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정유라



20세기 음식산업의 혁명은 음식이 농장에서 집으로 오는 대신 공장을 거쳐 왔다는 것이다. 식품 공장과 글로벌 운송의 기술 발전이 식품의 공장화를 도왔다. 21세기에 음식이 마주한 혁명은 음식이 입으로 오기 전 카메라를 거친다는 것이다. #camera_eats_first 먹기 전 음식 사진 찍는 행위는 악수처럼 자연스러운 제스처가 되었다. 소셜미디어는 음식의 레시피를, 레스토랑의 기획을, 더 나아가 식문화 전반을 재구성한다. 속이 안 보이는 샌드위치보다 아보카도와 토마토가 빵 위에 올려져 있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오픈 토스트가 훨씬 더 소셜미디어 친화적이며, 이런 메뉴를 선보이는 카페가 더 핫플레이스가 되기 쉬웠으니까. 덕분에 2010년대는 아보카도의 시대였다.

불황이 오면 립스틱을 산다는 것도 옛말. 지금의 불황에 사람들은 캐비아를 먹는다. 틱톡에서 #caviar 관련 영상의 조회수가 47억뷰, #caviarbump 영상이 17억번 이상 재생되었다. 손등에 올린 캐비아 한 입을 먹는 영상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작은 사치’를 시각화하는 퍼포먼스다. 관심 경제 안에서 음식은 허기도 채우고 관심도 끌어야 하는 힘겨운 이중 노동을 훌륭히 수행 중이다. 최근 ‘비주얼이 매력적인 음식’을 ‘섹시 푸드’라고 부르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음식’의 방점이 맛이 아닌 비주얼이라는 시대의 합의가 깃든 언어이자, 동시대적 음식은 자고로 ‘관심을 끌어야 한다’라는 숙명을 받아들인 언어이기도 하다.

지금껏 음식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느라 늘 바빴다. ‘솔푸드’처럼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슬로 푸드’처럼 산업화된 식품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콤포트 푸드’(위로의 음식)처럼 정서적 치유의 매개로 분투해 왔다. 때로는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TV dinner’가 그 예다. 알루미늄 식판에 담겨 데우기만 하면 바로 한 끼 식사가 되는 이 냉동 완제품은 1950~1970년대 미국의 핵가족 사회와 TV 중심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이다.

음식 그 자체가 콘텐츠인 지금, TV dinner처럼 무언가를 보면서 먹는다는 점은 유사하나, 결이 다른 음식 언어가 흥행 중이다. TV dinner는 TV가 주인공이었지만 야구를 보면서 먹는 ‘야구 푸드’, 페스티벌에서 먹는 ‘페스티벌 푸드’, 개표 방송을 보면서 먹는 ‘개표 푸드’는 음식이 주인공이다. 이미 하나의 문화인 ‘야구 음식’의 대표 메뉴는 치맥에 국한되지 않는다. 육회, 다코야키, 김치말이 국수 등 구장별로 시그니처 맛집이 많다. 평범한 ‘김치말이 국수’도 ‘페푸’라는 맥락에선 색다른 매력을 발한다. 그 순간을 완성시키기 위해 음식이 소환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합’, 상황의 흥을 극대화하는 메뉴의 합이 있으며 음식의 맛과 질은 등한시되지 않는다.

요즘 음식은 단순히 SNS에 잘 어울리는 걸 넘어서, 상황에 꼭 맞는 의미 있는 콘텐츠로 바뀌고 있다. ㅇㅇ푸드는 상황의 적절함, 개인적 취향, 정서적 맥락이라는 세 가지 차원의 조화가 치밀하게 고려된 연출이다.

야구 푸드, 페스티벌 푸드와 같은 언어의 출현은 앞으로 ‘감각의 문해력’과 ‘맥락적 취향’이 얼마나 중요해질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길어질 여름을 앞두고, 나만의 열대야 푸드를 고민하며 감각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 보기를 추천한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3735 6월 가계대출 7조 가깝게 늘 듯…대출 규제 효과는 8월부터 랭크뉴스 2025.06.29
53734 韓 증시 순항에… 6월 단기과열종목 30개로 급증 랭크뉴스 2025.06.29
53733 "비트코인 2030년 '14억' 간다"는 '부자아빠', 지금 당장은 '이것' 사라는데 랭크뉴스 2025.06.29
53732 이스라엘, 하마스 10·7 기습테러 주동자 표적 공습 살해 랭크뉴스 2025.06.29
53731 ‘주담대 상한 6억’ 부동산 대책에 국힘 “서민·청년 집 못 사게 막는 정책” 주장 랭크뉴스 2025.06.29
53730 李정부 첫 관세협상… 韓 제조업 협력 강조, 美 비관세장벽 압박 랭크뉴스 2025.06.29
53729 구조된 어린 점박이물범,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랭크뉴스 2025.06.29
53728 박찬대 VS 정청래, SNS 민심이 보는 다음 당대표는? [데이터로 본 정치민심] 랭크뉴스 2025.06.29
53727 송언석 "김민석 총리 인준되면 다음 장관 도덕성 검증 무용지물" 랭크뉴스 2025.06.29
53726 17차례 접대받고 “대가성은 없었다”? 인천 강화군 5급 공무원에 법원 “파면 정당” 랭크뉴스 2025.06.29
53725 ‘폭염 속 방치’ 청년노동자 열사병 사망 사건, 노동부는 업체에 ‘혐의없음’ 면죄부 랭크뉴스 2025.06.29
53724 "반려견은 직계 가족… 정신적 피해 배상해야" 이례적 판결에 논쟁 벌어진 뉴욕 랭크뉴스 2025.06.29
53723 호주에서 온 스무살 희주씨, '분단의 둔덕' 등지고 국토대장정 나선 이유는 [문지방] 랭크뉴스 2025.06.29
53722 초강력 대출 규제‥서울 아파트 74%, 18개 구 사정권 랭크뉴스 2025.06.29
53721 [샷!] "인주 대신 쌈장 써도 돼요?" 랭크뉴스 2025.06.29
53720 與 당대표 정청래냐 박찬대냐… 승부 가를 '명심'의 선택은 [정치 도·산·공·원] 랭크뉴스 2025.06.29
53719 의붓딸 상습폭행·학대 계부 징역 1년6개월…친모도 가담 랭크뉴스 2025.06.29
53718 생산 작업 담당 수용자에게만 치킨 배식한 교도소···법원 “차별 아냐” 랭크뉴스 2025.06.29
53717 “너무 시끄러워요!” 민원 속출 청계천, 버스킹 구역 확 줄어든다 랭크뉴스 2025.06.29
53716 집에 악취 나는데도 "父 사망 몰랐다"…보름 넘게 방치한 아들 랭크뉴스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