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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대기자
한 세기 한 번일까 말까 할 대통령 탄핵을 8년 만에 두 차례 맞았다면 모두의 성찰과 교훈이 필요한 사회다. 재직 시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의 공통분모는 바로 ‘불통(不通)’이었다. 여론조사마다 으뜸의 잘못으로 꼽혔었다. 다시 새 정부이지만 대통령까지 추락시킨 우리 사회 소통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치뿐 아니라 직장, 가족, 친구, 세대, 모임, 특히 ‘디지털 둥지’ 속의 참호전이 치열한 SNS 등 일상의 소통이 괴로운 시대를 맞은 때문이다.

탄핵 대통령들 공통점은 ‘불통’
일방·형식적 소통은 의미 없어
말문·말귀의 균형 상태가 소통
최고의 가치는 대화의 ‘콘텐트’

대통령의 ‘불통’이 왜 탄핵의 비극까지로 이르게 되는지가 성찰의 출발점이다. 당사자들이야 억울하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그냥 인상,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문화부터가 문제였다. 평생 검사이던 비서실장은 “왕명(王命)은 밑으로 출납만 하는 것이지, 토를 다는 게 아니다”라는 지론을 강조했었다. ‘왕명 출납’만의 결과는 어찌 됐을까.

프로야구 선수의 스탯(stat)처럼 자신의 모든 걸 통계가 말해 주는 게 또한 대통령직이다. 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친노동 행보와 복지 등 ‘경제 민주화’로 중도층을 흡인했다. 과반 당선이었다. 그런데 취임 이후 노동계와 면담은 딱 두 차례. 식사도 아닌 그냥 그런 만남이었다. 기대됐던 복지, 경제민주화는 초반엔 대통령 메시지(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의 26%. 3년 차 2015년엔 2%로 준다. 시민단체와의 만남? 한 차례도 없다. 첫 3년 동안 시민, 지역 인사 오찬 행사 세 차례는 모두 콘크리트 지지의 중심, 대구·경북 지역에서였다. 첫해엔 중소·중견기업 네 차례, 대기업을 두 차례 만났으나 2015년엔 여섯 차례 중 다섯 차례가 대기업. 역점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기업 투자 할당을 밀면서였다.

재직 일정 486건 중 사전 조율된 일방 홍보적 행사(126건, 26.9%)와 현장 방문(102건, 21.8%)이 결국 절반. 대표적 ‘쌍방향’ 소통인 기자회견은 첫 3년간 세 차례(모두 다섯 차례)뿐이었다(한규섭, ‘대통령의 소통 어떻게 해야 하나’에서 발췌 인용). 대면 소통이 왜 이리 적냐는 회견 질문에 그는 참모진을 돌아보며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되물었다. 열린 보수, 중도 확대를 바란 이들에겐 초심과 달리 ‘과거 회귀’ ‘일방향’ ‘권위주의’ ‘전통 지지층 의존 복귀’의 궤적이니 늘 응답은 “불통”이었다.

더 심했다는 지적을 피할 길 없던 이가 윤석열 전 대통령. 2년 반 동안의 네 차례 회견, 총선 참패 뒤의 마지못한 야당 대표 회동 한 차례. 거대 야당의 독주도 작용했지만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의 거부권 39건 중 25건(64%)을 홀로 행사했다. 가장 큰 문제? 대화 시간의 90% 독차지다. 들을 시간? 아예 없다. 미 하원의장을 10년간 한 ‘소통의 달인’ 토머스 오닐은 “사람들이 정치인의 말을 들어 주는 집중의 한계는 15분”이라고 회고했다. 두 대통령 모두 소통한다며 시장도 자주 들렀다. 바쁜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떡볶이 먹는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왜 늘 ‘불통’의 꼬리표였을까.

소통, 특히 민주적 소통은 ‘말문 트임’과 ‘말귀 열림’의 균형 상태다. 대통령이 가장 위험한 시점은 취임 6개월. 고급 정보 독점하니 슬슬 자신감이 생긴다. 다들 “이전보다 훨씬 잘하신다”고 점수를 따려 든다. “이거 뭐 할 만하네. 별거 아닌데”라는 안도가 찾아온다. 아는 게 많아지니 말도 많아진다. 웬만한 대화는 시간 낭비. 누가 바른 말이라도 하면 “그렇게 똑똑한 당신은 왜 대통령이 못된 거지”라는 대통령 특유의 자만감이 올라온다. 그때가 소통의, 리더십의, 나라의 민주주의 위기로 향하는 지점이다. 두 대통령이 남긴 교훈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 절대 자기 의견을 먼저 꺼내지 않고 듣던 김대중 대통령. 지역구도 타파의 험지 낙선 등 자기 삶과 일관된 얘기로 “말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노무현 대통령. 정치의 소통 모델들도 있다. 그런데 가장 인상깊었던 최근의 얘기를 공유하고 싶다.

사라지는 토종씨 7831점을 수집, 육종해 나눠준 ‘종자 주권’ 활동으로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한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다. “토종씨 얻으러 시골 곳곳의 80~90대 할머니들 찾아 얘기 나누기가 쉽진 않았다. 그런데 아주 친해진 게 그 씨 덕분이다. 할머니들에겐 그 씨앗이 고된 자기 삶을 지탱케 해 준 은총이었다. 그분들 삶을 들어주고 공감한 대화의 선물, 그게 토종씨다. 농사짓는 수녀님들과 교분도 (성경의) 겨자씨 덕이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해주는 믿음·생명·은혜·보답, 귀중함의 상징인 씨앗이 마음의 골을 이어준 다리였다.”

대충 듣고, 악수하고, 사진찍고, 덕담만 하는 건 아닌 듯싶다. 소통은 대화의 ‘콘텐트’여야 한다. 필요한 걸 귀담아 듣고 함께 이뤄내 보려는 진정성 말이다. ‘대경청가’가 ‘대소통가’이고, 그가 바로 ‘대정치가’가 되는 이유다. 마침 이번 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이 개최된다고 한다. 첫 씨앗을 뿌리는 자세로 진심이 담긴 콘텐트의 소통이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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