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SKT 매장 입구에 유심 소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SK텔레콤이 유심 해킹 사태 보상책으로 계약 해지 고객의 위약금을 면제하기로 했지만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 TV 등과 모바일 요금제를 결합한 상품의 가입자가 많은데 ‘결합상품’ 위약금은 면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4일 SK텔레콤의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 브리핑에 따르면 위약금 면제는 모바일 서비스(휴대전화)만 대상이다. 모바일과 TV·인터넷 요금을 결합한 데 따른 그간의 할인액은 해지시 반환(위약금 발생)해야 한다. 해킹 사고의 직접적 피해는 모바일 서비스에 국한되기에 결합상품 위약금은 면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SK텔레콤의 설명이다.
임봉호 SK텔레콤 이동통신사업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바일 서비스와 결합한) 유선(인터넷·TV 등)은 이번 해킹 사고와 무관하기에 유선 이동 시 발생하는 위약금은 이번 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위약금 면제’란 중도해지 때 반환해야 하는 그간의 할인액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이날 “(SK텔레콤 해킹 사태는) 회사의 약관상 위약금을 면제해야 하는 회사 귀책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어 SK텔레콤이 보상안을 공개하며 “해킹 사고 발생(4월18일 24시 기준) 전 약정 고객 중 사고 이후 해지했거나 7월14일까지 해지 예정인 고객에게는 위약금이 면제된다”고 발표했다. 보상안에는 8월 통신요금 50% 할인, 연말까지 매월 데이터 50GB 추가 제공 등도 포함됐다.
결합상품 가입자가 많아 이번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통신업계에서는 모바일 요금제를 TV·인터넷 등과 ‘결합’한 고객의 평균 해지율이 비결합 고객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고 본다. ‘결합상품’이 계약 해지 문턱을 그만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취약한 보안 체계로 해킹에 노출되고, 해킹 인지 후 늑장신고를 한 데다 ‘유심칩 대란’으로 큰 혼란까지 초래했음에도 SK텔레콤은 이 ‘문턱’만은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SK텔레콤의 이번 보상안을 두고 “여전히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임의로 위약금 면제 신청 기한을 열흘로 제한하고, 매월 데이터가 남아도는 가입자들에게 매월 50GB의 데이터를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실효성 없는 대책을 ‘고객 감사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내놨다”면서 “결합상품으로 인한 위약금 보상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SK텔레콤의 이번 대책은 전국민의 절반인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지금 SK텔레콤이 할 일은 ‘고객 감사’가 아니라 국민 앞에 철저히 사과하고 책임에 상응한 보상안을 내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