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 시행된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따라 29일 서울 부동산 시장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시장에선 이번 대책의 파급 효과, 후속 대책 여부 등을 지켜보기 위해 당분간 매도·매수자들이 관망하면서 매매거래가 중단되는 ‘개점휴업’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매수 문의 뚝…숨죽인 시장
초강력 대출 규제가 시작된 첫날인 지난 28일부터 서울 마포·용산·성동 등 ‘한강벨트’ 일대 부동산 시장은 언제 집값 급등세가 있었냐는 듯 숨죽인 분위기다. 대출 규제가 발표된 27일에는 최근 계약을 한 매수자와 매도자들의 문의로 공인중개사사무소가 종일 북적였으나 이튿날부터는 신규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 마포의 한 공인중개사는 “대출 규제 발표 당일은 그야말로 ‘패닉’ 상황이었다”며 “가계약을 급하게 정계약으로 돌리려는 분들, 아파트값이 급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매수 계약자들의 걱정과 문의로 온종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대출 규제 내용만큼이나 발표 다음날 곧바로 시행한 신속성을 전례 없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 아파트 74% 대출액 감소
이번 조처로 주택담보대출 여신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면서 서울 전체 25개 구 가운데 18개 구에서 대출액이 종전보다 줄어들게 됐다. 부동산R114 조사를 보면, 현 시세 기준으로 6억원 한도 규정을 넘지 않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까지 대출이 가능한 서울 자치구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와 중랑구 등 7개 구뿐이다. 이들 지역은 아파트 평균 시세가 6억~8억원대로, 엘티브이를 최대 70%까지 적용받아도 6억원 이하다.
나머지 18개 구의 경우 비규제지역은 엘티브이 70%, 규제지역인 강남 3구와 용산구는 엘티브이 50%가 적용된다. 이들 지역에선 집값과 차주 소득에 따라 최대 6억원 이상 대출이 가능했지만, 이번 규제로 대출액이 6억원 한도로 제한된다. 가구 수로는 총 127만6257가구로, 서울 시내 임대아파트를 제외한 전체 재고 아파트 약 171만7384가구의 74%가 영향권에 드는 셈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 수준인 15억원 아파트로 가정하면, 지금까지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가 매입할 때 엘티브이 70% 적용으로 10억5천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6억원 한도로 줄어드는 셈이다.
아파트값 하락하나? 추가 대책은?
고강도 돈줄 조이기 여파로 당분간 서울 고가 아파트 시장에선 숨고르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상급지 갈아타기나 ‘똘똘한 한 채’ 열풍이 주춤해질 것”이라며 “특히 최근 가격이 급등한 지역일수록 호가가 점차 떨어지는 등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출 시 6개월 내 의무 거주, 갭투자를 막기 위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등 여파로 전세 유통 매물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7일 대책 발표 당시 “이후 시장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하면 규제지역 추가 지정 등 시장 안정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적극 강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대출 규제는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지정의 효과를 뛰어넘을 정도로 고강도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고강도 수요 억제책으로 시간을 번 정부로서는 주택공급 확대 등을 포함한 ‘종합 부동산 대책’을 시차를 두고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수도권에 신규 택지를 대거 지정하기보다 공공기관과 기업이 보유한 유휴부지와 역세권·상업지구를 고밀 개발해 도심 내 공급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로 용적률·건폐율을 상향하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해 정비사업 기간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이와 함께 3기 새도시의 개발 밀도를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