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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 화단에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3마리가 잎 위에 앉아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25일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와 인접한 북한산 둘레길 공원. 이슬비가 내리는 회색빛 하늘에서는 이른바 ‘러브버그’로 불리는 검은 붉은등우단털파리 수백 마리가 한창 혼인 비행 중이었다. 러브버그는 제각각 날아오른 뒤 짝을 만나면 내려왔다. 러브버그 커플의 주도권은 암컷에게 있다. 성체로 보내는 약 7일간 수컷은 암컷을 따라 후진하다가 짝짓기가 끝나면 죽는다. 암컷은 알을 낳은 뒤에야 생을 마감한다.

경향신문은 이날 국립생물자원관, 신승관 서울대 교수 연구진이 진행한 러브버그 현장 조사에 동행했다. 과거 러브버그가 ‘대발생’한 북한산 둘레길 공원과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 등이 조사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지난 25일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의 흰 벽에 다수의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가 붙어있다. 강한들 기자


대발생 조건은 이미 마련돼 있다···매년 반복되는 건 아냐

러브버그 발생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러브버그는 2022년 서울 은평구, 경기 고양시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관찰됐다. 지난해에는 서울 전역과 경기·인천에서도 대발생이 나타났고, 올해도 서식지를 넓히고 있다.

서울 양천구 아파트 단지에서는 흰색 벽, 흰 승용차에 러브버그 수십 마리가 붙어있었다. 나무 아래, 화단 울타리 기둥 아래 등에서도 러브버그가 발견됐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꽃의 꿀을 먹고 사는 러브버그 성충은 꽃의 색과 유사한 흰색을 선호하고, 차량의 매연은 부엽토와 향이 비슷해서 러브버그를 유인한다”며 “나무 아래에는 잎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서 애벌레가 잘 살 수 있으니 알을 낳고, 주위에서 태어난 러브버그가 근처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러브버그 ‘대발생’을 위한 조건은 서울과 경기 ‘어디에나’ 마련돼 있다. 러브버그가 처음 대발생했을 때는 낙엽이 썩어 만들어지는 ‘부엽토’가 많은 산지에서 주로 번식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양천구 아파트 단지에서 대발생한 것이 관찰됐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아파트 화단 정도의 크기의 땅과 낙엽만 있어도 대발생을 했다. 이제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 일대로 확산하고 있다

시민과학플랫폼 네이처링 등에 시민들이 올린 기록을 통해 수집한 연차별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관찰 기록. 2022년 서울 은평구, 경기 고양시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관찰되기 시작하다가, 2024년에는 서울 대부분 구와 경기 일대까지 확산했다. 국립생물자원관·신승관 서울대 교수 연구팀 제공


한국의 러브버그는 어디에서 왔을까. 국립생물자원관이 낸 2024년 ‘대발생 생물 발생원인 및 관리방안 마련 연구’를 보면 러브버그는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 처음 관찰됐다. 이후 새 환경에 정착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빛을 좇아 주민 생활공간에도 모여들면서 시민들의 눈에 잘 띄게 됐다.

과거 대발생이 있었던 지역이라도 매년 유사한 규모·밀도의 러브버그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연구진은 올해 양천구 아파트 단지에는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러브버그 발생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것 같다고 봤다. 다른 조사 지역에서도 처음 ‘대발생’을 했을 때만큼 많은 수의 러브버그가 관찰되지는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박 연구관은 “생태계에서 한 번 대발생하고 나면 참새·비둘기 같은 주변 생물들이 ‘먹이’로 인식을 해서 잡아먹으면서 개체 수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이 지난 25일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 내 흰색 차량에 붙어 있던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를 채집해 알코올에 넣고 있다. 강한들 기자


친환경 방제는 가능할까

이날 조사의 목적에는 ‘친환경 방제 장치’를 점검도 있다. 연구진은 최근 은평구 아파트와 인접한 지역에 친환경 방제 장치 두 종류를 설치했다. ‘광원 포집기’를 3개 지점에 3개씩 총 9개를 뒀고 향을 이용한 ‘유인제 포집기’는 3개 지점에 4개씩 총 12개를 설치했다. 포집기는 지난 23일부터 작동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은평구 주거지역과 인접한 산에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친환경 방제를 위한 광원 포집기가 설치돼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25일 서울 은평구 주거지역과 인접한 북한산 둘레길에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친환경 방제를 위한 유인제 포집기가 설치돼 있다. 강한들 기자


효율은 광원 포집기가 더 좋아 보인다. 광원 포집기는 불을 켜서 러브버그를 유인하고 팬을 이용해 빨아들인다. 러브버그는 비행 능력이 그리 좋지 않아 바람을 이기기 쉽지 않다. 지난 23일 잡힌 러브버그만 수백 마리에 이른다.

꽃향기가 나는 페닐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사용한 ‘유인제 포집기’의 성과는 광원 포집기에 비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광원포집기’는 전기 등이 필요 없어 한 번 설치하면 1~2개월 유지할 수 있다. 러브버그만 유인할 수 있는 물질을 찾는다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줄일 수 있다. 연구진은 최적의 ‘유인제’를 찾기 위한 노력도 이어갈 예정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살충제’ 사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 본다.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화학적 방제를 하면 러브버그 외에 다른 곤충들도 모두 죽일 수 있고,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며 “‘그물’처럼 이어진 생태계에 구멍이 생기면, 새 종이 유입됐을 때 또 대발생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관도 “러브버그를 박멸할 방법은 없고, ‘공존’하는 방법뿐이다. 서로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접점을 찾기 위한 ‘친환경 방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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