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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주민 반대” 이유로 공동묘역 안치 요구 외면
이주성씨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180명을 고작 10평에 모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이주성(65)씨가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 거리에서 여러 구호가 적힌 팻말을 앞에 두고 섰다. 팻말 문구 중에 “생존 시에는 칼잠으로, 죽어서는 웅크린 채 암매장, 발굴 후에는 180명을 10평에 합장?”이라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1인시위에 나선 건 3일부터다. 매일 저녁, 같은 장소에 나올 계획이다. 이날은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낸 터라 오후 3시께 시위를 시작했다. 현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이씨는 “죽은 친구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아동 인권 침해사건으로 꼽힌다. 이주성씨는 9살이던 1970년 수원역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며 동생과 함께 놀다가 납치돼 1975년까지 선감학원에 수용됐다. 경기도가 해방 직후인 1946년 조선총독부로부터 물려받아 1982년까지 운영한 선감학원에는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강제 연행한 8~19살 아동·청소년 5759명(원아대장 확보)이 수용됐다. 외딴섬 선감도의 시설에서 아이들은 굶고, 맞고, 강제노역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목숨을 잃은 원생들은 암매장됐다.

이씨가 1인시위에 나선 건, 경기도가 그렇게 목숨을 잃었던 친구들의 유해를 안산시가 관리하는 선감동 공설묘지(선감동 산130-1)의 10평도 안 되는 공간(30㎡)에 안치하려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올해 4월까지 선감학원 공동묘역(선감동 산37-1)에서 확인한 분묘는 187기였다. 앞서 2022년과 2023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주관해 발굴한 분묘까지 포함한 수치다. 올해 발굴에서는 67기에서 치아, 대퇴골 등 537점의 유해가 나왔다. 유해가 안 나온 분묘 또한 40년 넘는 세월 동안 땅의 습기와 산성으로 인해 10대 아동들의 연약한 유해가 부식된 것으로 분석됐다.

187기에서 나온 유해를 10평 공간에 안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씨는 소름 돋는 과거 기억을 떠올렸다. 밤마다 팬티도 입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칼잠을 자던 선감학원 원생들의 살풍경이다. 담요는 충분치 않았고 방은 좁았다. 모로 누워 머리 다음에 발, 또 머리 다음에 발…. 교차로 빽빽하게 이어진 대열은, 누군가 잠결에 등을 대고 누우면 그대로 무너졌다. 자다가 일어나 두드려 맞았고, 잠자기 전에도 ‘곡괭이 빠따’를 맞았다. 이씨는 “살아서 그렇게 인권침해를 당하던 이들이, 죽어서도 인권침해를 당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30일 67기의 유해가 수습됐다고 발표된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 공동묘역. 이날 경기도는 현장에서 공개설명회를 열고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경기도는 이미 확정된 계획을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인권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9월 중 선감학원 발굴유해 안치행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평 공간에 187기에서 발굴한 유해를 안치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률 18조 ‘분묘 등의 점유면적 등’ 규정에 따르면 분묘 1기의 점유면적은 10㎡를 초과할 수 없고, 합장할 경우 15㎡를 초과할 수 없고, 이에 따라 15㎡의 분묘를 2개 만들어 총 30㎡ 안치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법에 따르더라도 꼭 분묘를 두 개로만 한정해 합장할 이유는 없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도가 소유하고 시가 관리하는 공설묘지를 무한히 사용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굳이 왜 공설묘지를 택한 것일까. 이주성씨는 “이렇게 좁은 곳에 모시려면, 차라리 유해를 발굴한 선감동 공동묘역에 안치시설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 인권과 관계자는 “(선감동)주민들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관광지인데 이미지가 훼손된다”면서 발굴 묘역에 안치시설을 세우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유해발굴할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발굴하고 나니까 봉안시설은 안된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씨는 “경기도나 안산시가 단 한 번도 이와 관련해 주민 공청회를 연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을 비롯해 대다수 피해생존자가 이와 관련해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가진 적도 없다고 했다.

이주성씨의 1인시위는 외롭다. 그와 뜻을 함께하며 거들어주는 동료 피해생존자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선감동 공설묘지 안치 계획은 피해자 단체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등과도 다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원론적으로는 유해발굴한 곳에 안치하는 게 좋지만, 주민들 반발이 심하다고 한다. 처음부터 경기도와 논의한 것”이라고 했다.

1970년대 선감학원 원생들의 모습. 경기창작센터 제공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도 의뢰를 받아 선감학원 공동묘역 지표조사와 유해발굴을 했던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선감학원 유해를 선감동 공설묘지에 두는 건 행정편의주의 발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거기(공설묘지)에 안치하면 선감학원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나. 유해가 발굴된 공동묘역을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유적지로서 공원화하고 추모탑을 세워 유해를 그 밑에 모시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경기도는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경기창작센터 옆 옛 선감학원 건물을 복원해 인권평화박물관을 세우는 ‘선감옛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와 연계해 유해를 안치하는 방법이 대안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주성씨는 선감학원에 있던 시절, 탈출을 감행했다가 갯벌을 건너지 못한 채 밀물 때 떠밀려온 친구들의 주검을 만지던 감촉이 생생하다. 주검을 매장하는 일은 원생들 몫이었다. 10대 초반이던 이씨도 직접 6~7명을 묻었다. 친구들은 잔뜩 웅크린 채 굳어 있었다. 가마니나 헝겊을 덮어 웅크린 자세 그대로 땅에 얕게 묻었다. 어쩌면 생전에 알몸으로 칼잠을 자던 포즈였다. 이씨는 그 웅크린 친구들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이씨는 인터뷰하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건 아닙니다…이건 아닙니다.” 경기도는 완고하다. 그의 마지막 희망이 새 정부다. 그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까닭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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