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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노래인생 마침표 이미자
가수 이미자는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고별 공연을 끝으로 66년 가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쇼당이엔티]
가수 이미자(83)는 지난 4월 26~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66년 노래 인생을 마무리하는 고별 공연을 마친 이후 팬들과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 5월 16일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사양했다. 그러다 닷새 뒤에 연락이 닿았고 6월 25일 만났다.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8·15 광복과 6·25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다. 전쟁과 가난 등을 극복한 우리 부모 세대의 애환을 노래로 승화시킨 '위대한 대중가요 가수'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는 6·25전쟁 75주년 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진행했다. 이미자는 평소 "은퇴란 말은 참 싫다"고 했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요 인생 66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된 마지막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으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Q :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어떠셨나요.

A :
"(은퇴 공연하면) 탈진한다고 하죠. 아쉬움·편안함·후련함, 그다음엔 행복함이 느껴졌어요. 지난 66년 동안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기에 고별 공연도 잘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감사하죠."
Q : -엄격한 자기 관리가 고운 목소리를 유지해 온 비결인가요.

A :
"저는 그냥 평범해요. 높지도 낮지도 않은 거, 많지도 적지도 않은 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거. 그런 거를 강조하며 살아왔어요."
Q : -수많은 히트곡 중에 '여자의 일생'이 있는데,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A :
"아들이 근처에 사는데 가족과 손주들이 함께할 때가 행복하죠. 가족이 흩어져 살고,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그런 시대가 왔기 때문에 바빠도 최대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같이 식사하려고 노력해요. 많은 관객 앞에서 열광적인 박수를 받을 때도 참 행복하죠."
Q : -탄탄대로만 달려오진 않으셨죠.

A :
"힘들었던 때도 많았어요. 1964년 '동백 아가씨' 앨범을 발표했을 때 선풍적이었는데 65년부터 87년까지 장장 22년간 금지곡이 됐죠. '동백 아가씨'뿐 아니라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히트곡이 나오는 족족 금지곡이 됐어요. 당시는 그냥 좌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비포장도로에서 돌부리에 걸리기도 했고, 지금은 아스팔트 길, 쭉 뻗은 고속도로 시대까지 살아온 사람이니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사람들이 가끔 이미자를 꽃에 비유하면 뭐냐고 물어요. 당연히 저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동백이죠."
1967년 발표한 '섬마을 선생님' 앨범을 들고 있는 이미자의 젊은 시절 모습.

이미자는 19세이던 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다. 64년 여름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 앞 목욕탕 건물 2층에 있던 지구레코드 녹음실에서 만삭의 몸으로 노래했다.

Q : -언제부터 가수를 꿈꾸셨나요.

A :
"네다섯 살 때인가,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노래를 잘 따라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서울 문성여중 시절에 유명 가수 방송을 보고 나도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 되겠다고 콩쿠르 대회는 거의 다 출전했어요."
이미자는 59년 데뷔 이후 90년까지 음반 560장에 모두 2069곡을 발표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 후에도 노래를 꾸준히 발표해 최근 고별 공연 때까지 무려 2600여 곡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미자는 '동백 아가씨'를 작곡한 백영호(1920~2003) 선생과 '섬마을 선생님'과 '기러기 아빠' 등을 작곡한 박춘석(1930~2010) 선생을 노래의 스승으로 꼽았다. "악단을 지휘해준 박춘석과 특히 호흡이 잘 맞았다"고 기억했다.

Q : -2600여 곡 중에 '이미자의 18번'이 있나요.

A :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기보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라면 3대 히트곡이자 금지곡으로 묶였던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이렇게 세 곡이에요. 크게 히트했는데도 금지곡이 됐다가 22년 만에 해금됐으니까 가장 애착이 가죠. '동백 아가씨'는 1만 번은 부르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가사처럼 성대가 빨갛게 멍이 들었겠죠. "
Q : -유달리 마음에 남는 가사가 있다면.

A :
"제 노래 가사는 전부 우리 시대를 반영했으니까 시대에 따라 노래가 나왔죠.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부른 '내 삶의 이유 있으면'이란 곡의 가사가 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닿아요. 제가 김소엽(81) 시인께 가사를 의뢰했고 장욱조(78) 씨한테 곡을 부탁했어요. 작곡가가 준 노래가 아니라 제가 주문해서 나온 노래죠."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 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나 슬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나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내 안에 가득 사랑이/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

지난해 10월 '동백 아가씨' 발표 60주년 기념 행사 때 전시된 이미자와 작곡가 백영호의 1960년대 모습. [사진 백영호의 장남 백경권 진주 서울내과의원 원장]
'내 삶의 이유 있으면'의 가사처럼 지난 66년 가수 이미자의 불꽃 같은 삶에서 노래와 사랑은 존재 이유 그 자체였던 셈이다.

