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일하는 사람의 초상]
호주 경찰·검사 출신 형사법 변호사 강현우
호주에서 경찰과 검찰에 소속돼 일해본 경험이 있는 형사법 변호사 강현우. 본인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형사법 전문 변호사 강현우(43). 현재 직업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직업을 거쳤다. 변호사가 되기 전 검찰 소속 검사였고, 그전에는 경찰 소속 검사였다. 한국인이라면 여기서 멈칫할 수밖에 없다. 경찰 검사. 검·경이 치열하게 대치하는 한국에서 들으면 기함할 직업 아닌가. 그러니 인터뷰는 바로 그 직업명에서 출발했다.

“호주에도 검찰 조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찰이 모든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어요. 검찰은 수사권이 없고 기소권만 있지요. 그러니 검찰이 스스로 기소를 할 수 없고, 경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것을 가져와서 기소 유지를 하고 재판을 합니다. 상위 법원으로 가야 하는 10%의 심각한 범죄에 한해서 검찰이 기소를 하고, 나머지는 경찰이 재판까지 가져가죠.”

검찰은 수사권이 없고, 경찰한테는 기소권이 있다. 한국과는 정반대 아닌가. 내가 놀라움을 표하자, 그 역시 한국 시스템에 놀랐다고 했다.

“한국 검찰에서 해외의 한인 검사를 초청해서 콘퍼런스를 했을 때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해외의 검사들은 두 가지에 놀랐죠.”

“법을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수사를 하나요?”

두 가지는 이랬다. 검찰 조직에 이렇게나 힘이 있다니. 이렇게나 빨리 진행이 되다니.

인터뷰 방향에서 조금 벗어나 한국의 검-경 갈등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강조하며 검사가 수사 지휘를 하는 것에 의문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법을 공부해서 검사가 된 사람이 수사도 잘할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도요. 법을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수사를 하나요? 물론 일제 강점기에 경찰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역사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을 테고요.”

강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이민자 1.5세대다. 호주의 한인 1호 검사가 되기까지 호주의 법을 공부했고, 경찰과 검찰을 두루 경험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사법 체계를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한국의 사법 체계에 익숙한 한인 교민들이 호주 법원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수차례 목도했다. 검찰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다 보니 한인 사건을 다수 배정받으며 겪은 일이다.

10여년 전, 시드니에서 20대의 한인 남성이 고의적인 폭행으로 기소되었다. 정황 증거만 있고 직접 증거가 없다 보니 담당 검사로서는 쉽지 않은 재판이 예상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검찰에서는 플리 바겐(plea bargain), 사전형량조정을 요청했다. 유죄를 인정하면 고의가 없는 폭행, 한국 법으로는 폭행치상으로 죄목을 바꾸어주겠다는 거였다. 고의적인 폭행은 최고형이 25년에 달했고, 초범이라도 4년에서 5년을 받지만, 폭행치상은 최고형이 7년, 초범이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는 데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거래였다.

피의자는 플리 바겐을 거절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직접 증거가 없어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송사였기에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담당 변호사가 무능하다는 데 있었다. 제대로 변호도 못 하면서 시간을 끌어서 수임료만 늘리기로 유명한 변호사였다. 재판을 어찌나 지연시키는지 판사가 법정에서 호통을 칠 정도였다. 결국 피의자는 부모가 한국의 집을 팔아서 변호사 수임료에만 20만불 이상을 지불하고도 패소해 고의적인 폭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무능한데다 악질적인 변호사를 만나 젊은 청년이 집안의 돈을 모두 잃고 7년 형을 받은 사건은 강씨를 분노하게 했다.

“한인 교민들이 제대로 변호를 받지 못하는 걸 너무 많이 봤어요. 민사 사건에서는 돈을 잃지만 형사 사건에서는 인생을 잃어버리죠. 반대편인 검사 입장인데도 피의자가 안타깝고 불쌍하더라고요.”

