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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영어 학원에 가기 위해 5살, 6살 아이들이 고시와 같은 시험을 치르는 시대. '7세 고시'라는 신조어에 담긴 부모들의 열망은 선명하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질 좋은 교육을 받아 성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이를 위해선 '질 나쁜 아이들'은 내 아이 주변에 없어야 하고, 우리 동네는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 끔찍한 범죄?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7세 고시'에 대해선 찬반이 갈리지만 '내 아이가 잘 크기 위해선 이 사회가 안전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KBS <시사기획 창> 소년원-방치된 아이들의 학교 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담았다.

■ 소년원은 교도소가 아니다…누가 소년원에?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소년원은 모두 10곳. 하루 평균 1,000명 안팎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생활한다. 이 소년원생들은 전부 다 무서운 10대. 흔히 말하는 '흉악범'일까? 현재 14살 이상 이상의 아이들이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르면 형사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간다. 소년원은 교도소와는 다른 곳이다.

그렇다면 소년원생들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1위는 '보호관찰 위반'이었다. 소년들의 비행이 상대적으로 무겁지 않을 경우 법원은 우선 보호관찰 명령을 내린다.

학교 수업을 빠지지 않고 다닐 것, 밤늦게 다니지 말 것, 범죄 예방 강의를 들을 것 등등 재비행을 막기 위해 법원이 내리는 조치다. 소년원에 오는 아이들은 이를 어겨서 오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뒤는 폭력, 절도 순이었다. 강도 등 강력범죄는 1% 수준이다.


■ 똑같은 죄지어도 부모 없으면 소년원 간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소년원 출신 청년 이태수(가명) 씨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다른 친구는 부모가 있어서 나가고, 나는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소년원에 갔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일까?


류기인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판사는 "결국은 비율적으로 보호력이 약한 가정에 있는 친구들이 소년원에 상대적으로 더 오는 거는 부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 소년들의 비행이 반복될지,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를 분석해 최종 처분을 내리는데 "비행이 1회로 끝나고 일반적인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가정의 보호력"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KBS가 실시한 소년원생 전수 조사(전국 10개 소년원 972명 중 885명이 참여) 에서도 1차 보호망의 부재는 뚜렷이 나타났다.

소년원에 오기 전 10명 중 6명은 보호자의 변화, 가정 해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이혼, 사망, 투병, 보육원에 맡겨진 경험이 있는 이들은 절반을 넘었다. '부모가 나를 때렸다' '부모가 자주 싸웠다' '부모가 서로 때리며 싸웠다' '부모에게 언어 폭력, 막말을 듣고 자랐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2차 안전망인 학교도 이들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다.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소년원에 올 때 이미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고, 그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가 가장 많았다.

비행은 반복됐다. 10명 중 9명은 성인의 구치소에 해당하는 소년분류심사원 경험이 있고 47%는 이미 소년원을 한 번이라도 다녀갔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비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어 하는 건 아이들 자신이었다. 소년원을 나가면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싶다,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 취업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 범죄소년 '영구 격리'? …공부해야 재범률 낮아진다

만약 내 아이가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면? 할 수 있다면 가해자를 다시는 내 아이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들고 싶은 게 피해자, 피해 부모의 솔직한 심정일 거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영구 격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도소에 간다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회로 복귀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 결과를 보면 소년범들의 재범률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교육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는 소년범은 재범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구금 시설 교육에 1달러를 투자하면, 결과적으로 최대 5배의 수감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현행 소년보호제도엔 아직 성장 단계인 아이들을 처벌만 해서는 오히려 재범을 막을 수 없다는 고민이 담겨 있다. 그래서 소년원은 구금 시설이지만 학교로 운영된다. 이 아이들이 학교로, 사회로 돌아가 적응하지 못하면 더 큰 비행, 범죄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년원 학교 수업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현재 중고등학교 수업을 하는 소년원은 10곳 중 4곳뿐이다. 나머지 소년원은 직업 훈련만 이뤄지고, 학교 졸업을 원하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법무부 소속 교사 수도 학교당 3~5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학업 수준은 천차만별인데 맞춤형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육부는 요청이 오면 협업만 할 뿐 소년원생 교육을 직접 담당하지 않는다.

정희진 안양소년원 교사는 "일반 학교에는 한 명도 있을까 말까 한 학생들이 여기 모여있는 것"이라면서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수가 부족하다. 교육부에서 소년원에서 부족한 과목들에 대해 좀 더 많은 지원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래야 아이들의 수업이 좀 더 양질의 수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소년원 생활관 내부

■ 10곳 중 6곳 미어터진다…'소년범 혐오'는 어디서?

