역사회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전체 약국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온오프라인 약국 매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약국 매장이 줄어들어 미국 취약 계층의 의료 서비스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저소득층 주거 지역 위주로 약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 외관. 이주빈 기자

“대형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오남용 막으려면 제도 개선”

제약업계에서는 창고형 매장을 시대의 흐름에 따른 수순으로 본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형 약국이 생기면 약이 많이 팔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네 약국에서 감소하는 매출도 있으니 생각만큼 이득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동네 약국에서 (납품 단가 관련) 항의를 많이 받는다. 대량공급에 따른 공급가 할인이 적용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시장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형 병원을 끼고 있는 약국은 전문의약품 판매 위주라 타격이 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약국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동네 슈퍼, 대형 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이 있듯이 약 판매도 결국 대형화·온라인화를 막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8년차 약사 정아무개(36)씨는 “동네 약국에서도 제대로 복약지도 하지 않는 약사들이 많다. 복약지도에 관한 강제성이 없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라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동네 약국에서 1년치 약을 사 간다고 해도 오남용 우려가 있기는 마찬가지”라며 “소비자가 일반의약품을 살 때 어떤 약을 얼마나 샀는지 간단히라도 의무기록을 남기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약을 싸게 파는 약국들은 자체 개발하는 건강기능식품 등을 이용해 마진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렇게 생산되는 유산균 등은 일반적인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에 비해 균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격뿐 아니라 구성·함량·원료·용량 등을 고려하고 구매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라고 조언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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