“검사의 목표는 유죄를 받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반대편에서 느끼는 연민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검사로서 피의자가 유죄를 선고받고 더 높은 형을 살면 잘된 일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검사의 목표는 유죄를 받는 게 아닙니다. 검찰 본부에도 쓰여 있어요. 증거를 투명하게 보도록 하는 것이 검사의 목표죠.”

범법 행위에 대해 공정하게 법 집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검사의 역할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역할 역시 같지 않나? 인터뷰를 하기 전 들은 정보를 통해 그가 검사에서 변호사로, 법정의 이편에서 반대편으로, 피의자를 기소하다가 변호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을 극적인 변화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검사와 변호사가 근원적으로 같은 목표를 지닌다 해도 법정에서 앉는 위치가 바뀐 만큼 매일의 일이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 여겨졌다. 그래서 검사에서 변호사로 이직하며 바뀐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검찰 일을 하면서 나쁜 놈들에게 벌을 주는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변호사를 하면서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저는 한쪽 면만 보고 있었던 거예요. 피의자가 처한 상황, 그만의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라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진짜로 나쁜 사람은 잘 없어요.”

그는 살인자 변호를 하고 나면 무슨 짓을 한 사람도 납득이 된다고 했다. 나는 진정 그렇겠다며 동의했다. 우리는 잠시 같이 웃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어요.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 처벌받아야 하지만, 인간이니 그럴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시드니 한인 살인 사건 변호를 맡았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근래 들은 한인 살인 사건을 여럿 기억해 냈다.

“요즘 한인 강력 사건이 잦은 것 같아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뉴스에 큰 사건들이 보도되어서 그렇지 한인 사회에서는 강력 범죄가 많지 않아요. 가정 폭행과 음주 운전이 잦죠. 가정 폭행의 경우 경찰이 와서 부부싸움을 무마시키고 갈 거라고 생각해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호주 경찰에서는 기소를 시키죠.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가정 폭행 피해자와 피의자 부부가 저를 찾아와서 별거 아니었다는 말을 많이 해요. 억울하다고. 그럼 제가 말하죠. ‘그건 억울한 게 아닙니다’라고.”

그는 의뢰인이 저지른 것이 법적으로 폭행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휴대폰을 던지며 ‘기물 파손’을 하고, 시끄럽다고 입을 막는다든지 밀친다든지 하는 ‘폭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나는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는 부부 생활의 위기를 비추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상기했다. 남편이 아내를 폭행했던 과거를 고백하는 것을 몇번 보았다. 그럴 때면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호주인 남편이 경악한다. “지금 범죄를 자백한 거잖아. 저 사람 감옥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다. 맞는 말이다. 누군가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전에 살인을 했다거나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면 그는 방송이 전파를 타기도 전에 수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폭행은 그저 방송으로 소비된다. 특히 가정 폭행은 일상적인 가정의 문제처럼 다루어진다. 폭행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가정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범죄 다큐멘터리가 아닌.

“억울해하는 의뢰인들에게 억울한 일이 아니라고 하니 화를 내죠. 무조건 공감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으니 ‘변호사님, 누구 편이에요?’라고 묻는 의뢰인이 많아요.”

강씨는 검사 출신이라 의뢰인을 취조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파트너 변호사가 말을 부드럽게 하라며 옆에서 쿡쿡 찌르기도 하고, 의뢰인이 ‘왜 이렇게 따지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제가 왜 그랬느냐면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의뢰인의 말을 자른 적도 있다. “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심리학자가 아닙니다”라고 선언해서 의뢰인의 화를 돋우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변호사 친구가 주말에도 의뢰인의 전화를 받던 것을 떠올렸다. 이혼 소송 중이던 의뢰인은 배우자에 대한 분노와 망가진 결혼생활에 대한 설움을 변호사에게 쏟아부었다. 지리멸렬한 하소연을 들어주는 대가로 수임료를 지급했다는 식이었다.

