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시민들 “예상됐던 풍선효과, 실제로 일어난 것”
“탁상행정에 예산 낭비 아닌가” 지적도

서울 강남구가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과거 흡연자들이 몰리던 골목에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막고 조성한 '흰 토끼의 신비한 공간'. /강남구 제공

“바로 옆 ‘토끼굴’에 흡연을 막고 나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립니다.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경고문을 여러 장 붙여놨는데 아무 소용없어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남구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한 건물 앞에서 만난 관리인 A씨가 한 말이다. 예산 20억원을 들여 ‘상습 흡연’ 골목을 산뜻한 분위기의 금연 골목으로 바꿨더니, 흡연자들이 바로 옆 골목으로 몰려왔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예상됐던 풍선효과가 실제로 일어난 것” “탁상행정에 예산을 낭비한 것 아닌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골목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고 있다. /이호준 기자

흡연자 몰리던 강남역 ‘토끼굴’… 예산 20억원 들여 금연 공간으로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나와 20m쯤 떨어진 두 건물 사이 폭 3m 정도의 좁은 골목은 ‘토끼굴’로 불려왔다. 강남역에서 나와 음식점이나 주점으로 이동하는 통로로 유동인구 유입이 많은 곳으로, 오래전부터 흡연자들이 몰렸다. 강남역 일대에서는 대로변만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고, 건물 사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강남구는 ‘토끼굴’에 흡연자들이 몰려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민원이 자주 제기되자 환경 정비 사업을 벌였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흰 토끼의 신비한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초록색 인조 나뭇잎이 벽면에 수직으로 물결을 치며 붙어 있다. 흰색 토끼가 벽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도 설치됐다.

이 골목을 포함해 강남대로 일대 환경 개선 사업에 서울시 5억원, 강남구 15억원 등 총 2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골목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고, 금연 안내문도 곳곳에 붙어 있다. 그 덕에 지난달 30일 오전 11시쯤부터 1시간 동안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바닥에도 꽁초가 없었다.

그래픽=손민균

인근 골목으로 흡연자 옮겨가는 ‘풍선 효과’ 발생… 시민들 “이럴 줄 몰랐나”
하지만 강남역 일대 길거리 흡연은 사라지지 않았다. 토끼굴 옆 골목으로 흡연자들이 옮겨가며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쯤 강남역 11번 출구에 더 가까운 골목에서 행인 5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연 금지’ ‘흡연 절대 금지’ 등의 경고문이 5개 붙어 있었지만 그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토끼굴’이 시작하는 입구 주변에서도 동시에 5명이 흡연 중이었다. 건물 관리인들이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됩니다”라고 제지했지만, 3분 만에 새로운 흡연자가 나타났다. 빗물 배수구에는 버려진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행인들은 담배 연기 때문에 코를 막으며 지나갔다. 강모(37)씨는 “토끼굴 공사 전이나 후나 담배 냄새는 똑같이 난다”며 “오히려 담배 냄새가 나는 지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토끼굴 조성에 20억원이 들어갔다’고 하자 강씨는 “이럴 줄 몰랐나”라고 했다.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대로 왼편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설치된 흡연 부스. /이호준 기자

흡연자 “돈 들여 토끼굴 꾸미지 말고 흡연 부스 만들어 줬더라면”
흡연자들은 ‘근처에 담배를 피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27)씨는 “강남역 일대에 지정된 흡연 구역이 거의 없다. 그래서 골목이나 버려진 꽁초가 많은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인근 건물 관리인 A씨는 “그 예산 들여 토끼굴을 꾸미지 말고 주변에 흡연 부스 하나만 만들어 줬으면 이렇게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말했다.

강남역 일대에 설치된 흡연구역은 서초구가 설치한 개방형 흡연부스 하나뿐이다. ‘토끼굴’에서 이 흡연부스까지는 왕복 12차로 강남대로를 건너야 해 8분쯤 걸린다.

강남구에는 현재 구 전체에 흡연 부스가 없다. 강남구 관계자는 “‘토끼굴’은 자연스럽게 비흡연 문화를 유도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흡연 부스는 하반기 중 민원이 많이 제기되는 3곳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0451 상법 3%룰 남고 집중투표제는 공청회로… 재계 “불확실성은 여전” 랭크뉴스 2025.07.02
50450 열흘간 약 900회…日 도카라 열도 ‘지진 피로’ 랭크뉴스 2025.07.02
50449 [단독] 경찰, 우리은행 부당대출 혐의 47억 원 추가 확인 랭크뉴스 2025.07.02
50448 폴란드 K2 전차 2차 계약 확정… 사상 최대 8.8조원 규모 랭크뉴스 2025.07.02
50447 폭염·폭우 엇갈리는 ‘뉴노멀 장마’···장마 끝이냐 아니냐 랭크뉴스 2025.07.02
50446 "국정운영 위해 필요" 민주당 전액 삭감한 대통령실 특활비 증액 요구 랭크뉴스 2025.07.02
50445 "국민연금 더 빨리 고갈될지도"…'만18세 자동가입' 추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랭크뉴스 2025.07.02
50444 일본행 비행기, 1만m 상공에서 갑자기 '곤두박질'…"무중력 상태, 공포였다" 랭크뉴스 2025.07.02
50443 개미 숙원 드디어... 상법 개정 합의로 '코스피 5000' 탄력 받나 랭크뉴스 2025.07.02
50442 민주당 박찬대·정청래 "9월까지 검찰청 해체" 한목소리 랭크뉴스 2025.07.02
50441 폴란드 K2 전차 2차 계약 확정…사상 최대 8조8천억원 규모 랭크뉴스 2025.07.02
50440 안철수 "종기적출" 외치자…나경원 "통합" 윤상현 "뺄셈정치 혁파" 랭크뉴스 2025.07.02
50439 [단독]비비고마저…K브랜드 1만건 도둑 맞았다 랭크뉴스 2025.07.02
50438 내란 특검, 한덕수 안덕근 소환…김건희·순직 해병 특검 현판식 랭크뉴스 2025.07.02
50437 해병특검, 수사 첫날 임성근 4시간 조사…과실치사 혐의 추궁(종합) 랭크뉴스 2025.07.02
50436 국힘 "자료미제출·위증 시 형사처벌"‥인사청문회법 개정안 발의 랭크뉴스 2025.07.02
50435 정청래·박찬대 "폭풍처럼 몰아쳐 끝 봐야"…고강도 檢개혁 예고(종합) 랭크뉴스 2025.07.02
50434 서민 울리는 라면·달걀 가격… 소비자물가 2.2% 껑충 랭크뉴스 2025.07.02
50433 "부산 싫어? 목포나 울산 어때"‥긴급 진화에도 '거센 역풍' 랭크뉴스 2025.07.02
50432 국힘 송언석 “불법 비상계엄 사과”···혁신위원장엔 ‘탄핵 찬성파’ 안철수 내정 랭크뉴스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