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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유기 고의성 없어"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지법 본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만취 상태로 바지에 용변을 본 뒤 쓰러져 있던 남편을 그냥 집에 두고 나왔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유기죄로 재판에 넘겨진 아내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구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제11부(부장 오창섭)는 유기죄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2023년 5월 20일 오전 10시쯤 일어났다. A씨는 경기지역에 있는 본인 집으로 귀가했다가 현관 바닥에 술에 취해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쓰러진 남편 B씨를 발견했다. 남편 속옷과 다리 등에는 대변까지 묻어 있었다.

A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B씨 사진만 몇 장 찍은 후 집을 나섰다. 이후 딸과 식사를 하고 오후 3시쯤 집에 돌아왔으나, 그때까지 B씨는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장시간 의식이 없다, A씨는 119에 신고했지만 B씨는 결국 숨졌다.

검찰은 A씨 행위를 유죄로 봤다. 쓰러져 있는 남편 B씨의 의식이 있는지 흔들어 깨우는 등 확인해야 할 법률상 구호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A씨가 경찰조사에서 “쓰러진 남편을 발견해 바로 119에 신고했다”며 처음 남편을 발견한 시점에 대해 거짓 진술을 한 점도 문제가 됐다.

피고인의 요청으로 진행된 국민참여 재판에서 A씨 변호인은 “A씨가 B씨의 죽음을 예상할 수 없었고, 위급한 상황을 인지하고도 고의로 유기할만한 동기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피고인이 술에 취한 남편을 보고 화가 나긴 했지만, 특별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고의성을 증명할만한 정황도 없었다”고 주장했. B씨가 평소 술을 많이 마시며 만취 상태로 아무 곳에서나 잠들곤 했다는 가족 진술도 나왔다.

A씨는 B씨를 목격한 직후 외출했다가 다시 집에 돌와오기까지 딸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가 하다 하다 술 먹고 바지에 대변까지 봤다. 대변은 다 치워놨을까”라고 말하는 등 남편의 사망은 전혀 예상 못했다는 주장도 폈다.

B씨 역시 “남편이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좀 더 자세히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한 후회와 당혹감이 컸다”고 진술했다.

재판부와 배심원들은 B씨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들의 관계, 피해자의 평소 음주 습벽, 당시 현장 사진 등을 봤을 때 유기의 고의가 없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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