하소연 안 들으려 하는 변호사

나 역시 변호사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사람. 그러나 그는 달랐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죠. 왜 그랬는지 해명하고 싶어 해요. 그러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유죄 판결을 받거나 유죄 인정을 한 이후에 감형을 받기 위해 이유가 중요해지지만, 그 전에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이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전과도 마찬가지죠. 과거를 보고 현재를 판단하지 않아야 공정한 거니까요. 모든 사건이 새롭고, 그 어떤 편견도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해요. 법정에서 해당 범죄를 입증할 수 있냐, 무슨 증거가 있냐가 중요해요. 그래서 항상 저는 우선 증거를 보자고 말해요.”

그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다. 증거가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지, 재판에서 받아들여질지를 본다. 다시 한번, 그가 변호사로서 하는 일이 검사로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의 목표가 증거를 투명하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는 사건에 확신을 가지지 않아요. 확신을 가질 수 없지요. 사실을 아는 건 둘뿐인데 한명이 죽은 거니까요. 그러니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유죄가 될 것이냐, 무죄가 될 것이냐가 중요해요. 증거를 살펴보고 ‘유죄 판정이 될 것 같습니다’ 혹은 ‘무죄 판정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저의 직업이에요.”

유튜브에서 자극적인 이혼 ‘썰’을 푸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의뢰인에게 공감하며 함께 분노하고 억울한 의뢰인을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다. 변호사는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를 변호한다는 사실만을 살펴보더라도 변호사가 공감과 분노를 바탕으로 한 투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수진 작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변호사는 듣는 자가 아니라 보는 자, 싸우는 자가 아니라 따지는 자다. 강씨는 오늘도 의뢰인의 사정을 듣는 대신 증거를 살펴보고, 제한되고 왜곡된 사실의 편에서 싸우는 대신 법리를 따지며, 의뢰인이 원하는 공감 대신 의뢰인에게 필요한 승소를 가져다주면서 변호사로서의 직무를 다해낸다.

서수진 작가

서수진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 ‘올리앤더’ ‘다정한 이웃’, 중편소설 ‘유진과 데이브’, 단편소설집 ‘골드러시’를 출간했다. 2020년 ‘한겨레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3875 김경수 '지방시대委'로 공직 복귀…"국토대전환 반드시 성공"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74 [속보] 경찰 빠지라는 윤석열…특검에 “7월3일 이후로 조사 미뤄달라”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73 김건희 특검팀, 사건 이첩 마무리…내달 본격 수사 개시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72 복지장관 후보자로 컴백 '코로나 전사'…의정갈등 구원투수 될까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71 윤석열 전 대통령, 내일 특검 출석기일 변경 요청…“방어권 보장 필요”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70 교육장관 '깜짝 지명' 이진숙, 최초의 국립대 여성 총장 출신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9 李정부 첫 경제팀 '예산통'이 이끈다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8 尹측, 30일 내란특검 소환조사 연기 요청…"7월 3일 이후로"(종합)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7 김건희 특검팀, 사건 이첩 마무리‥내달 2일 수사 개시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6 ‘보성 살인사건’ 그 어부, 최고령 사형수로 숨졌다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5 [속보] 윤석열 전 대통령 측 "특검 출석일자 7월 3일 이후로 조정 요청"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4 교육부 장관에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거점국립대 최초 여성 총장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3 [프로필] 이상경 국토부 1차관, 불로소득 차단과 개발이익 환수 주장 개혁론자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2 김용태 비대위 49일, 보여준 것은 ‘국민이 놀랄 정도로 안 변하는 국힘’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1 법무 정성호·행안 윤호중·기재 구윤철‥6개 부처 장관 인선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60 檢개혁 라인업…법무장관 친명좌장 정성호, 민정엔 檢출신 봉욱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59 [속보]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장 김경수···오유경 식약처장 유임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58 "복근 보일 정도로 살이 그냥 빠졌다"…6일간 '이것'만 150개 먹은 남성, 지금 상태는?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57 우원식 의장, 내일 본회의 안 열기로‥"늦어도 7월3일 총리 인준 표결" new 랭크뉴스 2025.06.29
53856 6월 한강 이남 11개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 17억 돌파…사상 최대 new 랭크뉴스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