Q : -올해가 6·25전쟁 75주년인데. 전쟁과 가난에 대한 기억은.

A :
"많이 있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자리가 제 고향이에요. 거기서 열 살 무렵에 6·25를 만났죠. 당시 가족은 피란을 못 나갔고, 51년 1·4 후퇴 때 나갔어요. 그때 꿀꿀이죽도 접해본 사람이죠. 방앗간에서 보리 빻고 나온 보릿겨에다 쑥을 뜯어 넣어 보리개떡도 만들어 먹었어요. 그런 시대를 살았어요."
이미자는 인터뷰 내내 전통 가요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분명했고, 확신에 차 보였다. 지난 4월 마지막 공연 당시 후배 가수 주현미·조항조·정서주·김용빈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Q : -전통 가요의 맥을 이어갈 후배 가수들에게 당부할 말씀은.

A :
"분명코 한국 사회의 시대 변화를 대변해 준 노래는 100년을 넘은 가요밖에 없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전통 가요의 맥을 제가 이어왔고 후배들에게 이어줄 수 있는 그런 공연을 했다는 사실에 자긍심과 보람을 느껴요. 요새 경연대회에 나온 신인 가수들은 '이미자 노래는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요. 전통 가요의 정통성을 이어가려면 가사 내용대로, 그러니까 엇박자가 아니라 정박자로 움직이라고 하고 싶어요. 꺾기는 각자 개개인의 기술이겠지만 제 노래 철학은 달라요. 저는 레코드를 취입할 때 항상 정박자로 정확하게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기교 부리지 말고, 군더더기 붙이지 말고, 그냥 오리지널로 쭉 불러야 한다는 말이죠. 기교 부리고 거기에다 살 붙이고 하다 보면 노래가 군더더기가 돼서 잠깐은 듣기 좋을지 모르지만 오래 들으면 싫어져요. 저는 기술 부릴 줄 모르니까."
가수 이미자는 후배가수 조항조와 주현미에게 ″전통가요를 잘 이어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중가요 가수 최초로 이미자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이어 2023년에는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Q : -수많은 공연 중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공연은.

A :
"당연히 월남전 파병 장병 위문공연이죠. 베트남 전쟁 중이던 64년 9월 비둘기부대가 처음 파병됐어요. 당시 정부가 베트남에 위문공연단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연예인들이 전부 회피했어요. 어디에서 총알이나 포탄이 날아와 죽을지 모르니까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미자를 꼭 위문단에 보내야 한다'고 하셨어요. 박 대통령께서 위문단을 청와대로 불러서 제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했고, 귀국해서 청와대에 또 들어가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드렸어요. 2013년 파독 광부·간호사 모임에 가서 했던 공연도 잊지 못하겠어요."
Q : -'이미자 기념관'을 지으면 성대를 국보로 보존하자는 의견도 있던데, 이미자 노래를 공연예술 부문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 어떨까요.

A :
"그런 제안들은 참 고마운 거죠. 국민 여론이 모이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대중가요 가수 최초로 1989년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죠. 고별 공연을 알리며 '이미자 전통 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겼어요."
이날 인터뷰 내내 남편 김창수(88) 전 KBS PD가 자리를 지켰다. 아내가 어떤 음식을 제일 맛나게 잘 만드는지 물어봤더니 그는 "내 고향이 경남 창녕인데, 아내가 우리 어머니께 경상도 음식을 배워서 잘한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Q : -백세시대인데 가수 말고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A :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요."
Q : -어떤 가수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
"전통 가요를 지키려고 애를 많이 썼고, 전통 가요의 맥을 잇기 위한 마음가짐이 컸고, 전통 가요의 맥을 잇기 위해 최선을 다한 가수로 기억되면 더없이 좋겠어요."
Q : -끝으로 팬들과 국민께 한말씀 해주시죠.

A :
"64년 '동백 아가씨' 발표 이후 35주 연속 1위를 했는데 65년에 갑자기 금지곡으로 묶였을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방송 금지는 물론이고 무대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다 무려 22년이 지난 87년 6·29선언 이후에 해금됐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가사 하나 잊지 않으시고 함께 '동백 아가씨'를 불러주신 팬들이 있었어요. 그게 저는 가장 잊을 수가 없어요. 덕분에 행복했고,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세정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가수 이미자가 지난 3월 5일 열린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脈)을 이음’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을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뉴스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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