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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견학 재개된 금강산전망대
대학생 120명 국토대장정 '스타트'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재향군인회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 위해 호주 퍼스에서 한국을 찾은 이희주양이 24일 강원 고성통일전망대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재향군인회 제공


이름은 이희주. 호주에서 나고 자란 20세 대학생이 비행기를 타고 홀로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은 부모와 조부모 고향일 뿐, 희주양에게는 K팝과 드라마로 한층 친숙한 나라였죠. 희주양이 한국에 온 이유는 놀랍게도 국토대장정 참가를 위해서였습니다. 총 이동 거리는 1,097.5㎞. 이중 걷는 거리는 70.5㎞뿐이라지만 무더운 여름, 7박8일 동안 북한과 인접한 강원 고성군을 출발해 인제, 화천, 파주 등 최전방을 훑어가며 군부대 생활관에서 먹고 자는 만만찮은 일정입니다.

호주 서부 퍼스에서 변호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희주양이 과감히 국토대장정 참가를 결정한 이유는,
성인이 된 뒤 선대에서 지킨 나라의 분단 현실을 똑바로 보고 싶어서
라고 합니다. 24일 강원 고성군에서 만난 희주양은
“호주에서도 북한이 종종 도발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놀랍고 안타까웠지만, 이를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이번에 제대로 알고 싶었다”
고 했습니다. 군인 출신인 작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통해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려줬는데, 평소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던 희주양의 마음을 확 잡아 끌었답니다.

미 머서대에 재학 중인 홍햇님(22)양도 “할아버지께서 지켜낸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국토를 직접 걸으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내 뿌리를 다시 돌아보며 조국에 대한 사랑의 여정이 되길 기대한다”며 이번 국토대장정에 참가했습니다. 재향군인회가 주관해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국토대장정엔 120명이 참가했는데, 희주양과 햇님양을 포함한 7명의 대학생이 호주와 미국 현지에 있는 재향군인회 지회 소속 참전용사들의 자손입니다. 재향군인회가 올해로 15번째 개최한 국토대장정에 해외 지회 가족을 초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20년전 버스로 달렸던 길엔 둔덕이

지난해 10월 북한군이 동해선 자동차도로를 폭파한 뒤 흙으로 언덕을 쌓아놓은 모습. 고성=김형준 기자


이번 행사가 특별했던 건 재향군인회 주최
국토대장정 역사상 처음으로 금강산과 해금강 앞에 펼쳐진 ‘금강산전망대’에서 출발했다
는 점입니다. 윤석열 정부 때보다 남북간 긴장도가 다소 낮아지면서, 지난달 9일부터 기존 동부전선 최북단 전망대이던 고성통일전망대보다 조금 더 북한과 가까운 이곳의 ‘안보관광’이 재개된 겁니다.

717 OP(Observation Post)라고도 불리는 금강산전망대는 남방한계선으로부터 800m 가량 북측에 위치해 있습니다 군사분계선(MDL)과의 거리도 1㎞가 채 되지 않아 북녘이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실제 제가
지난해 12월 말 이 지역에 안보관광을 왔을 때만 해도 기존 고성통일전망대까지만 출입이 허락
돼 아쉬움이 컸는데,
금강산을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
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금강산 자락은 더 선명히 보이지만, 분단 현실도 한층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지난해 10월 북한에 의해 폭파돼 단절된 동해선 자동차도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 탓입니다.
폭파된 자리엔 약 100m 넘는 길이의 둔덕이 생겼습니다.
가로등도 남측 구간에만 설치됐을 뿐, 북측 구간에 설치된 가로등은 사라졌습니다. 철로에선 목침도 빼 갔다고 합니다.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 전엔 이 곳에서도 대남 소음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하니, 소음 방송이 멈춘 이때 방문하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이날 금강산을 등지고 국토대장정을 떠난 대학생들을 보며 여러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고교 졸업을 앞둔 2004년 말 금강산 단체 관광 때 추억이 떠오르면서입니다. 약
20년 전, 그 때만 해도 친구들과 ‘나중에 돈 벌면 차 타고 평양이나 백두산도 가 보자’고 약속했는데, 당시 제 나이와 비슷한 학생들은 약 20년전 가슴에 ‘설렘 반 긴장 반’을 품고 금강산 온정리 마을을 향해 달렸던 그 길에 놓
인 둔덕만 바라본 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평화가 밥이고 경제" 이재명 정부 성과는

강원 고성군 동해남북출입사무소 인근에 설치된 금강산행 표지판. 고성=김형준 기자


남북 긴장 상황은 대화와 관계 개선을 논하기엔 여전히 녹록지 않은 실정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채 소통을 단절했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뚜렷한 대남 메시지를 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직후 북한이 소음 방송을 멈추긴했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더 밀착하는 등 양측 대립이 지속될 여지는 더 큽니다.

그럼에도 금강산전망대 입장이 허락되고, 텅 비었던 고성 인근 식당이 평일에도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니
“평화가 밥이고 경제”라던 이재명 대통령 말
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사실상 중단된 민간 단체의 대북 접촉이 속속 허가되고 있고, 체육교류 등을 통한 소통 기회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회담 빈도가 당장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않더라도, 뚝 끊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마중물은 생기는 셈이죠.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20년 만에 ‘컴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의 성과가 어느 선까지 이뤄질 지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평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실리’는 챙길 수 있길 기대합니다. 혹시 모르죠. 이 관계가 차근차근 개선되다 보면 국토대장정 출발지도 금강산전망대가 아닌 금강산이 될 지도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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