현재 소년원 10곳 중 6곳은 정원 초과다. 낡고 비좁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말 그대로 끼어서 생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재판을 앞둔 아이들이 조사받으며 머무는 소년분류심사원은 전국에서 단 한 곳뿐이라 소년원은 이 아이들까지 대신 떠맡고 있다. 만약 지금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형사처벌 나이를 낮추고 최대 2년인 소년원 기간을 연장한다면 이런 시설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예산 문제가 어렵게 해결된다 해도 시설을 더 짓기는 힘들다. 이 소년들에 대한 '혐오' 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소년범에 대한 선정적이고 과장된 언론 보도가 혐오를 더 확산시키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진단했다. 사실일까. <시사기획 창>은 연구팀과 함께 최근 35년간의 소년 범죄 보도를 심층 분석해 봤다.


'무서운 10대'를 우려하는 기사는 1990년에도 등장했다. 소년 범죄 기사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있었던 2017년에 급증한다. 이후 다소 줄었지만, 한동안 상승세를 이어갔다. 실제 소년 범죄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소년범 비율은 20년 가까이 5% 안팎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언론에 담긴 소년 범죄는 현실과는 달랐다. 통계를 확인해 보면 소년들의 범죄는 물건을 훔치는 재산 범죄가 가장 많다. 그러나 분석 결과, 재산범죄는 실제보다 적게 보도되고, 강력범죄 특히 흉악범죄는 실제보다 9배 더 많이 기사가 쏟아졌다.



이들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거나 재범 방지 방안을 담은 기사는 35년간 계속 줄고 있었다. 반면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즉각적인 호기심과 두려움, 분노를 일으킬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는 점점 더 늘고 있었다.

김현석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사람들은 소년범에 대해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소년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언론 보도에서 소년범을 다루고 있는 관점과 유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세금으로 소년원생 잘 먹이고 '맞춤형 교육'한다…왜?
소년원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취재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아델포이 소년원을 찾아갔다. 재판을 받고 이중, 삼중으로 철저한 보안 장치가 돼 있는 구금 시설에서 24시간 직원들의 통제하에 생활하는 건 한국 소년원과 다르지 않았다.


아델포이 소년원 학교

다른 건 교육이었다. 한국 소년원은 법무부가 운영하지만, 이 소년원에 있는 학교는 주 교육부가 담당하는 공립 학교다. 대부분 학업을 중단한 상태에서 오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인데, 이 소년원 학생들은 공교육 시스템 안에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법무부 소속이 아닌 공립 학교 교사들이다. 학생이 어디에 있든 학교 교육은 주 교육부 관할이라는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한 반에 학생은 12명에서 15명, 소규모다. 교사는 1명이지만 수업을 지원하는 직원이 2명까지 배치돼 학업 수준이 다른 학생들에게 철저히 맞춤형 수업이 가능했다.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학업 성취가 높고, 재범률은 낮게 나타났다.

급식비 차이 같은 건 없었다. 일반 공립 학교 학생들과 똑같이, 양질의 식사를 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주 정부의 교육 예산은 그 학생이 어느 학교에 다니든 학생을 따라다니며 지원되기 때문이다. "소년원 온 아이들을 왜 세금을 들여 이렇게 잘 먹이고, 철저히 가르치나요?"라는 이 질문에 소년원 교사는 이렇게 답했다.

크리스틴 한/ 아델포이 소년원 교사
이 아이들이 어릴 때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결국은 어른이 돼서 감옥에 있는 내내 그 돈을 그들에게 쓰게 될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어릴 때 변화를 줄 수 있으면 결국 장기적으로 세금을 절약하는 셈이에요.

■ 성인범? 세금 내는 국민?…"우리는 연결돼 있다"
류기인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 판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결국 다 연결된 고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 아이, 네 아이, 나뉘는 순간 우리 아이만 아무리 잘 되려고 해도 다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우리 아이 앞서 보내도 결국은 옆에 아이가 무너지면 우리 아이도 무너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소년원생들이 잘 커야 성인 수감자가 아닌 세금 내는 사회 구성원이 되고, 내 아이가 사는 사회도 더 안전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류 판사는 "(이 아이들이) 방치되고 돌보지 않고, 개선의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는 성인범으로 우리 옆으로 오는 거다. 그러면 우리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담장을 높여야 하고, 사회적 비용을 나중에는 굉장히 많이 지출해야 한다." 면서 이렇게 되물었다.

"정말 5년 10년 뒤에 성인범으로 이 친구들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성인범이 아니라 적든 많든 세금 내는 국민으로 만날 것인가.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담장을 높이지 않아도 걱정 없는 이웃이 될 수 있다."

소년원-방치된 아이들의 학교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22-2eSXks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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